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mmunity

대학 시절, 최고의 명강의 - 공부의 위로를 읽고 나서 큰 꿈에 부풀어 대학에 왔으나, 여전히 재미는 없었다. 내가 가졌던 환상 속의 대학과 실제의 현실과 격차는 컸고, 이럴 거면 고등학교랑 별

대학 시절, 최고의 명강의 - 공부의 위로를 읽고 나서 큰 꿈에 부풀어 대학에 왔으나, 여전히 재미는 없었다. 내가 가졌던 환상 속의 대학과 실제의 현실과 격차는 컸고, 이럴 거면 고등학교랑 별 차이도 없네, 라는 마음으로 수업에는 점점 흥미를 잃어갔다. 유일하게 좋았던 것은 더 이상 누구도 나에게 이래라 저래라 하지 않았던 자유였다. 무슨 수업을 듣던간에, (졸업을 위한 전공과목은 들어야했으나) 주 3일만 수업 듣는 시간표를 짜고 나머지는 뭘 하던간에, 사실 수업에 들어가지 않아도 별 상관도 없었다. 학점을 잘 받아야 한다는 목표는 애시당초 더더욱 없었다. 그렇게 부유하며 살던 중, 나는 어떤 수업을 듣게 된다. 경영학과 학부생이지만, 미시경제와 거시경제는 기본 교양으로는 들어야지, 라는 선배들 말이 있어서 친구따라 강남 가는 마음으로 줏대없이 미시를 들었다가 와 대박 너무 싫어, 라고 소스라치듯 몸서리를 쳤다. (중간에 드랍을 했던가… 그래도 끝까지 들었던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숫자와 경제학 개념을 자유자재로 다루면서 펄펄 날아다니는 학생들 사이에서 기가 죽었던 기억이 기억만 어스름히 난다. 미시가 너무 별로라 거시는 당연히 듣지 않을 수순이었다. 그런데 누군가가 R 교수님이 강의하는 수업은 그래도 들어보기를 걸 추천했던 것 같다. 명강의로 유명하다고. 그리고 찾아보니 하버드에서 박사를 받았다는 후광효과에 혹했다. 학기 첫주에 한번 들어보고 아니면 드랍하지 뭐 라는 심정이었다. 2학년 가을학기였고, 당시 나는 여러가지 이유로 학교를 정말 다니기 싫은 상태였다. (스무살 시절에 충분히 상상 가능한 이유로 ㅎㅎ) 이 수업은 듣고 싶어하는 학생이 너무 많아서 경제학과가 소속된 사회과학대학 강의동에서 하지 않았다. (기억이 흐릿하지만) 자연대 혹은 공대에 있는, 극장식 강의실에서 진행되었는데 가득 찬 인원이 최소 200명은 넘었던 것 같다. 그 이상일지도 모른다. 내가 이 숫자를 잘 기억하지 못하는 이유는, 이 수업의 첫날 내가 거시경제학에 반해버렸고 그래서 학기 내내 제일 앞줄에 앉아 있었기 때문이다. 가을에서 겨울로 이어지는 내내, (아마도 화/목 아침 9시 수업이었던 것 같은데) 부지런히 강의실에 들어가서 제일 앞줄에 앉았다. 지금에 와서는 그때 들은 수업 내용은 거의 기억에 남는 게 없다. 하지만, 세계 경제가 이렇게 타이트하게 연결되어 있구나, 숨가쁘게 돌아가는 현실을 숫자와 이론으로 이렇게도 설명할 수 있구나, 라는 것을 수업을 들으며 깨우치는 기분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하루는, IMF 금융위기가 전세계적으로 어떻게 연결되어서 발생한 것이며 한국이 그토록 빨리 탈출할 수 있었던 구조적 원인이 뭔지 설명을 듣던 날의 머리가 시원하게 트이는 기분은 아스라히 남아있다. 교수님은 말씀을 굉장히 재밌게 하시는 분이었고, 말도 빨랐다. 하나라도 놓치고 싶지 않으려면, 집중하려면, 젤 앞에 앉아야 했다. 이 수업은 과제도 많았던 것 같다. 그래서 나는 그전까지는 한번도 가지 않았던 중도에 거시경제를 공부하러 자주 갔다. 교과서를 읽고, 숙제를 풀고 (뭔가 계산을 해내는 숙제들…?), 복습까지 했다. 그래도 나름 수학은 자신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건 큰 착각이었던지라, 수업을 따라가려면 시간을 투자해야만 했다. 그것도 많이. 잘 하고 싶은 욕심이 그만큼 컸다. 알을 깨고 성장한다는 기분, 지성의 충격적인 날카로움의 맛을 본 것은 대학 와서 거시경제 수업이 처음이었고 이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최선을 다했던 시간이었다. 그 결과, 내 기준에서는 꽤 만족스러운 학점을 받았다. 물론 최상급으로 빛나게 영민한 친구들만큼 수월하게 거시경제 공부를 해내지는 못했지만, 나도 할 수 있구나, 라는 자신감을 얻은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이때의 자신감으로 다음 해에 같은 교수님의 주식채권파생상품금융론을 수강하러 갔다가, 드랍하고 금융의 세계와 결별을 했다.. ㅋㅋ) 결국 나는 졸업을 위한 필수학점을 겨우 채우고 학교를 마쳤다. 하지만 그 중에서 뭐가 제일 좋았어? 라고 묻는다면 나는 단연코 거시경제를 고를 것이다. 가장 최선을 다했고, 나 자신의 한계와 싸웠으며, 대학에서 배운다는 건 이런 느낌이구나 라는 고양감에 젖어있던 나날들. 그리고 나는 복잡하고 거대한 현실의 과제를 직접 몸으로 부딪히며 다루고 싶어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시간이 흘러흘러, 어린 시절의 나에게 대학의 가치를 처음으로 알려준 교수님이 2022년 한국은행 총재가 되었다. 프로필을 찾아보니, 큰 키를 휘두르며 열정적으로 수업을 하던 그 시절 교수님의 나이가 지금의 나와 같다. (세상에!) 그 분은 나를 알리 없고, 강의실을 거쳐간 수만명의 학생들 중 하나지만, 그 수업 덕분에 인생의 젊은 날 한뼘씩 한움큼씩 자라난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나처럼. 곽아람 기자님의 책 를 다 읽고 나서, 추억하며 써 본 글.

알림

알림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