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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Q. 망해가는 업무에 투입된 기획자는 어떻게 의욕을 되살릴 수 있을까요? ] * 몇몇 분들께서 1:1 메시지를 통해 질문사항을 보내주시곤 합니다. 그중 같이 한번 이야기해 보면 좋겠다 싶은 내

[ Q. 망해가는 업무에 투입된 기획자는 어떻게 의욕을 되살릴 수 있을까요? ] * 몇몇 분들께서 1:1 메시지를 통해 질문사항을 보내주시곤 합니다. 그중 같이 한번 이야기해 보면 좋겠다 싶은 내용들을 추려서 Q&A로 다뤄보고자 합니다. 몇 편의 시리즈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우선은 제 생각을 성심성의껏 적어봅니다. 01. 이 질문을 보자마자 '와. 정말 나도 이런 생각을 똑같이 했었는데!'라는 말이 입 밖으로 튀어나올 뻔했습니다. 오늘 질문을 주신 분께서는 패션 업계에서 일하는 6년 차 마케터라고 하셨고 일도 직군도 제법 적성에 잘 맞다고 하셨습니다. 다만 한 가지 고민은 늘 정을 붙이려고 하면 담당하는 브랜드가 바뀌고 또 좀 적응되려고 하면 새로운 미션이 떨어진다는 것이었습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큰 고민은 뭔가를 새로 만들고 런칭하는 일보다 누군가 건드리다만(?) 애매한 업무에 투입될 때라고 했죠. 차라리 처음부터 시작할 수 있다면 좋겠는데 이렇게 망해가는 업무 중간에 투입될 때면 일에 대한 애정도 떨어지고 집중도 잘되지 않는다는 게 질문을 주신 분의 솔직한 표현이었습니다. 02. 예전에 에서 릴레이 이어 그리기 코너를 보던 중이었습니다. 다들 아시다시피 이 게임은 첫 번째 멤버가 제시어를 보고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면 그다음 멤버들이 차례로 제한 시간 안에 해당 그림을 최대한 완성해 내야 하는 게임이죠. 물론 제시어는 모르는 상태로요. 저는 그 광경을 보며 제가 처한 상황과 소름 돋게 흡사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나는 이 업무의 목적도 잘 모르는데.. 그리고 앞사람이 무슨 의도로 이렇게 해놨는지 설명도 제대로 듣지 못했는데.. 내 눈앞에 놓인 것이라고는 기괴해진 산출물과 어이없을 정도로 높은 목표만 덩그러니 놓여있었으니까요. 차라리 릴레이 이어 그리기가 무척 인간적으로 느껴질 정도였죠. 03. 근데 이제 10년 정도 기획 일을 하다 보니 관점이 조금 바뀌기는 했습니다. 기획 일이라는 게 처음부터 깨끗한 백지를 받은 다음 내가 원하는 것을 위한 밑그림을 그리고, 좋아하는 것들을 배치하고, 예쁘게 채색까지 해 무난히 무엇인가를 완성할 수 있는 기회는 좀처럼 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았거든요. 대신 '야! 야! 큰일 났어'라는 얘기와 함께 망한 요리 콘테스트에 나가도 이상하지 않을 법한 초토화된 음식에 다시 생명을 불어넣는 작업에 투입되는 케이스가 훨씬 많죠. 04. 우선 오늘 저는 이 결과물에 대한 평가는 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아니 정확히는 할 필요가 없죠. 처음부터 기획이 잘 되었고, 좋은 의사결정 과정과 여러 번의 디벨롭을 거쳤다면 결과물도 좋아졌을 테니까요. 따라서 이럴수록 당황하지 말고 정신 차려 잘 이겨내라, 위기가 기회다 같은 답변은 드리지 않으려 합니다. 다만 우리가 할 일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일에 애정을 가지고 조금 더 나아지게 하려는 의지를 스스로 북돋는 것일 겁니다. 우리의 죽어가는 브랜드나 제품이나 서비스를 보고서 '안녕 잘 가. 우리의 인연은 여기까지였나 보다'라고만 하는 게 능사는 아니기 때문이죠. 05. 이런 상황과 맞닥뜨릴 때면 저는 일단 목표 수정부터 합니다. 지금 이 지경이 된 이유 중 가장 큰 책임은 애초에 잡은 목표 때문일 가능성이 크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선 목표를 다시 들여다보고 현실적으로 조정하는 것에서부터 심폐소생술을 시작합니다. 처음에 만들려고 했던 게 티본스테이크였더라도 이게 아니다 싶을 때는 잘게 토막 내서 찹스테이크라도 만들어야 하고, 그게 아니라면 얇게 저미고 찢어 샌드위치 속 재료로라도 써야 하니까요. 내 손에 들려있는 것으로 완성할 수 있는 최선의 목표를 다시 잡습니다. 06. 그런 다음엔 연결고리를 찾습니다. 수렁에 빠진 문제들의 열에 아홉은 혼자 힘으로 탈출할 수 없는 것들입니다. 따라서 무엇과 연결할 수 있을지, 누구와 손을 잡을 수 있을지, 어디를 레버리지로 활용할 수 있을지를 고민합니다. 저는 이 방법이 분위기를 환기하고 다시 우리 프로젝트에 애정을 갖게 해주는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다시 요리를 예로 들어보자면, 혼자 끙끙대던 찰나에 누군가 옆에 나타나 '내가 뭐 도와줄까? 어떻게 해줄까?'라는 말만 해줘도 힘이 나기 때문이죠. 그렇게 다른 무엇과 연결해 새로운 기회를 찾아보는 것도 훌륭한 대안이 될 수 있습니다. 07. 마지막으로는 조금이라도 나아지는 과정을 적극적으로 공유하라는 겁니다. 사람 마음이란 게 스스로 가망이 없다고 생각하면 자꾸 더 감추고만 싶어지거든요. 하지만 그럴수록 저는 더 과감히 용기 있게 우리의 처지를 알리는 게 중요하다고 봅니다. 그래서 보잘것없는 지표나 매출이라도 내가 시도한 무엇인가를 통해 어제보다 조금이라도 나아졌다면 이를 계속해서 공유하며 분위기를 반등하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흔히 우리가 미디어를 통해 접하는 '다 죽어가던 OO브랜드는 어떻게 10대들의 마음을 훔쳤나'같은 기사들만 봐도 대부분 이 과정이 들어가 있거든요. 한순간에 반전을 노린 것이 아니라 매일매일 조금씩 방향을 틀어 주파수를 잡은 게 주요했고, 이를 끊임없이 내부 동력으로 활용했다는 이야기가 한결같이 담겨있기 때문입니다. 08. 오늘도 여러분들 앞에 무엇인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기괴한 그림 한 장이 놓여있다거나 정체는커녕 원재료가 무엇인지조차 파악할 수 없는 요리가 끓고 있을 수 있습니다. 물론 시간도 하염없이 흐르고 있을 테고요. 하지만 기획자에게 필요한 역량 중에는 '만들어내야 하는 역량'도 있지만 '수정해 내고, 디벨롭해내야 하는 역량'도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길 바래봅니다. 솔직히 기획물의 대부분이 결과론적인 해석이지만 그 결과론에 좋은 이야기 하나 덧붙일 수 있는 기회도 결국 우리가 계속해서 다듬고, 고치고, 바꾸는 과정에서 나올 수 있는 거니까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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