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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뉴욕 센트럴파크 동물원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다. 다른 암수 펭귄들이 알을 품어 아기를 낳고 키우는 것을 본 두 마리의 수컷 펭귄 커플은 둥근 돌을 주워다 품기 시작하고, 이를 본 사육사가 버려진

는 뉴욕 센트럴파크 동물원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다. 다른 암수 펭귄들이 알을 품어 아기를 낳고 키우는 것을 본 두 마리의 수컷 펭귄 커플은 둥근 돌을 주워다 품기 시작하고, 이를 본 사육사가 버려진 알을 둥지에 넣어주었다. 두 마리는 교대로 정성껏 알을 품어 마침내 아빠가 된다. 영국에 사는 일본계 논픽션 작가 브래디 미카코는 이 그림책이 영국 보육업계의 바이블이라고 알려줬다. 그리고 그의 책 에서 두 펭귄의 사랑 이야기에 흠뻑 빠졌던 빈곤 지역 아이들의 리얼한 대화를 들려준다. “내가 알에 있을 때도 엄마랑 아빠가 품었을까?” “아냐, 사람은 알에서 태어나지 않아.” “우리 집에도 아빠가 둘이면 좋을 텐데.” “아빠가 둘이면 왜 좋아?” “아빠가 둘이면 셋이서 축구할 수 있잖아.” "엄마가 둘인 게 더 좋아. 엄마가 축구를 더 잘해.” “우리 집은 엄마밖에 없는데. 하지만 가끔 엄마 남자친구가 와.” “난 아빠 하나에 엄마 둘. 같이 사는 엄마와 주말에 만나는 엄마.” 다양한 가정에 사는 다양한 인종의 아이들. 그 부끄럼 없이 투명한 머릿속엔 ‘정상 가족’과 ‘비정상 가족’의 구분이 없다. 다른 게 당연하니 좋고 나쁜 게 있을 리 없다. 그 마법의 열쇠는 심퍼시(sympathy)가 아니라 엠퍼시(empathy)였다. 엠퍼시가 뭐냐는 질문에 십대 소년은 머뭇거리지 않고 단숨에 답한다. “스스로 남의 신발을 신어보는 것!” 연민의 심퍼시 시대를 살아온 나에게, 더 조심하고 더 배려해서 결과적으로 더 쿨해지는 요즘 아이들의 이런 엠퍼시 DNA는 경이롭다. 심퍼시가 자연스러운 감정이라면 엠퍼시는 고도의 지적 각성 능력이다. 타인의 감정이나 처지를 상상해보고 그 입장이 되어보려고 노력하는 것. 때론 나의 선의에 앞서 상대의 자유의지를 ‘최대값’으로 묻는 자제력. 증오 대신 ‘합리적 불일치’를 최소값으로 두는 우아하게 균형잡힌 태도. 엠퍼시야말로 이 시대의 가장 생산적인 정신 자원이다. 다행히 어른들보다 더 나은 아이들은 저마다 ‘존중의 무게 추’를 들고, 1/n로 이뤄진 다양성의 세상을 향해서 나아가고 있다. 심퍼시의 시대에서 엠퍼시의 시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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