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을 ‘이해’한다는 말] 우리는 어떨 때 ‘이해’라는 단어를 쓰나요? 한 번도 만나본 적 없는 이가 한 사람을 이해하는 것은 가능한 일일까요? 그로부터 수십 년이 흐른 지금도 이해라는 단어를
[당신을 ‘이해’한다는 말] 우리는 어떨 때 ‘이해’라는 단어를 쓰나요? 한 번도 만나본 적 없는 이가 한 사람을 이해하는 것은 가능한 일일까요? 그로부터 수십 년이 흐른 지금도 이해라는 단어를 정확히 알지 못하지만, 점점 더 이해는 불가한 일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해라는 단어는 그것이 존재하기에 만들어진 말이 아니라 그걸 시도하기 위해 생긴 말이 아닐까 싶습니다. 사실 세상에는 이해했다거나 받았다는 오해만이 존재하고 있지 않을까요. 나와 타인 사이에 그런 시도가 있었다면 그저 그 과정에 커다란 의미가 있을 겁니다. 타인을 완벽히 이해하는 일이 정말로 가능한지 아직은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예술 안에서는 그 오해가 자유롭기에 그 점이 저를 자꾸 예술 앞으로 끌어다 놓곤 합니다. 예술가들과 주고받기 가장 쉬운 일이고, 그 오해를 풀지 않고 영영 오해로 남아도 그 사이에 이해가 존재하게 되니, 세상에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다니, 얼마나 고마운지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