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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이 디자인은 아니다. 그러나 디자인은 모든 것과 관련 있다.” — 디자인으로 세상을 배웁니다. * 니가 왜 거기서 나와 사업을 진행할 때, 프로젝트를 추진할 때 본질을 견지하는 것은

“모든 것이 디자인은 아니다. 그러나 디자인은 모든 것과 관련 있다.” — 디자인으로 세상을 배웁니다. * 니가 왜 거기서 나와 사업을 진행할 때, 프로젝트를 추진할 때 본질을 견지하는 것은 무척이나 어려운 일입니다. 어떤 제품 디자인을 개발한다고 할 때 그 제품이 달성하고자 하는 목표와 제공하고자 하는 고객가치가 있지요. 전략에 부합하는 디자인을 개발하기 위해 디자인프로세스를 진행합니다. 확산과 수렴의 의사결정 과정들을 거치면서 안을 좁혀 갑니다. 이때 디자이너들이 빠지기 쉬운 오류들은 전략의 목적을 이루기 위한 다양한 수단 중의 하나인 크리에이티브 자체에 마음을 뺏겨 버리는 것입니다. 소위 시안이 눈과 마음을 홀릴 만큼 기대 이상으로 기깔나게 멋있고 기발하게 결과가 도출될 때입니다. 하지만 아무리 멋있고 기발하다 해도 전략의 목적에 부합하지 않는다면 (참 아깝지만) 선택하지 않아야 합니다. 기획자도 마찬가지입니다. A 전략을 수립하고 A를 뾰족하게 만들기 위해 전략에 충실한 디자인 개발이 진행 됩니다. 그런데 본질 A를 더욱 견지해야 할 기획자들 가운데 디자인 결정시 B는 왜 없냐, C는 왜 고려되지 않았냐 하는 본질 A를 벗어난 의견 제시들로 결정의 혼선을 빗는 오류에 종종 빠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 최저임금 인상할 때마다 참 논란이 많았었는데요, 이번엔 차등지급 때문에 논란이 있는가 보군요. 최저임금 “애초의 시행목적”이 무엇이었는지를 생각해 보면 좋을텐데 말이죠. 최저임금은 ***노동자의 최소한의 생계 유지를 위한 최저 기준 임금***을 정한 것이죠. 노동자가 최소한 이 정도 임금은 받아야 생계를 유지할 수 있다는 기준 말입니다. 즉, 최저임금제는 (아무리 경영하기 어려운 상황이라해도 미안하지만) 기업이나 가게 사장님을 위한 제도가 아닙니다. 그렇다면 제도를 평가하거나 개선할 때 제도 “시행의 목적”에 얼마나 충족한지를 가지고 판단해야 하는 게 정책중심적으로 올바른 것이 되죠. 즉 최저임금제의 시행으로 “노동자”가 실제적으로 최소한의 생계 유지가 가능해지게 되었는가를 평가해야 하는데 “식당 사장님”이 왜 거기서 나옵니까? 코로나 시기 어려운 경제 상황 속에 최저임금 인상도 시행되어 기업들, 고용주들 물론 어렵습니다. 그렇다면 최저임금제를 그들을 고려해서 조정하는 개선방향이 아니라 기업과 고용주들을 위한 지원제도는 시행목적이 다른 최저임금제와는 별개로 방법을 모색하고 강구해야죠. 최저임금 제도의 시행목적은 온데간데 없고 부수적인 논의들로 본질이 흐려지는 게 많이 안타깝네요. 최저임금 월급이 약 200만원 정도 되나요? 그걸로 한 달 서울에서 방값, 밥값, 교통비, 통신비 등등 고정비 지출하고 최소한의 삶을 위한 비용 지출하면서 미래를 위한 저축도 하면 추후 빈곤 노인으로 전락되지 않을 만큼 최소한의 지속가능한 삶이 유지될 수 있나요?? 글쎄요… —————— 여전히 생활고로 목숨을 포기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수 년전 제 또래의 젊은 영화 산업 스태프가 아사로 발견되어 큰 충격을 준 사건이 있었습니다. 당시 제 또래로서 얼마나 안타까워했는지 모릅니다. 세상에 21세기에 아사라니… 그 사람들이 생을 포기해야 할 만큼 지금 시대 물질이 부족한가요, 정말로 먹을 것이 없나요, 돈이 부족한가요? 오늘날 양극화가 심각합니다. 과도하게 고평가된 직업이나 직책들이 있는가 하면 과도하게 저평가된 직업이나 직책들이 있는데 양극화 심화에 기여하는 큰 요인들 중 하나라 생각합니다. 또 사회보장제도의 빈약함도 정말 장기적이고 미래를 위한 관점으로 튼튼하고 촘촘하게 개선해 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덴마크가 국민들 생활체육에 힘쓰고 스웨덴이 국민복지에 애쓰는 이유가 무엇인가요? 건강하지 못한 사람들이 많아질수록, 빈곤계층이 많아질수록 사회적 비용과 부담이 커지기 때문이죠. 그렇게 되면 종국엔 사회전체가 불행해지니까요. 북유럽 모델을 이야기하면 우리나라와 조건이 다르고 어떻고 하는 말들이 꼭 나오는데 “인간을 위한 삶의 질 향상”이라는 궁극적 목적은 심플합니다. 인간이라면 부자로 태어나든 가난하게 태어나든, 학력이 높든 낮든, 사업에 성공하든 실패하든, 능력이 있든 없든, 건강하든 장애를 안고 있든 상관없이 인간이라면 최소한의 “생계”가 아니라 최소한의 “삶”을 영위할 수 있는 사회가 좋은 사회고 건강한 사회라는 것 말입니다. 모두가 인간답게 살수 있는 사회를 만들자고 합의하는 데에 우리는 왜이렇게 어려운 것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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