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러분의 아날로그는 무엇인가요? ] 01. 개인적으로 한 달에 한 번 독서모임을 하고 있습니다. 지난 독서모임에서는 이라는 책을 선정해 '균형'에 관한 이야기를 테이블에 올렸습니다. 디지털로
[ 여러분의 아날로그는 무엇인가요? ] 01. 개인적으로 한 달에 한 번 독서모임을 하고 있습니다. 지난 독서모임에서는 이라는 책을 선정해 '균형'에 관한 이야기를 테이블에 올렸습니다. 디지털로 점철된 세상 속에서 무엇을 아날로그로 정의하고 어디까지를 균형이라고 볼 수 있는지에 관한 다양한 관점이 등장했고 정말 즐겁게 대화를 나눴습니다. 02. 그중 클럽 멤버 몇 분이 말씀하신 아날로그의 포인트는 '손에 잡히는 것'이었습니다. 손으로부터 느껴지는 감각을 통해 그 대상의 속성을 이해하고 천천히 받아들이는 행위가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아날로그적인 감성이라는 얘기였죠. 저도 크게 공감했습니다. 03. 우리는 아날로그와 디지털을 그냥 느낌적인 느낌으로만 구분할 때가 많습니다. 사실 아날로그는 실재하는 사물이나 현상의 일부를 여러 물리적인 형태로 변환해 이를 재현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실제 연주를 해야 들을 수 있던 음악을 LP나, 카세트테이프로 옮겨온 것이 대표적인 아날로그죠. 반면 디지털은 너무나 잘 아시다시피 0,1의 신호를 부여해 구현하는 완전히 새로운 체계입니다. 참, 거짓에 해당하는 2진법으로 표현하는 이 세계에서는 애매한 불확실성도 외부 요인에 의한 변수도 제로에 수렴하는 마법이 일어나죠. 그러니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대표적인 차이는 어쩌면 연속성과 불연속성, 가변성과 불변성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겁니다. 04. 모임에서도 몇 번 등장한 사례지만 저는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균형을 정말 잘 맞추어 가는 브랜드가 '애플'이라고 생각합니다. 첨부한 포스팅에서 보여주는 포장 박스의 사례도 그렇지만, 본질적으로는 0과 1의 2진법 세상 안에서 그 사이 끊어진 다리를 이어주는 의도적인 장치들을 발명해 내는 게 애플이 가장 잘하는 것이기도 하니까요. 05. 그래서 저는 무작정 팝업 스토어를 열고, 굿즈를 만들고, 대면 행사를 진행하는 것만이 아날로그적인 진정성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결국 우리의 마음을 움직이는 포인트는 어쩌면 차갑게 끊어졌을 수도 있는 그 작은 공간 사이사이를 어떻게 자연스럽게 이어가느냐의 문제인 것 같거든요. 저는 그게 브랜드로서의 마지막 '따뜻함'을 완성한다고 생각합니다. 06. 올해 최고의 히트곡 중 하나인 이무진의 '신호등'이란 곡을 보면 이런 가사가 있습니다. '붉은색, 푸른색 그 사이 3초 그 짧은 시간. 노란색 빛을 내는 저기 저 신호등이 내 머릿속을 텅 비워버려.' 이 곡에선 우리를 멈추게 하는 것들은 빨간색 신호로, 다시 출발해서 달리게끔 하는 원동력을 파란색 신호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진짜 강렬하게 남아있는 건 오히려 그 사이의 짧은 노란색 신호가 주는 찰나의 혼란스러움이라고 말하죠. 짧기에 강렬했고 불확실했기에 어질어질했던, 그래서 더욱더 붙잡아 놓고 싶었던 순간으로서 노란색 신호의 가치를 표현하고 있는 겁니다. 07. 그렇죠. 아마 완벽한 자율주행의 시대가 온다면 노란색 신호등은 사라질지도 모릅니다. 자동차끼리 서로 신호를 주고받고 완벽한 타이밍에 가고 서고 할 수 있다면 노란색 신호는 불필요한 스펙이니까요. 대신 우리의 그 아쉬움과 서운함을 채워줄 또 다른 장치들이 등장할 수도 있겠죠. 각자의 자동차 내부에서 곧 정차함을 알리는 아날로그적인 신호가 생길 수도 있고 각자가 이를 원하는 방식으로 세팅할 수 있는 옵션이 제공될 수도 있으니까요. 08. 그래서 저는 무작정 과거로의 회귀와 레트로를 부각시키는 방향으로 아날로그의 꽁무니를 따라가는 것만이 답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훨씬 중요한 것은 무엇을 마지막까지 남겨놓을 수 있는지, 무엇하고는 조금 냉정하게 일찍 굿바이 할 수 있는지를 결정하는 게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균형을 맞추는 현명한 방법일 것도 같거든요. 그리고 남겨둔 그 조각을 얼마나 디테일하게 잘 풀어내는지가 애플의 포장 박스와도 같은 역할을 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미래는 또다시 디테일의 싸움에 접어드는 셈이겠죠. 09. 문득 궁금해집니다. 여러분 각자의 아날로그는 무엇일지 말입니다. 마지막까지 놓지 못할 아날로그적 감성은 무엇이고 그게 어떻게 디지털과의 타협과 화합을 이루고 있는지 스스로에게 물어보는 것도 아마 재미난 시도일 수 있겠네요. 누군가에겐 종이책이고 누군가에게는 CD 플레이어일지 모르지만 무엇이 되었든 분명 여러분의 마음에 와닿은 어떤 포인트가 있을 겁니다. 그 포인트를 잘 더듬어보면 내가 어떤 가치를 추구하는 사람인지가 좀 더 명확해질지도 모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