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지니아 울프 소설이 아닌 수필, 그녀가 어떻게 책을 읽고 그 책으로 어떻게 글을 써내려가는지 알 수 있는 이야기 p. 234 눈(eyes)에는 이렇게 묘한 속성이 있다. 아름다운 것에만 머
버지니아 울프 소설이 아닌 수필, 그녀가 어떻게 책을 읽고 그 책으로 어떻게 글을 써내려가는지 알 수 있는 이야기 p. 234 눈(eyes)에는 이렇게 묘한 속성이 있다. 아름다운 것에만 머무른다는, 나비처럼 화려한 색을 찾고 따스한 볕을 쬔다. 자연이 어렵사리 자신을 가꾸고 광을 내려 애쓰는 이런 겨울밤에 눈은 가장 화려한 전리품을 되가져온다. 이 땅이 전부 귀금속으로 되어 있다는 듯이 작은 에메랄드와 산호 조각을 떼어낸다. 눈이 할 수 없는 일(전문가의 눈이 아닌 평균적인 눈을 말하는 것이다)이 있다면 불분명한 각도와 관계를 드러내는 방식으로 이 전리품을 늘어놓는 것이다. 그래서 이렇게 단순하고 달달한 음식, 따로 구성되지 않는 순수한 아름다움을 한참 즐기고 나면 물리는 느낌이 든다. 휘황찬란한 거리의 용품들을 접고 존재의 어둑한 방안에 물러나기 위해 , 장화 가게 문 앞에 잠깐 멈춰 서서 진짜 이유와 아우 상관없는 사소한 핑계를 만들어낸다. 가게 안에서 우리는 순순히 발 받침대에 왼발을 올려놓으며 “그러면 난쟁이로 사는 건 어떤가요?”라고 물을 수도 있는 것이다. p. 271 이렇게 보면 사람은 나이가 들수록 이성을 동원해 설명할 수 있는 능력이 더 커져간다고도 할 수 있다. 설명할 수 있으면, 망치처럼 나를 강타하는 힘이 무뎌진다. 이는 사실인 것 같다. 특이하게도 난 여전히 그런 갑작스러운 충격을 경험하지만 지금은 늘 그런 충격을 환영하는 것을 보면 그렇다. 처음엔 화들짝 놀라지만 곧 그것들이 특정한 쓸모가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충격을 수용하는 그런 능력이 나를 작가로 만들었다고 말 할 수 있다. 나의 경우 그런 충격이 있으면 바로 그것을 설명하려는 욕망이 따라온다는 추측까지 해볼 수도 있다. 뭔가 세계 맞을 때 그것은 내가 어렸을 때 생각했던 것처럼 일상의 목화솜 뒤에 숨어 있던 어떤 진짜를 나타내는 표식이고 난 그것을 글로 표현함으로써 실제 존재로 만든다. 글로 표헌함으로써만 그것을 총체로 만들 수 있는 것이다. 이 총체성은 그것이 더 이상 나를 해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