행복을 추구하는 것은 삶의 목표일까, 아니면 함정일까? 심리학자인 에드가 카바나스와 사회학자 에바 일루제는 라는 책을 집필했다. 이 책의 저자들은 수백만 달러 규모의 “행복 산업”이 만들어낸 여러
행복을 추구하는 것은 삶의 목표일까, 아니면 함정일까? 심리학자인 에드가 카바나스와 사회학자 에바 일루제는 라는 책을 집필했다. 이 책의 저자들은 수백만 달러 규모의 “행복 산업”이 만들어낸 여러 관념에 도전한다. 행복은 단지 선택사항일 뿐이라는 것도 그 중 하나다. 카바나스를 BBC 스페인어 서비스가 인터뷰했다. 1️⃣당신은 행복이라는 개념에서 벗어나는 게 가능하다고 했다. 왜 그것을 ‘좋은 소식’이라고 말했나? 🅰️행복 담론이 가진 주요 문제는 그러한 약속에 집착하게 되거나 중독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행복은 결코 오지 않는다. 사기나 다름없다. 목표란 끝없는 과정이기 때문에 결코 달성되지 않는다. 우리는 함정에 빠져서 이러한 만들어낸 약속에 중독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자아실현이나 행복한 삶을 위해 자기계발서를 사는 사람은 한 권만 사지 않는다. 여러 권을 산다. 만약 그 책들이 정말 행복의 열쇠를 갖고 있다면, 그 중 하나만 읽어도 사람들이 행복해질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우리는 이 순환 고리를 벗어나야 한다. 2️⃣우리가 자신의 행복을 좌우할 수 있다는 생각이, 행복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죄책감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그것이 우리의 정신 건강에 어떤 영향을 미치나? 🅰️아주 부정적인 영향을 준다. 행복은 자신에게 달려 있고, 자신의 노력으로 훌륭하고 성취감 있는 삶을 살 수 있다는 말을 들었다고 해보자. 아주 매력적으로 들릴 것이다. 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행복에 대한 현대의 관념을 보면, 우리를 둘러싼 환경의 역할은 행복의 공식에서 최소화된다. 과학적 근거도 없이 행복은 유전자 50%, 의지 40%, 상황 10%라는 속설이 있다. 행복의 90%는 우리에게 달려있다는 것이다. 즉 소득, 사회 계층, 문화적 규범, 가족, 우리가 받는 지원 등은 행복에 10% 밖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니, 신기할 따름이다. 3️⃣당신은 상황이 좋은데도 불구하고 더 행복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왜 이런 강박이 일어날까? 🅰️이것이 이른바 ‘해피콘드리아(happycondriacs·행복 염려증)’의 핵심이다. 자신이 아프지 않더라도 항상 자신에게 뭔가 문제가 있다고 믿는 사람, 즉 건강 염려증 환자에서 이 개념을 착안했다. 건강 염려증 환자처럼 해피콘드리아는 자신이 충분히 행복하지 않기 때문에, 자신에게 뭔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잠재력을 충분히 개발하지 못했다고 믿는다. 해피콘드리아는 자신이 잘 지내고 있더라도, 기분이 나빠지는 하나하나에 집착한다. 분명 문제가 있다. “더 나아진다”는 것은 끝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언제 행복해질까? 그 답은 아무도 알지 못한다. 소프트웨어나 휴대전화를 사고나면 금세 최신 버전이 나오기 때문에 절대 최신 버전을 가질 수 없는 소비자 제품과 같은 이치가 아닌가. 4️⃣행복을 추구하면서 끈질기게 버티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나? 🅰️행복의 역설을 확인하는 흥미로운 연구들이 있는데, 행복해지려고 노력하면 할수록 자신의 행복을 방해받는다는 것이다. 즐거운 시간을 보낼 거라는 큰 기대로 파티에 가고 싶어했는데, 막상 가보면 그 파티도 그냥 평범한 하루일 뿐인 것과 비슷하다. 당신은 지금보다 더 나아질 거라고 생각하면서, 현재의 자신을 즐기지 않는 것이다. 행복을 인생의 주요 목표로 삼는 것을 다시 생각해보자. 우리는 행복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모르고, 어디에서 행복을 찾아야 하는지도 모르며, 그리고 우리가 열심히 찾으려 하면 할수록 오히려 더 큰 좌절에 빠질 수 있다. 우리는 행복에 대한 집착을 멈춰야 한다. 5️⃣많은 이들이 새해가 되면 결심을 한다. 행복해지기를 원하거나 더 행복해지려고 노력하는 사람에게 뭐라고 말하고 싶은가? 🅰️’나는 더 행복해질 거야’대신 ‘나는 누군가를 더 행복하게 해줄 거야’라는 결심을 하라고 말해주고 싶다. 이는 초점이 우리에게 맞춰져 있는 것이 아니라, 타인에게 맞춰져 있다. 그것이 행복의 역설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이것이 내 조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