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쫄지않아요, 내가 하는 일에 대해서 생각해요." [내가 하는 것, 내가 가는 길을 이해하기] 나를 이해하고 내가 하는 것과 내가 가는 길을 세밀하게 이해해야 한다는 것은 제가 자주 하는 생각이에
"쫄지않아요, 내가 하는 일에 대해서 생각해요." [내가 하는 것, 내가 가는 길을 이해하기] 나를 이해하고 내가 하는 것과 내가 가는 길을 세밀하게 이해해야 한다는 것은 제가 자주 하는 생각이에요. 의도적으로 집중하려고 하고요. 이어령 선생의 말과 글이 다시 주목받는 이 때에 "선한 인간이 이긴다는 것, 믿으라"라는 제목이 있어 읽기 시작했어요. 그런데 제 마음 속 깊이 들어온 부분은 나 자신이 하는 것, 가는 길을 깊게 이해한 사람의 단단한 이 말이었어요. ----- - 살면서 지적으로 위축된 적은 한 번도 없으신지요? - 이어령 선생: "없어요. 쫄지 않았어요. 칸트가 아무리 훌륭해도 문학가는 못 되는 사람이잖아. 산책 시간을 정확히 지켜서, 칸트가 지나가면 동네 사람이 일제히 시계를 맞췄다고 해요. 문학 하는 사람은 기분 날 때 산책해요. 비 오는 날은 빠지고 기분 좋으면 아침에 갈 수도 있죠. 시간 맞춰 가면 그게 KTX지, 산책이야(웃음)? 플라톤한테도 프로이트한테도 아인슈타인한테도 나는 쫄지 않았어요. 라틴어, 그리스어, 한자로 남아있으면 진리고, 우리말로 남아 있으면 별것 아니라는 통념에서 벗어나야 해요. 우리말로 됐건, 외국말로 됐건 내가 보고 들어서 좋으면 그게 진리고, 자기를 객관화해서 옳으냐 그르냐를 생각하는 게 내 몫이에요." ----- 남들과의 비교는 좋지 않다는 것을 머리로는 알아도, 가끔 처지고 위축되는 날들이 많아요. 그러다보면 나도 모르게 대놓고 스스로를 누군가와 비교하죠. 길은 길고, 지도가 아닌 나침반을 보고 간다고 생각할수록 어디쯤 왔는지도 선명하지 않아요. 아니 종착지조차도 선명하지 않죠. 내가 작아지고 흐려질수록 이런 마음은 더 심해지고요. 그런데, 쫄지 않아도 돼요. 위축되지 않아도 돼요. 무려 이어령 선생이시지만, 칸트나 플라톤에 대해서도 쫄지 않으셨다잖아요. 내가 하는 일, 내가 해야할 몫에 대해 집중하면 된다고요. 위축되는 마음이 들수록 나는 어떤 사람인지, 내가 하고자 하는건 뭔지, 내가 가는 방향은 어딘지 생각해요. 그러려면 나를 정말 잘 이해해야겠죠. 내가 하고자 하는 것이 정확히 뭔지도 알아야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