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만의 '영점 찾기' ] 01. 혹시 평양냉면 좋아하시나요? 저는 웬만한 곳들은 다 찾아다니며 먹을 만큼 애정 하는 음식 중 하나입니다. 물론 저도 처음부터 평양냉면을 좋아하지는 않았습니다.
[ 나만의 '영점 찾기' ] 01. 혹시 평양냉면 좋아하시나요? 저는 웬만한 곳들은 다 찾아다니며 먹을 만큼 애정 하는 음식 중 하나입니다. 물론 저도 처음부터 평양냉면을 좋아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런데 평양냉면 매니아인 회사 동료가 저를 평냉의 세계로 인도했죠. 동료는 가장 대중적인 집 한곳과 가장 매니악한 집 한 군데를 제게 알려줬습니다. 이게 1이라면 저긴 10이니까 그 가운데서 저만의 냉면을 찾아보라는 거였죠. 그 방법은 꽤 신통하게 맞아들어갔습니다. 어느 순간 제가 좋아하는 스타일의 평양냉면을 찾았고 그 포인트를 기점으로 아래 위로 조금씩 맛의 저변을 넓히게 되었으니까요. 02. 근데 저는 꼭 음식뿐 아니라 책이나 영화, 콘텐츠 등을 대할 때도 비슷한 생각이 듭니다. 첫눈에 반하는 것처럼 발견하게 되는 취향도 있지만 가끔은 이리저리 맛을 보며 그 감도를 조절해야 발견할 수 있는 취향도 있거든요. 저는 그래서 누군가가 만들어 낸 것,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어간 것을 대할 때는 늘 '영점을 잡는 과정'이 참 중요하다고 봅니다. 03. 주위 사람들은 제게 자주 책을 추천해달라고 부탁합니다. 그럴 때마다 저는 몇 가지 질문을 던지곤 합니다. 요즘 무엇에 관심이 있는지, 어떤 분야에 대해서 알고 싶은지, 읽고 나면 어떤 느낌이 들었으면 하는지, 심지어 언제 읽을 거고 어디서 읽을 건지 물을 때도 있습니다. 그럼 돌아오는 대답은 늘 하나죠. '그런 거 묻지 말고 그냥 니가 추천해 주고 싶은 거.' 04. 네. 저도 뭐 꼭 기대를 하고 물어본 건 아닙니다. 하지만 웬만하면 상대방이 스스로 영점을 잡을 수 있는 독서를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늘 한켠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의 키워드를 중심으로 스타일이 다른 두 책을 알려주는 경우가 많습니다. 평양냉면으로 치면 1의 책 한 권과 10의 책 한 권을 찾으려 노력하는 셈이죠. 05. 경험이 쌓이면서 깨닫게 되는 건 세상에 균형 잡힌 콘텐츠를 발견하기가 무척 힘들다는 사실입니다.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동전 세우기 하듯 똑바로 서있는 관점을 발견하기란 솔직히 좀 불가능에 가깝죠. 게다가 저에게는 균형인 것이 다른 사람에게는 균형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게 더 큰 문제입니다. 사람마다 밸런스가 작동하는 포인트가 제각각이니 말이죠. 06. 제가 관점의 이동을 통한 영점 찾기를 강조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요즘엔 너무 빨리 깃발을 꽂아버리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거든요. 하다못해 셀카 한 장을 찍더라도 이 앵글이 나을지 저 조명 아래가 나을지 요리조리 이동하며 자신에게 가장 잘 맞는 포인트를 찾으면서, 정작 자기중심을 잡아줄 생각의 포인트는 그냥 지금 주저앉은 자리가 평생 내 자리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꽤 있으니까요. 07. 유명한 관광 명소들에 가면 '뷰포인트(viewpoint)'라는 것이 있습니다. 여기서 바라보면 눈앞에 펼쳐진 풍경을 가장 잘 바라볼 수 있기에 지정된 장소들이죠. 저는 좋은 관점을 가진 사람이란 자신만의 '뷰포인트'가 많은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그 뷰포인트들은 누군가가 설정해 준 것이 아닌, 스스로 수없이 발을 바꾸고 몸을 이동시켜가며 미세하고 정교하게 세팅한 것이어야 한다고 봅니다. 그게 내 관점이 되고 내 주관이 될 테니까요. 08. 저는 평양냉면을 먹을 때마다 마치 내가 내 입맛을 잘 이해하고 있는 것 같아서 기쁘고 즐겁습니다. 분명하게 좋아하는 스타일도 있고, 그걸 기준점으로 여러 가지 다른 냉면들을 비교하며 먹을 수 있다는 사실이 꽤 재미난 일이더라고요. 여기가 내가 정한 뷰포인트지만 날씨와 계절과 기분과 마음가짐에 따라 또 다른 포인트에서는 어떻게 보일까 하는 생각에 매번 새로 영점을 잡는 게 더 신납니다. 09. 사실 요즘은 누군가에게 무엇을 추천하는 것도 좀 조심스러워지긴 합니다만 저는 이 방법만큼은 어느 정도 자신하며 추천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세상에 '균형'이란 말도 어쩌면 약간의 판타지가 가미된 것일지도 모르거든요. 심리적인 안정감에 기대고 있는 워딩일 수도 있고요. 그러니 '균형'이란 최적의 지점을 찾고 그대로 못 박아 두는 것이 아니라 매일 피아노를 조율하는 조율사의 심정으로 스스로의 감각에, 또 타인과의 교감에 세심해지는 과정이라고 봐야 하지 않을까요? 10. 갑자기 냉면 한 그릇이 먹고 싶어집니다. 저만의 뷰포인트는 잘 있는지, 오늘은 거기가 최적일지 아니면 한발 떨어진 곳이 최적일지 궁금하고 기대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