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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뜨거움에 대한 노트 요즘 부쩍 더 많이 하게되는 생각이 있다. 좋은 콘텐츠란, 오디언스의 내면에 무언가를 끓게하는 콘텐츠다. 감정가치, 감정경험, 영감, 숭고미 등 그 구체적인 감정의 정체

어떤 뜨거움에 대한 노트 요즘 부쩍 더 많이 하게되는 생각이 있다. 좋은 콘텐츠란, 오디언스의 내면에 무언가를 끓게하는 콘텐츠다. 감정가치, 감정경험, 영감, 숭고미 등 그 구체적인 감정의 정체와 표현은 차이가 있을 것이나, 좋은 콘텐츠는 행동하고, 실천하고, 참여하고 싶게 만든다. 대학원에 있을 때는 ‘글 쓰고 싶은 마음이 싹 사라지게 만드는, 완벽에 가까운 논증'이 좋은 글이라고 믿었다. 생각이 바뀐거다. ‘독자를 압도하는 글'이 좋은 책이나 논문, 보고서가 될 수는 있겠다. 그렇지만 그런 글은 디지털 세계에 얹기에는 너무 길고, 무겁고, 자기중심적이다. 디지털 세계의 콘텐츠는 한 이론가가 말했듯이 ‘구술'에 가깝다. 말은 듣는 상대의 입장에서 출발해야 해야 하는 법. ‘압도'는 대화에 자리가 없는 용어다. 이오의 이 영상은 무언가 깊게 건드리는 지점이 있다. 꽤나 성공한 사람이 과거에 잡지 못한 기회에 대해 정말 진솔한 이야기를 공유하는 경우는 많지 않기 때문이다. 난 한기용님을 잘 모르지만, 영상에서 느껴지는 이분은 진지하고 솔직하다. 솔직히 ‘스타트업 뿜뿜' 콘텐츠도 좋아하는 편이지만, ‘기회를 잡지 않은 자의 자기성찰' 콘텐츠도 나에겐 충분히 감정가치가 있다. 큰 회사에서 기회를 잡지 못한 과거에 대한 솔직한 이야기, 과거의 상처가 미래의 행동, 변화, 혁신을 가로막게되는 심리적 메커니즘에 대한 그의 의견을 듣다보니 나는 ‘어떤 뜨거움', 정확히 말하면 ‘뜨거움에 대한 그리움’이 마음 속에서 피어올랐다. 난 대학원 출신이다. 스타트업에 취직하기 전까지는 일이란 것을 해본 적이 없다. 처음 메일침프를 만질 때, 처음으로 구글 애널리틱스를 열었을 때, 콘텐츠 기획과 작성을 처음 진행했을 때의 감각을 기억한다. 숨이 턱턱 막히는 그 경험을 누가 잊을 수 있겠는가. 자괴감은 물론이고 시야도 좁아진다.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그 때의 나에게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동력이 되어주었던 것은 ‘어떤 뜨거움'이었다. 그래도 뭔가 없던 것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 그래도 글을 써온 사람으로서 내 글은 책임지고 싶다는 마음. 몇백명이든 몇천명이든 사람들이 아침에 5분동안 세상을 접하는 방식을 내가 바꿔놓을 수 있다는 감각. ‘뜨거움'은 전파력이 강하다. 마음을 담은 기획에는 반응이 있다. 사용자가 알아주는 경우도 있고, 동료가 인정하는 경우가 있다. 콜드콜로 이메일을 마구 날릴 때도 초기 스타트업의 에디터를 기억하고 추후에 연락을 주는 분이 계셨다. 메일을 열어보고 너무 감동했다며 피드백을 보내오는 독자의 존재가 가장 큰 힘이었을거다. ‘뜨거움'에는 모멘텀이 있다. 첫 비즈니스 미팅, 처음 참여한 에디터 면접, 사용자와의 첫 통화, 뉴스레터 콘텐츠를 좋아해주시던 독자들의 반응 등을 기억한다. 막히는 지점은 계속 있었고, 숨이 턱 막히는 그 경험이 사라지지는 않았다. 사실 지금도 가끔씩 그런 일이 있다. 그런데 장벽에 가로막히기에는 지금까지의 속도와 기세가 있다. 뜨거움으로, 그리고 이제는 부드러움이나 지혜로 돌파하는 경험이 조금씩 쌓여가고 있는 것이다. ‘뜨거움'은 이타적이다. 문제 해결에서 시작한다. 한때 내가 그래도 괜찮고 내가 만드는 콘텐츠가 그래도 수준 있다는 걸 증명하려는 기획도 많이 했던 것 같다. 회의에서 동료들을 너무 힘들게 해서 회의 끝나고 ‘정말 힘들다'는 피드백을 받은 적도 있다. 콘텐츠와 기획이 누군가의 삶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점을 깨닫고 나서는 ‘문제 발견'에 집중하려고 한다. 나의 ‘뜨거움'은 누군가를 위한 것이란 점, 그리고 내가 정말 뜨겁고 정말 열심히 일해도 상대에게는 1%의 차이밖에 없을 수 있다는 점도 이젠 안다. 내가 다녔던 회사 중에는 가장 큰 회사에 다닌다. 문제 발견이나 페인 포인트, 감각, 실패의 경험 등 모든 측면에서 ‘객관성'이 필요하다는 점을 배우고 있다. 많은 사람과 일하려면 설득하고 보여주고 경험하게할 수 있어야 한다. 뜨거움에 부드러움, 지혜, 노련함을 섞어야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점도 배운다. 그렇지만 가끔 생각한다. 숫자 뒤의 사람을 못 보고 있지는 않을까? 독자의 페인 포인트에서 너무 멀어져 있는 것은 아닐까? ‘야생의 감각'을 잃어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다른 가치들에 밀려 ‘뜨거움'을 상실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나 같은 사람은 계속 작은 회사에서, 고객과 가깝고 야생의 삶에 밀접한 지점에서 살아야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왜 하는지 모르는 일, 결국 누군가의 삶을 개선하지 못하는 일, 고객의 페인포인트에서 출발하지 않은 콘텐츠는 전부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작고 소중하더라도, 미약하고 소박하더라도, 전문적이고 대단하지 않더라도, 누군가의 삶을 바꿔 놓을 수 있는 기획을 하고 싶다. 콘텐츠와 커뮤니티로 인간의 삶은 변한다. 내가 그 증거다. 대학원생으로, 조교로, 토론강사로, 에디터로, 기획자로 경험한 내 몸의 모든 감각이 그렇게 말한다. 친절하고 세심한 콘텐츠와 소통은 인간의 삶을 개선할 수 있다. 독자의 페인 포인트에 대한 ‘뜨거움'이 없다면 글은 일기장이 된다. 전문지식으로 독자의 뚝배기를 깨는, 과거의 교육 패러다임에 안주하는 것들이 나오게 된다. 높은 온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할까? 고민이 깊어지는 주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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