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이 반’이라는 말을 무척 신뢰하는 편이다. 그리고 그에 못지않게 ‘중간이 가장 넘기기 어렵다’는 것도 자주 느낀다. 무엇이든 일단 시작하는 게 어려울 뿐, 시작하고 나서는 시작이 주는 힘에 이
‘시작이 반’이라는 말을 무척 신뢰하는 편이다. 그리고 그에 못지않게 ‘중간이 가장 넘기기 어렵다’는 것도 자주 느낀다. 무엇이든 일단 시작하는 게 어려울 뿐, 시작하고 나서는 시작이 주는 힘에 이끌려가게 된다. 그러니 시작이 반이라는 말은, 달리 말하면 나머지 반은 ‘시작의 힘’ 없이 스스로 이끌어 가야 한다는 걸 의미한다. 시작이 가장 어렵다. 하지만 중간을 넘기는 것 역시 만만치 않다. 그래서 중간쯤 이르러 포기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어쩔 수 없다. 어떤 일이든 성과나 결과랄 것이 제대로 나오려면 시간이 걸리기 마련이니까. 중간까지는 아무런 성과가 없을 수도 있다. 그러다 보면 슬슬 포기할 타이밍을 재게 되는데, 사실은 그때 쯤이 결과라는 게 만들어질 수 있는 토양이 겨우 마련된 시점일 가능성이 높다. 인내심이나 끈기가 있다는 것은, 사실 스스로를 의심하지 않는 능력에 가까울 것이다. “이것 봐, 나는 안돼. 역시 아무 의미 없잖아. 그렇게 힘들게 시작해서 여기까지 왔는데 아무것도 없잖아. 나와는 맞지 않는 거야.” 이런 의문들이 쏟아질 때, 그냥 믿고 계속하는 것이다. 그렇게 ‘중간’을 넘기고 나면, 서서히 노력의 의미라는 것을 조금씩 만나게 된다. 이해되지 않던 것들이 이해되고, 통합되고, 응용된다. 예전에는 불가능했던 것들이 가능해 보인다. 여러 가지 의미에서의 반응이라는 것을 조금씩 경험하게 된다. 그러면 9부 능선까지는 달릴 수 있게 된다. 그리고 9부 능선까지 달리면, 대개 마지막까지 가게 된다. 결국 많은 일에서 핵심은 ‘중간’을 어떻게 견딜까 하는 것이다. 중간의 지옥을 이겨내는 경험을 여러 번 하다 보면, 어떤 일을 하든 ‘지금이 중간의 지옥이로군’이라는 생각을 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이 중간의 지옥을 지나고 나면, 수월하게 달릴 수 있는 평야가 있다는 것도 믿게 된다. 사실, 중간의 지옥에서 할 수 있는 것은 거의 하나 밖에 없다. 그냥 하는 것이다. 마음 속에 어떤 의심이 들고, 의욕 상실의 늪을 헤매고, 절망감이나 좌절감이 앞설 때도 그냥 하는 것이다. 다른 걸 생각하지 말고 그냥 하는 것이다. 중간의 지옥을 빠져 나오는 유일한 방법은, 그냥 하는 것이다. 삶은 늘 선택의 연속이다. 이 일이 내게 어울리는 것일까? 이게 나의 길일까? 내가 올바른 선택을 했을까? 늘 고민을 한다. 그런데 어떤 일이든 중간의 지옥을 겪어보지 않으면, 그 일이 나에게 어울리는지조차 알 수 없다. 그리고 지옥을 통과한 후 나오는 결과와 반응을 보고서야, 비로소 이 일이 내게 어울리는 것이었는지를 알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어떤 일을 시작조차 하지 않으면, 그리고 중간의 지옥을 겪지 않으면, 내 삶에 어울리는 방식을 찾아낼 수 없다. 그래서 나는 모든 일에서, 슬슬 중간 지점에 다다랐다고 느끼면, 곧 이 일의 정체를 알 수 있으리라는 예감이 든다. 그 일이 나의 삶과 어떻게 연결되었는지를 알게 된다. 그러므로 그걸 알고 싶다면 중간의 지옥을 통과해야만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