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이 디자인은 아니다. 그러나 디자인은 모든 것과 관련 있다.” — 디자인으로 세상을 배웁니다. *음악과 김치의 상관관계? 저는 커리어를 디자인 에이전시에서부터 시작했습니다. 에이전시에
“모든 것이 디자인은 아니다. 그러나 디자인은 모든 것과 관련 있다.” — 디자인으로 세상을 배웁니다. *음악과 김치의 상관관계? 저는 커리어를 디자인 에이전시에서부터 시작했습니다. 에이전시에서의 장점은 저연차일 때부터 다양한 분야의 다양한 프로젝트를 A부터 Z까지 진행해 볼 수 있다는 점입니다. 여러 분야의 BI, 패키지, 편집, 웹디자인까지 두루 경험해 볼 수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돈 되는 일’이라면 다 했던 거지요.) 초기에 음악산업과 관련된 작업이 많았습니다. 첫 출근하고 일주일 내내 했던 작업이 어느 음악서비스의 BI 작업이었습니다. 그리고 운이 좋게도 여러 뮤지션들의 CD 자켓디자인에 참여할 수 있었고요. 요즘 CD로 음악 듣는 분 혹시 계실까요? 아이맥에서 언제 CD 기능이 사라졌는지도 가물가물한데 당시에 대표적으로 벅스뮤직과 같은 서비스들이 있었고 아이팟이나 아이리버로 음악을 감상하는 것이 추세이긴 했으나 뮤지션들의 CD 발매도 활발했습니다. 뮤지션들의 앨범을 다양한 형태의 ‘디지팩’으로 만들었던 작업, 일반적인 ‘P케이스’ 형태이지만 어떻게 북클릿과 ‘R판’을 이용해 디자인 콘셉트를 녹여볼까 고민했던 다양한 CD와 관련된 작업들의 경험 때문에 스트리밍으로 음악을 감상하는 것이 대세인 요즘에도 CD라는 매체가 제게는 우리 윗세대들의 LP와 같은 감성을 일으킵니다. 한 때 좋아했던 가수의 CD를 생일선물로 받기도 했고 저의 롤모델이었던 그래픽 디자이너 스테판 사그마이스터도 한 장의 LP 커버디자인을 보고 디자이너가 되기로 결심한 후 마침내 음악사에 남을 CD 자켓디자인 작업을 진행했던 스토리에서도 그렇고요. 뭔가 음악 CD하면 몽글몽글 아련한 감상에 젖어들게 됩니다. 김치 이야기를 해보고 싶어요. (갑자기??) 얼마 전 생일에 시즈닝된 스테이크를 선물로 받았습니다. 밥은 잘 먹고 다니는지, 골골하지 않게 단백질을 챙겨주고 싶은 마음으로 요리를 잘 하지 않는 저의 라이프스타일을 잘 아시는 제 오랜 멘토님께서 보내 주셨습니다. 처음엔 많이 태워먹고 애를 좀 먹었지만 여차여차 제법 그럴듯하게 모양새는 냈습니다. 그리고 아스파라거스나 감자, 버섯, 단호박 등 어울리는 가니쉬까지 올려야 더욱 모양새가 날텐데 요리를 잘 하지 않는 저의 집 냉장고에 그러한 식재료가 있을 리 없겠지요. 그래서 그냥 얼마 남아 있는 양파를 조금 구워서 엄마가 보내 주신 김치와 함께 플레이팅을 해서 먹었습니다. 맛이요? 기가막혔죠. 요리 솜씨 1도 필요 없이 조리방법을 따라만 해서도 이렇게 레스토랑처럼 맛이 나오다니 요즘 참 잘 나오더군요. 그리고 엄마의 신 김치. 푹 익은 신 김치였지만 스테이크와도 잘 어울렸습니다. 김장은 참 손이 많이 가는 집안의 큰 행사 중 하나였습니다. 김장 준비부터 엄마는 프로페셔널입니다. 모든 과정을 엄마가 지휘, 감독합니다. 아빠도 예외 없이 온가족이 동원됩니다. 제 기억에 김장은 어른들이 하는 것, 힘들고 복잡한 것, 멀리 결혼한 오빠 내외까지 와서 모처럼 가족이 모여 “김장 수육”을 먹는 날로 남아 있습니다. 저는 성인이 되어서도 막내 특혜(?)로 김장의 의무로부터 자유로워습니다. 오히려 직장에서 김장을 처음으로 해봤습니다. 해마다 시청 광장에서 대대적으로 임직원들이 엄청난 양의 김치를 담그는 행사가 있었거든요. 저도 그렇지만 제 주변 친구들 중 김장을 하는 친구는 하나도 없습니다. 여전히 “엄마김치” 아니면 “마트김치”를 먹습니다. 김장은 해본적 없고 할 줄 모르지만 시중에 나와 있는 김치를 사먹는 것에 아무런 거부감이 없기 때문에 굳이 복잡하고 힘든 김장을 해보려 하지 않습니다. 언젠가 “엄마김치”는 우리 세대에게 사라져 가는 CD처럼 아련한 그리움의 대상이 될테지요. 올해 초 저희 회사에서 론칭한 “새미네부엌”이라는 브랜드가 있습니다. 회사 내에서는 출시 전후로 부지런히 임직원들에게 제품을 체험해 볼 수 있는 다양한 행사들을 진행하는데요, 제품 출시에 깊이 관여하는 디자인팀으로서 브랜드의 사명이나 제품의 속성을 잘 이해하고 있었지만 직접 체험해 보니 또 다른 세계였습니다. 정말 알배추 하나와 고춧가루만 있으면 단 십여분 만에 겉절이가 만들어지는 것이었습니다. 심지어 맛도 있습니다. “챔기름” 몇 방울 떨어트리면 기가막힙니다. 막 김장하고 난 다음에 먹는 그 맛이었습니다. 이 신세계를 경험하고 나서 문득 이것이 더이상 김장을 하지 않는 우리 세대가 김치를 만드는 새로운 방식이 될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워낙 만들기 간단하기 때문에 아이가 있는 집에서는 부모와 아이가 같이 만들어 보면서 “김장”의 또 다른 형태로 문화가 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으로도 이어졌습니다. —————— 음악도 김치도 본질이 비슷한 것 같습니다. 시대와 기술이 달라져도 항상 우리의 영혼을 어루만지는 무언가 말입니다. 음악을 듣는 방식은 계속 변화해 왔지만 음악을 통해 누리는 가치는 세대를 막론하고 변하지 않는 것처럼 아무리 김치의 위상이 예전만 못하다 하더라도 우리의 마음 속 어딘가에는 자리잡은 소울푸드가 아닐 수 없는 것 같습니다. 저도 나이가 들어서 일까요. 어느 방송에서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아 보이는데 와인에 김치를 안주로 먹어도 좋다는 송은이씨의 말에 묘한 끌림이 있고 공감이 되더군요. 생일날 먹었던 스테이크와 엄마의 신 김치 조합에서처럼 말입니다. 장마 가운데 모처럼 햇빛이 드리운 금요일이네요. 며칠 전 엄마가 김치를 또 보내 오셨습니다. 영혼을 어루만지는 음악과 와인과 김치로 저녁시간을 보내야겠네요. 오늘도 화이팅! 하시고 모두들 즐거운 금요일!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