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덕트 디자이너가 아닌 프로덕션 디자이너》 한국 영화계를 대표하는 미술감독으로 꼽히는 류성희 님은 스스로 '프로덕션 디자이너'라고 소개합니다. 칸 영화제에서 테크니컬 분야 가장 뛰어난 성취를
《프로덕트 디자이너가 아닌 프로덕션 디자이너》 한국 영화계를 대표하는 미술감독으로 꼽히는 류성희 님은 스스로 '프로덕션 디자이너'라고 소개합니다. 칸 영화제에서 테크니컬 분야 가장 뛰어난 성취를 이룬 팀에게 주는 벌칸상을 미술감독으로서는 처음으로 단독 수상한 크리에이터. , , , , , 등 독특하면서도 아름다운 미장센으로 화제를 모은 한국영화 대부분이 그녀의 포트폴리오입니다. 한국 영화의 미학적 발전을 꿈꾸는 실무형 디자이너, 류성희 님 인터뷰에서 가장 인상 깊은 대목을 꼽았습니다. 어떤 마음가짐으로 일을 해야 할까, 이 질문에 대한 단서를 발견한 것 같아요. “우울한 사람은 과거에 사는 것이고 불안한 사람은 미래에 사는 것이고 평안한 사람은 이 순간에 사는 것이다.” [ 큐레이터의 문장 🎒 ] Q. 미술감독의 아이디어도 중요하지만 영화감독의 안목이 많은 영향을 미칠 것 같아요. 서로 어떠한 방식으로 의견을 나누는지 궁금합니다. 박찬욱 감독, 봉준호 감독, 김지운 감독 등 많은 감독이 워낙 취향도 좋고 비주얼에 대한 욕심도 많아서 함께 작업하면 즐거워요. 감독마다 개성이 제각각인데, 미술감독이라면 영화감독의 세계를 이해하는 능력이 가장 우선이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렇지 않고 디자이너의 취향대로만 작업하면 항상 비슷한 결과물이 나올 거예요. 저는 감독의 세계를 해석하고 변형해 나온 결과물 자체에 흥미를 느끼거든요. Q. 홍익대학교 대학원에서 도예를 공부하고 27살에 영화를 공부하기 위해 미국 유학길에 올랐어요. 당시 이야기 좀 들려주세요. 지금은 종교가 없지만 학창 시절 성당에 다닐 때 항상 이렇게 기도했어요. ‘하느님, 제가 가장 좋아하는 일이 무엇인지 알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제가 무엇을 원하는지 지치지 않게 찾아가길 바랐죠. 고등학교 2학년 때 우연히 TV에서 영화 을 봤어요. 사회와 개인의 문제, 아름다움과 추함에 관한 영화 내용도 좋았지만 시각적 질감에 압도당했죠. 대부분의 영화를 이야기나 배우의 매력에 홀려서 봤는데 ‘만듦새’에 대해 처음으로 생각해보게 한 영화였어요. 을 보며 영화가 불특정 다수에게 영감을 줄 수 있는, 인생을 바꿔줄 수 있는 희망적 매체라는 걸 알게 됐어요. 그 이후 막연히 영화 미술과 관련된 일을 하고 싶었는데 당시 한국에서는 이러한 개념조차 없었어요. 다가갈 수 있는 방법을 모르니 무언가 만들 수 있는 학과인 공예과를 선택한 거예요. 하다 보니 도예가 재밌어서 대학원에 진학해 개인전을 열었어요. 세상 사는 것에 힘들어하는 자신을 의인화한 작품을 만들었는데 어떤 분이 예쁘다며 거실에 걸면 좋겠다고 사 가셨어요. 너무 고마웠지만 그보다 적극적인 소통에 대한 갈증이 시작됐어요. 갤러리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한정된 사람을 만나는 것도 갑갑했고요. 누군가에게 감동을 줄 수 있고 소통할 수 있는, 많은 사람을 만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어 고민하다가 이 다시 생각난거죠. 그리고 28살이라는 조금 늦은 나이에 미국 AFI(American Film Institute)에 진학했어요. 이 길로 오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지요. Q. 프로덕션 디자이너가 하는 일에 대해 좀 더 구체적으로 알려주신다면? 크게 공간 세트 디자인, 소품, 데커레이션 파트로 나눠요. 영화의 콘셉트를 각 파트와 공유하고 조율해나가는 일이에요. 그리고 분장, 의상, 촬영, 조명 등의 감독과 대표로 의견을 나누죠. 외국에서는 아트 디렉터라고 불렀는데, 프로덕션 디자이너라는 단어가 영화 를 통해 등장한 거래요. 외국은 영화 촬영을 진행하는 중이라도 제대로 일을 하지 않거나 분량만큼 해내지 못하면 가차 없이 잘라요. 영화감독도 잘려요. 이러한 와중에 영화의 시작부터 끝까지 꾸준히 자리를 지키고 있었던 사람이 아트 디렉터 윌리엄 캐머런 멘지스(William Cameron Menzies)였어요. 제작자였던 데이비드 셀즈닉이 가 성공한 데에는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된 콘셉트를 이끌어갈 수 있도록 한 윌리엄의 역할이 컸다며 그의 공을 한마디로 표현할 수 있는 단어를 찾다가 프로덕션 디자이너라고 부르게 됐죠. Q. 해외에서는 노장 감독을 어렵지 않게 만나볼 수 있다고 했는데, 먼 훗날 감독님의 모습은 어떨지 궁금하네요. 저 역시 오랫동안 이 일을 하며 진정한 전문가가 되고 싶어요. 영화라는 대중 예술 문화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고 싶어요. 하지만 세상의 모든 일이 아등바등한다고 잘되는 게 아니잖아요. 저는 과거와 미래에 대한 걱정을 안 하는 편이에요. 그런 성격이었다면 아마 이 일을 못 했을 것 같아요. 그저 너무 좋고 아직도 나를 흥분하게 하는 일이니까 하는 것뿐이에요. 노자의 말 중에 이런 게 있어요. “우울한 사람은 과거에 사는 것이고 불안한 사람은 미래에 사는 것이고 평안한 사람은 이 순간에 사는 것이다.” 우리가 행복해질 수 있는 방법은 순간을 즐기면서 열심히 사는 거라고 생각해요. 계획한 대로 사는 게 무조건 옳고 재밌는 삶일까요? 세상 사람 모두에게는 각자 태어난 이유와 역할이 있다고 믿어요. 영화 미술도 결국 제 삶의 일부이고 저는 궁극적으로 계속 그 질문에 따라 답하며 살아가려고 노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