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두 조각상이 있습니다. 왼쪽은 바티칸박물관에 소장 중인 ‘프리마포르타의 아우구스투스상’입니다. 서기 20년경 로마 최초의 황제 아우구스투스를 조각한 이 작품은 로마 미술의 손꼽히는 걸작입니다.
여기 두 조각상이 있습니다. 왼쪽은 바티칸박물관에 소장 중인 ‘프리마포르타의 아우구스투스상’입니다. 서기 20년경 로마 최초의 황제 아우구스투스를 조각한 이 작품은 로마 미술의 손꼽히는 걸작입니다. 환호하는 군중을 향해 제국의 영광을 선포하는 아우구스투스의 모습이 위엄 넘칩니다. 그럼 이제 시선을 강탈하는 오른쪽 조각을 봅시다. 왼쪽 조각에 색을 입혔을 뿐인데 영 시원찮네요. 초등학생이 장난으로 물감을 칠한 것 같기도 하고, 망해가는 놀이공원에서 볼 수 있는 색이 벗겨져 가는 싸구려 조형물 같기도 합니다. 그런데 사실은 2000년 전에 이 조각상이 만들어졌을 그 당시, 실제 조각상은 왼쪽보다 오른쪽에 가까운 모습이었다고 합니다. 순백의 대리석 조각상인 줄 알았던 작품이 실제로는 ‘풀 컬러’였다는 거죠. 다른 대부분의 그리스•로마 조각상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만들어졌을 당시엔 알록달록하게 채색되어 있었다는 게 최근의 연구 결과입니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그리고 우리는 왜 그리스•로마 조각상은 무조건 희다는 오해를 하고 있었을까요? 사람들은 도대체 왜 그리스•로마 조각상이 흰색이라고 생각했을까요? 이런 오해는 사실 우연한 계기에서 비롯됐습니다. 그리스•로마 조각상이 본격적으로 발굴되기 시작한 건 르네상스 시대였습니다. 처음 만들어졌을 당시에는 다채로운 색을 띠고 있었던 조각상들은, 1000년 넘는 시간을 견디며 색을 잃었습니다. 그나마 색이 남아있던 조각상들도 발굴 과정에서 빛과 공기에 노출됐고, 흙을 털어내는 청소 과정까지 거치면서 금세 물감이 벗겨져 버렸죠. 결정적인 사건은 1489년 벌어졌습니다. 로마시대 대리석 조각상인 ‘아폴로 벨베데레’가 로마에서 발굴되어 바티칸 ‘벨베데레의 정원’에 있다는 소식이 들리자, 온 유럽의 학자와 예술가들이 조각상을 보러 몰려들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색이 다 벗겨진 흰색 조각상이었죠. 모인 사람들은 조각상의 완성도와 아름다움에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생각했죠. “이렇게 멋지고 근본 있는 그리스•로마 조각상들은 모두 흰색이니, 우리가 만드는 조각들도 근본이 있어 보이려면 무조건 흰색 대리석으로 만들어야겠구나.” 르네상스 최고의 조각가 미켈란젤로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그는 대리석 산지인 이탈리아의 카라라까지 가서 흰색 대리석을 직접 사오기도 했죠. ‘피에타’를 비롯한 그의 걸작들은 이런 오해 덕분에 더 아름다웠을지도 모릅니다. 하얀 대리석이 조각상의 형태와 아름다움을 강조하는 건 사실이니까요. 아무래도 색이 있으면 조각의 세부적인 형태에는 눈이 덜 가게 되겠죠. 문제는 이런 편견이 사람들의 머릿속에 너무 깊이 박혀버렸다는 겁니다. 르네상스 시대보다 발굴 기술이 더 발전한 18~19세기에 그리스 아테네 등의 여러 유적지에서 색이 입혀진 조각들이 쏟아져 나오는데도 사람들은 이런 사실을 좀처럼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20세기 말까지도 이런 분위기는 이어졌고요. 조각에 색이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공개적으로 이상한 사람 취급을 받았습니다. ‘생각하는 사람’으로 유명한 조각가 오귀스트 로댕은 “나는 원래부터 그리스·로마 조각상에 색이 없었다는 사실을 여기 이 가슴으로 느낀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고대 그리스•로마의 조각과 그 흰색이 완벽한 아름다움의 모범 사례’라는 편견이 사람들의 마음에 너무나도 깊이 박혀버린 겁니다. 근대 미술사에 큰 영향을 미친 독일의 고고학자 요한 요아힘 빙켈만은 “흰 것일수록 아름답다”고 했습니다. 괴테는 “야만인, 무식한 사람, 어린이들은 선명한 색을 좋아한다”고 했고요. 조각상의 물감 자국이 너무나도 선명한 경우에는, “그리스가 등장하기 전 다른 문명의 유물”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미국 아이오와대학 사라 본드 교수는 “당시 학자들은 그리스•로마에서 비롯된 서구 미술이 이집트 등 다른 문화권의 미술보다 우월하다고 생각했고, 흰색 조각상을 그 증거로 여겼다”며 “인종차별적인 인식이 눈을 가린 것”이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사실 그리스•로마 시대에는 다채로운 색이 건강, 지성, 성실성 등 긍정적인 요소를 상징한다고 여겼습니다. 그리스•로마인들은 마냥 흰 피부보다는 햇빛에 그을린 갈색 피부를 선호했죠. ‘오디세이아’에서 아테나 여신이 오디세우스의 모습을 노인에서 젊은이로 바꿀 때 나오는 대목이 이런 인식을 잘 보여줍니다. “그의 피부는 다시 검게 변했고, 턱수염은 푸른색으로 돌아왔다”. 반대로 당시 사람들에게 흰색은 죽은 자가 있는 지하세계를 상징했습니다.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의 큐레이터인 숀 헤밍웨이는 이렇게 말합니다. “만약 당시의 사람들이 요즘 그리스•로마 조각상들을 본다면, 자신들이 ‘귀신의 집’에 있다고 생각했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