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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여 년 전 당시 신혼이었던 직장 후배에게 “술 마시고 늦게 들어가는 날은 어떻게 되느냐?”고 물어본 적이 있다. 대답은 “부부싸움이 일어난다” “늦잠을 자서 다음날 지각하고 상사에게 혼난다” 등

십여 년 전 당시 신혼이었던 직장 후배에게 “술 마시고 늦게 들어가는 날은 어떻게 되느냐?”고 물어본 적이 있다. 대답은 “부부싸움이 일어난다” “늦잠을 자서 다음날 지각하고 상사에게 혼난다” 등 다양했다. 질문을 바꿔서 “그럼 집에 일찍 들어가는 날에는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라고 물었다. 그러면 대답이 굉장히 짧다 “아무 일도 안 일어나는데요.”라는 대답이 대부분이다. 참 이상한 불일치다. 일찍 들어갔으니 집에 있는 시간은 더 많았을테고, 따라서 이후 일어난 일들에 대해서도 더 많은 기억이 있게 마련일텐데, 사람들은 후자의 질문에는 “별일 없었다”라고 답하며 크게 신경쓰지 않았다. 이 현상은 심리학에서 다루는 중요한 현상 중 하나이다. 이른바 ‘사건’과 ‘사건’ 사이의 관련성은 사람들이 머리에 잘 담아두고 이후의 판단에 사용하지만, ‘사건’과 ‘사건 없음’의 관련성에는 주목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이야기를 조직의 리더에게도 한 번 적용해보자. 많은 리더가 ‘우리 조직은 ○○가 없어서 XX하지 못한다’는 식의 한탄을 자주 한다. 여기서 ○○와 XX는 모두 일어나야 할 일들에 대한 생각이며, 대부분은 조직의 생산성이 만족스럽지 못하다는 의미에서 하는 말이다. 그런데 거꾸로 ‘그렇게 문제가 많은 귀하의 조직이 어떻게 아직 유지되고 있는 걸까요?’라고 질문하면 답이 쉽게 나오지 않는다. 생각해 본 적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마치 ‘일찍 들어간 날에는 집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에 대한 답을 어려워하는 것처럼…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안다’라는 말이 있다. 새롭게 들어온 사람보다 나간 사람의 자리가 더 커보이기 때문에 나온 말이다. 이런 말이 왜 있을까? 떠나간 사람이 조직의 ‘아무 일 없음’, 즉 무사함의 유지를 위해 지금까지 해낸 역할을 나중에서야 남은 사람들이 깨닫고 후회하기 때문이다. 지금 현재 조직 내부에서 무언가 뚜렷하게 생산적인 일들이 일어나고 있지 않을 때, 많은 리더들은 어떻게 하면 다시금 변화를 줄까 고민을 한다. 하지만 이것이 전부는 아니다. 특별한 일이 없는 그런 날 리더는 자신의 책상에 앉아서 그 무사함을 즐기거나 변화없음을 한탄할 것이 아니라, ‘조직이 어떻게 아직 버티고 있는거지?’라고 질문하며 지금까지 조직과 구성원들이 무언가를 했기에 ‘막아낸 일’과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에 대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그러면 조직 내 구성원들의 역할과 가치 중 내가 모르고 있었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그리고 평소에는 잘 드러나지는 않지만 조직에서 이런 일을 하는 사람들이 창조적이고 생동감 있는 일을 하는 사람들을 잘 지원해 주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지혜로운 리더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때 그 ‘무사함’의 이유를 생각하며 이미 채워져 있는 조직의 역량을 확인해야 한다. 그래야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채울지에 대한 판단을 더 완전하게 내릴 수 있다. 다소 무료하고 별일 없어 보이는 날이라면 그 ‘아무 일 없음’을 만들어내는 조직의 힘과 이유에도 관심을 기울여 보기 바란다. 그래야만 개혁을 도모하는 과정에서 조직의 안정장치를 풀어버리거나 기본적 무사함을 망가뜨리는 우를 범하지 않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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