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mmunity

《말이 잘 통하는 사람이 되는 방법》 글을 잘 쓰면 말이 잘 통하고, 말이 잘 통하는 사람은 일을 잘한다. 편견일 수도 있고 경험칙 일수도 있습니다. 개발을 하는 동료와 이야기하다 이런 말을 들었

《말이 잘 통하는 사람이 되는 방법》 글을 잘 쓰면 말이 잘 통하고, 말이 잘 통하는 사람은 일을 잘한다. 편견일 수도 있고 경험칙 일수도 있습니다. 개발을 하는 동료와 이야기하다 이런 말을 들었습니다. "코드를 짜는 것도 글을 쓰는 것과 비슷해". 그때부터 글을 쓴다는 게 남과 소통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빚어내는 일이라고 볼 수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글을 잘 쓰는 방법 중 하나는 언어적 직관을 키우는 것입니다. 내가 몰랐던 언어를 알고, 그 언어의 쓰임새를 이해하고 내가 쓸 수 있게 된다면 생각의 폭도 넓어지기 때문입니다. 중학교 때 교과서에 담긴 시를 배우면서도 감상하지 못했습니다. 청록파 시인의 작품에 담긴 작가의 생각과 시대적 배경을 답안지에 적어 낼 정보로 숙지했을 뿐, 제 세계에서 느끼고 해석할 수 없었죠. 언어적 직관이 부족했으니 상상력, 은유, 함축, 의인화를 이야기해봐야 "풀이 어떻게 말을 해"라는 속마음을 감출 뿐이었죠. 언어적 직관을 키우는 것, 대화가 통하는 것 그리고 글을 잘 쓰는 것은 '문해력'을 중심으로 모두 연결되어 있습니다. [ 큐레이터의 문장 🎒 ] 벌레 먹은 밤을 보면, 에이, 벌레 먹었네~ 하고 버릴 텐데, '가을 달빛 속에 / 벌레 한 마리 / 소리 없이 밤을 갉아먹는다.' 했던 시인이 있습니다. 갑자기 추워진 날씨에 어이구 추워~를 연발하는데, '한밤중에 내리는 서리 / 허수아비 옷을 / 빌려 입어야겠네.' 했던 시인이 있습니다. 왜 기다리는지도 모르면서 기다리는 첫눈인데, '작년에 우리 둘이 / 바라보던 그 눈은 / 올해도 내렸는가?' 했던 시인이 있습니다. 일본의 시인 바쇼가 쓴 한 줄짜리 시들입니다. 그는 평생 이런 철학을 갖고 살았다고 합니다. "소나무에 대해서는 소나무한테 배우고 대나무에 대해서는 대나무한테 배우라." 너무 당연한 말이라 헛웃음이 나올 지경이지만 우리가 흔히 저지르는 실숩니다. 소나무한테 가서 대나무에 대해서 묻고 대나무한테 가서 소나무에 대해 묻고 이래서야 제대로 된 답을 들을 리 엇습니다. 제대로 볼 줄 아는 눈이 없어섭니다. 상대방이 나를 속여서라기보다 스스로에게 속아섭니다. 속이지 맙시다. 세상 그 누구보다도. 바로, 나 자신을. 12년 전에 쓴 라디오 방송 코너 원고다. 방송이 끝나고 DJ가 내게 푸념했다. "소나무에 대해서는 소나무한테 배우고 대나무에 대해서는 대나무한테 배우라니, 무슨 뜻인지 모르겠어요. 너무 어려워." (중략) 그렇다 해도 여전히 변함없는 사실 하나. '나무가 말을 한다'는 문장을 예로 든다면 '나무'와 '말'이 어떤 뜻이냐에 대해서는 가르칠 수 있고 배울 수 있다. 실제로 낱말은 배우고 외워야 한다. 또 '말은 한다'라고 하지, '말이 한다'라거나 '한다 말을'이라고 하지 않는 등의 문법과 형식에 대해서도 가르칠 수 있고 배울 수 있다. 이 또한 물리적으로 배우고 익혀야 한다. 그러나 '나무가 말을 한다.'는 문장이 어떻게 뜻을 가질 수 있느냐 묻는다면 이에 대해 가르칠 수 없고 배울 수 없다. 이는 언어적 직관으로 스스로 획득(철학자 임마누엘 칸트는 '획득'이라는 어휘를 '내가 어떤 것을 내 것으로 만드는 것'이라는 개념으로 사용했다)할 수 있을 뿐이다. 언어적 직관이 부족한 사람에게 시적 상상력, 은유, 함축, 의인화 운운해봐야 난해한 소리로밖에 들리지 않는다. 대화가 통한다는 것은 언어적 직관이 통한다는 의미다.

알림

알림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