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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조직의 리더들은 비슷한 고민을 한다. ‘어떻게 하면 구성원들이 좀 더 책임감있고 열정적으로 업무를 수행하도록 만들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다. 구성원의 의욕과 열정을 높이기 위해 어떤 방법들

모든 조직의 리더들은 비슷한 고민을 한다. ‘어떻게 하면 구성원들이 좀 더 책임감있고 열정적으로 업무를 수행하도록 만들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다. 구성원의 의욕과 열정을 높이기 위해 어떤 방법들이 떠오르는가? 성공적인 마무리를 조건으로 근사한 저녁이나 특별 휴가 지원 등을 약속할 수도 있다. 나쁘지 않다. 괜찮은 방법이다. ‘보상을 주면 행동이 강화되고, 처벌을 하면 행동이 약화된다’는 건 상식이니까. 그런데 이것도 알고 있는가? 그런 방식엔 치명적인 약점이 있다. 일시적인 ‘보상과 처벌’은 확실히 효과가 있지만, 지속적인 효과를 내려면 그 강도가 점점 세져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당신에게 보상 자원이 무한정 있다면 상관없다. 하지만 당신도 조직의 일원으로 급여를 받고 있다면, 결국 이 방식엔 한계가 있다. 그렇다면 구성원들을 움직이게 만들 또 다른 동력은 무엇일까? 바로, 인간이 태어날 때부터 갖고 있는 욕구들을 자극하는 것이다. 인간에겐 어떤 욕구가 내재되어 있을까? 어린 아이와 함께 외출할 때마다 엄마들은 짜증이 난다고 한다. 언제부턴가 아이가 본인이 입을 옷을 고르면서 시간을 너무 많이 쓴다는 거다. 보다 못한 엄마가 “그냥 골라주는 대로 입고 가!” 그러면, 끝까지 “내가 고를 거야!” 하면서 고집을 피운다. 그리고 기어이 자기가 고른 옷과 양말, 신발을 신고서야 헤벌죽 웃으며 만족해한다. 자, 어떤 욕구일까? 이것이 많은 심리학자들이 강조하는 ‘자율성’이다. 인간이 타고난 본능 중에서도 ‘내 행동의 원천을 스스로 결정하고 싶다’는 욕구. ​ ​그런데 자율성은 조직에서 발휘되기가 어렵다. 왜일까? 조직은 구성원들이 한 방향으로 움직이기를 바라기 때문에, 통제를 원한다. 또한 성공의 확률을 높이고 싶기 때문에, 검증된 방식을 강요한다. 조직의 관점에선 당연히 그럴 수 있다. 하지만 자율성을 억압하는 방식을 반복하다 보면, 어느 새 “에이, 하란 대로 하지 뭐”라며 수동적으로 변해 버린 구성원을 보게 될 것이다. 의욕과 열정은 상실한 채 마치 기계처럼 움직이는 모습을. 그렇다면 조직도 살리고, 개인의 자율성도 발휘할 수 있게 만드는 방법은 무엇이 있을까? 1️⃣권한 위임 그런데 권한위임을 말하면, 많은 리더들은 걱정부터 한다. “아니, 역량도 부족한데, 본인 맘대로 하다가 망치면 어떡합니까?” 미안하지만, 그건 권한위임이 아니다. 그건 방임이다. 자율은 방임과는 다르다. 예를 들어 보자. 대학리그에서도 중위권에 머물던 성균관대 축구팀이 최근 몇 년간 눈부신 성과를 기록하고 있다. 2015년엔 대학리그 서울-경기권 1위를 하더니, 이듬해엔 FA컵 16강에 진출했다. 비록 16강에서 성남 FC에 패했지만, 프로 축구팀을 상대로 이 정도 성적을 올렸다는 건 대단한 결과다. 비결이 뭐였을까? 선수들은 설기현 감독의 운영 방식을 꼽았다. 설 감독은 2015년에 취임하면서 3가지 원칙을 내세웠다. ✔️단체 훈련은 하루 1시간 10분 이내,✔️주말은 무조건 휴식,✔️아침은 먹고 싶은 사람만. 단체행동과 획일성을 중시하던 기존 문화와 정반대로, 선수들의 자율성을 최대한 존중하는 문화를 만들겠다는 약속이다. ‘설마 저걸 지키겠어?’라고 반신반의하던 선수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이 방식이 실패해도 너희들을 탓하지 않겠다. 모든 책임은 내가 진다. 하지만 이게 옳다는 걸 너희들이 증명해줬으면 좋겠다”. 다행히도 증명에 그리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은 것 같다. 설 감독의 사례에는 권한위임의 중요한 두 가지 요소가 담겨 있다. 하나는 이다. 감독이 일방적으로 결정하고 ‘나를 따르라’라기 보다는, 선수들의 역량과 개성을 최대한 존중해서 그들에게 시간과 같은 ‘자원 활용’과 아침 식사 여부와 같은 ‘진행 방식’의 선택권을 줬다. 다른 하나는 이다. 마냥 자율성을 주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지켜야 할 룰을 정하고 공유했다. 가령 ‘주말은 무조건 쉬어야 한다’라는 원칙이 그 예다. 2️⃣질문 질문은 상대방이 결정권을 갖고 있다라고 ‘느끼게’ 할 수 있는 중요한 대화법이다. 필자는 급할 때 택시를 자주 이용한다. 예를 들어, 강남에서 택시를 타고 강북을 가는데, 기사 분이 묻지도 않고 남산 1호 터널로 갔다. 입구부터 엄청 막힌다. 나도 모르게 이런 말이 나온다. “기사님, 왜 1호 터널로 오셨어요. 막히는 거 모르셨어요?” 반면에, 노련한 기사 분들은 다르다. 타면 물어 보신다. “손님, 반포 탈까요? 한남 탈까요?” 아니면 “1호 터널로 갈까요? 3호 터널로 갈까요?” 내가 선택한 길이 막히면, 나는 어떤 말을 할까? “이 시간대는 꼭 이렇게 막혀요. 그죠?” 차이가 느껴지는가? 같은 상황인데도 나의 태도는 천지 차이다. 전자는 남 탓이고, 후자는 내 탓이다. 왜냐하면 전자는 타인에게 강요당했고, 후자는 내가 선택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극명한 차이는 단지, ‘질문’ 하나가 만들어낸 결과였다. ​ 그래서 질문의 힘을 아는 리더들은 뭔가를 결정하기 전에, 반드시 구성원들의 의견을 구한다. 의사결정에 ‘참여’했다는 느낌은 ‘공동의 책임감’을 갖는데 중요하기 때문이다. 아, 노파심에 하나만 더 얹자. 질문은 던지되, 결국은 본인 마음대로 결정해 버리는 리더들이 있다. 그럴 거면 차라리 질문을 하지 않는 게 낫다. 괜히 남아있던 신뢰마저 탈탈 털리니까. ✅정리해 보자. 리더 입장에서는 지시와 통제가 더 쉽고 시간도 덜 걸린다. 하지만 구성원들이 더 많은 행복을 느끼기를 바란다면, 그리고 그들의 업무 능력이 향상되기를 바란다면, 그들의 자율성을 인정하고 존중해야 한다. ‘인간을 당근과 채찍으로 길들이려고 하면, 인간은 결국 당나귀가 된다’라는 말이 있다. 당나귀와 일할 것인지 인간과 일할 것인지, 선택은 당신에게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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