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삶을 가치 있게 만들고 싶다면 인생에서 변동성을 만들어내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매일매일 손실을 보게 된다. 하루라는 시간이 아무런 의미 없이 소멸되는 것이다. 자신이 생각하는 하루의
만약 삶을 가치 있게 만들고 싶다면 인생에서 변동성을 만들어내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매일매일 손실을 보게 된다. 하루라는 시간이 아무런 의미 없이 소멸되는 것이다. 자신이 생각하는 하루의 가치만큼을 사용하지도 않은 채 한강물에 던져버리는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에게는 변동성이 필요하다. 소멸하는 시간 가치를 상쇄하고도 남을 정도의 변동성 가치가 필요한 것이다. 삶에서 변동성은 도전을 의미한다. 매일매일 도전하는 삶 , 그 도전 자체가 삶을 가치 있게 만든다. 도전을 두려워하지 말자. 오히려 도전하지 않음을 두려워해야 한다. 위험한 것은 변동성이 아니라 오히려 역설적으로 비변동성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 자체가 손실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선택하지 않음, 아무것도 하지 않음을 경계해야 한다. 한 곳에 안주하는 정착민의 삶이 아닌 자유로이 떠돌아다닐 수 있는 유목민의 삶을 살아야 한다. 드넓은 유라시아 대륙을 호령하던 칭기즈칸처럼 말이다. 삶의 변동성을 받아들이고 변동성과 친구가 되어야 한다. 변화는 상수다. 변화하지 않음은 인생이라는 옵션의 가치를 길바닥에 내다 버리는 꼴이다. 하루 또 하루 우리는 죽음과 매일 가까워지고 있다. 좋든 싫든 죽음이라는 자기장은 서서히 우리의 목을 죄어온다. 그렇기에 삶의 지평을 넓히기 위해 끝없이 내달려야 한다. 종횡무진 변동성의 가치를 스스로 만들어내야 한다. 움직이지 않는다면 어느 곳에도 도달할 수 없다. 어디론가 가고 싶다면 움직이려고 시도라도 해야 한다. 삶의 궤적을 얼마만큼 동적으로 만들 수 있는가에 집중하자. 세상이 변화하는 속도는 이전보다 더 빨라지고 있다. 변화를 거부하던 신분제 사회는 이제 온데간데없으며, 변화만이 생존의 열쇠가 되는 4차 산업혁명 시대가 불현듯 우리 앞에 찾아왔다. 이는 안주하는 삶이 서있을 자리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 의미다. 변화와 적응, 그리고 혁신을 거부한 19세기 초반 러다이트 운동의 결과가 결국 어떻게 되었는지 우리 모두는 잘 알고 있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