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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를 완벽하게 제거 혹은 예방해야 한다는 환상의 종착역은 시행착오와 좌절입니다. 살면서 겪는 일들은 다 이유가 있어서 생기는 겁니다. 속이고, 어기고, 훔치는 행위는 인간의 본성에서 나오는 것이고

문제를 완벽하게 제거 혹은 예방해야 한다는 환상의 종착역은 시행착오와 좌절입니다. 살면서 겪는 일들은 다 이유가 있어서 생기는 겁니다. 속이고, 어기고, 훔치는 행위는 인간의 본성에서 나오는 것이고, 그것을 막는 시스템 역시 인간이 만든 것이어서 작동할 때도, 작동 불량일 때도 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정신분석 과정이 완벽해야 분석을 종결할 수 있을까요? 과거에는 상당한 논란이 있었습니다. 이제는 그런 생각 안 합니다. 정신분석을 받아도 마음에 고통을 주는 갈등이 완벽하게 제거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설령 갈등을 없앤다고 해도 살다보면 또 다른 갈등이 생깁니다. 정신분석의 목표는 갈등에 끌려 다니지 않으면서 유연하게 대처하는 자기성찰력을 키우는 것입니다. 사람과 사람, 시스템과 시스템 간의 갈등은 인생의 본질입니다. 그런데 갈등을 문제로만 여기면서 ‘청산’ ‘박탈’ 등의 완벽해질 수 있다고 착각하는 방식으로 접근하면 결과는 뻔합니다. 사건 사고가 없는 완벽한 세상을 꿈꾸시나요? 역설적으로 그런 일들이 있기에 긴장하고 조심하고 예방하게 되는 겁니다. 질병을 옮기고 우리를 끊임없이 괴롭히는 바이러스와 같은 것들을 완벽하게 박멸할 수 없듯이, 삶에서도 완벽함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설령 어떤 시험에서 100점을 맞았더라도, 또 어떤 일은 100% 노력해도 풀 수 없는 문제, 달성하기 어려운 목표일 것입니다. 완벽을 추구할수록 오히려 전체를 못 보고 쓸데없이 힘만 들어가서 무리한 결과를 초래합니다. 어린아이들은 삼킬 것과 뱉을 것, 만질 것과 만지지 않을 것을 분명하고 완벽하게 배우고 익혀야 합니다. 어른은 달라야 합니다. 어른의 마음은 세상이 비록 완벽하지 않더라도 어떻게 더 좋은 세상을 만들지를 고민해야 합니다. 어린아이의 세상이 흑과 백으로 나뉘는 세상이라면, 어른의 세상은 회색, 그것도 다양한 밝기의 회색 세상입니다. 덜 익은 것과 제대로 익은 것의 차이는 관점이 결정합니다. ‘완벽(完璧)’이라는 단어에는 심리적 만족감이 담겨 있습니다. ‘완벽’은 ‘흠이 없는 구슬’, 즉 결함이 없이 완전함을 뜻합니다. 하지만 세상 어떤 구슬도 현미경으로 보면 여기저기 흠이 보입니다. 능력주의의 함정에 빠진 완벽주의자는 성취 기준을 지나치게 높게 잡고 결점 없이 일하려고 애를 씁니다. 자신이나 다른 사람의 업무 성과를 과도하게 비판적인 눈으로 평가합니다. 그러나 완벽은 현실이 아니라, 소망, 환상, 착각일 뿐입니다. 특히 외부에 의해 강제된 완벽주의는 인간의 자율성에 장애를 일으키므로 완벽함과 자율성 둘 다 놓치게 됩니다. 부모의 완벽주의가 아이를 망치기도 합니다. 자기 생각대로 아이를 통제하려 하니 독립된 개체로서 성장하고 독립해야 할 아이는 늘 불안하고 우울합니다. 좌절을 거듭하다가 결국 자신의 정체성과 존재의 의미를 상실하고, 완벽주의 부모의 바람과는 반대로 무력한 사람으로 자라납니다. 무력감에 빠지는 순간 합리적인 방식을 여유 있게 찾기보다는 성급하게 서둘러 일을 끝내려고 무작정 덤벼듭니다. 그러지 않으면 자신의 정체성이 무너질 것 같은 불안감이 닥치기 때문입니다. 시간을 끌다가 침체의 늪에 빠질 것을 염려하기 때문입니다. 완벽함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사람도, 조직도 필연적으로 실수를 거듭하면서 성장합니다. 환상에서 벗어나 완벽하지 않음을 인정하고, 실수를 통해 배우고 뉘우치고 개선하려는 의지를 발동시켜 합리성을 되찾는 일이 훨씬 더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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