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표가 일치된 팀, 목표에 공명하는 팀 저는 ‘완전연소’라는 단어를 좋아합니다. 이제는 ‘노력의 신화’를 믿지 않지만, 가장 강력한 팀 문화 중 하나는, ‘하얗게 불태워도 아깝기는 커녕 미안하기
목표가 일치된 팀, 목표에 공명하는 팀 저는 ‘완전연소’라는 단어를 좋아합니다. 이제는 ‘노력의 신화’를 믿지 않지만, 가장 강력한 팀 문화 중 하나는, ‘하얗게 불태워도 아깝기는 커녕 미안하기만 한 팀’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죠. 제가 뉴미디어 스타트업에서 일할 때의 이야기입니다. 대학원에서 공부만 했던 저에게 시사 콘텐츠를 만드는 일이 쉽지는 않았죠. 특히 그때의 팀이 추구하는 방향은 간결하고 선명하게 정보를 전달하자는 것이어서, 악시오스(Axios)를 따라한 개조식 글쓰기에 사안의 다층적인 측면을 단면으로 쪼갠 ‘문단뉴스’ 방식으로 글을 썼고, 인포그래픽도 에디터가 전부 만들었어요. 노션도 처음 써보고 인포그래픽을 만든다고 캔바(Canva)라는 툴도 처음 다뤄볼 때였죠. 자괴감이 몰려오는 때가 있었어요. 대학원에서 배운 것들을 최대한 우겨넣고자 책과 논문을 읽고 쓰면 오히려 콘텐츠를 작성하는 일이 너무 힘들었어요. 동료들과의 피드백 과정도 어려웠죠. 기자, 잡지 에디터, 프리랜서 에디터, 대학원 출신인 저 네명 모두가 출신과 글쓰는 방식이 달랐거든요. 힘들 때면 성수동에 있던 회사 건물에서 멀지 않은 공원을 몇바퀴고 돌곤 했던 기억이 납니다. TMI지만 이 때 드라마 스타트업의 을 그렇게 무한반복해서 들었더랬어요. 이 과정을 돌파할 수 있었던 에너지는 제 내부의 ‘완전연소의 욕구’가 ‘고객의 피드백’을 만났을 때였습니다. 그래도 어쨋든 좋은 콘텐츠를 만들자고 모였으니 의견이 다른 에디터분들과 우당탕탕 회의와 소통을 이어갔고, 유료는 아니었지만 독자의 반응이 왔던 거죠. 콘텐츠 비즈니스의 구독자는 2030 사무직 직장인이 많은 것 같아요. 여기서는 공유하기 어렵지만 뉴스레터 데이터만으로도 읽어낼 수 있는 것들이 좀 많거든요(속닥속닥). 그런데 ‘눈물의 피드백’을 보내온 것은 다른 분들이었어요. 지식 콘텐츠와 함께 시사 관련 각종 캠페인이나 인터뷰도 시도했었는데, 메세지에 힘을 써서, 정말 불과 혼을 담아서 썼을 때는 반응이 왔죠. 덕분에 어려운 시사 이슈를 공부하고 있다며 일상에 빛을 줘서 너무 감사하다는 고등학생 독자도 있었습니다. 어떤 노신사께서는 저희가 보내드리는 콘텐츠를 거의 모두 읽으시고 깊게 읽은 사람만이 할 수 있는 피드백을 주시기도 했습니다. 작고 소중하지만 콘텐츠의 팬층이 생겨났고, 매번 콘텐츠에 피드백을 주시는 분도 계셨죠. ‘불의 욕구’가 ‘고객의 피드백’을 만났을 때, 고생은 보람이 되고, ‘나’는 ‘팀’이 됩니다. 작고 소중하고 아직 무료지만, 우리 팀이 하고 싶었던 것, 우리가 가진 작고 소중한 가설이 검증되고 있는 것이었죠. 무미건조한 피드백이 아니라 독자가 느낀 감동과 가치가 날것으로 전해지는, 길고 솔직한 편지들을 통해서요. 스타트업계에 있다보면, 팀의 목표를 일치(Align)시키라는 말을 많이 듣게 됩니다. 저도 ‘얼라인’이라는 은어를 많이 쓰곤 하죠. 그런데 제 경험으로는, 사실 일치는 별로 중요하지 않아요. 같은 단어인 것 같아도 목표 일치가 지적인 작업이 된다면, 사람들은 다 다르게 받아들이거든요. 예를 들어 ‘쉬운 시사 콘텐츠’를 만든다고 하면 10명의 에디터가 생각하는 ‘쉬운 콘텐츠’는 다를 수 있습니다. 조금 더 추상 수준을 높여 ‘사람들간의 연결’을 추구하거나 ‘심리스한 지식 경험’을 기획한다던지, 조금 더 그럴듯한 비전과 미션도 모두 동일한 문제를 가지고 있어요. 바로 이해의 맥락을 넘어야 한다는 문제죠.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비전과 미션을 정리하는 문서를 만들고 CEO가 이걸 설명하는 자리를 가져도 동일한 문제가 생길 수 있어요. 공명하기 전까지는요. 제가 생각하는 ‘공명’은 살의 떨림입니다. 사용자를 감동시킨 콘텐츠를 만들어본 사람만이 알 수 있는, 정말 날것의 느낌이죠. 콘텐츠는 마감 노동입니다. 제가 만들어본 정말 보잘것 없는 것들이라도, 오타 없고 걸리는 부분 없이 만드려면 모바일 테스트도 하고 계속 손봐야 해요. 지리산으로 여행가서도 밤까지 피시방에서 마감을 친 적도 있죠. 그런데 이렇게 마감한 콘텐츠로 ‘누군가의 삶을 바꿀 수 있다’는 감각을 체득한 에디터는, ‘완전연소’를 갈구하기 시작합니다. 콘텐츠에 마음을 담는다면, 내가 세상에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는 느낌이 오거든요. 아주 작고 소중한 변화라도요. 어렵고 딱딱한 지식에 목말라했던 고등학생이 이 콘텐츠로 콘텐츠 경험을 새롭게 할 수 있었다면, 이제 다른 질문이 시작됩니다. 이 살의 떨림을, 더 큰 진동으로, 지진으로, 쓰나미로 만들수는 없을까? ‘공명’하는 팀은 우당탕탕을 통해 이런 살의 떨림을 공유하는 팀입니다. 함께 밀어붙이면 어떤 결과물이 나오는지, 고객이 어떻게 반응하는지 몸으로 살으로 피로 알고 있죠. 굳이 문서를 만들어 얼라인을 하고 QNA를 할 필요가 없어요. 가끔씩은 그런 생각을 합니다. 내가 받았던 ‘완전연소’의 경험이라는 소중한 경험을, 나는 충분히 나누고 있는지. 아니 지금 나는 불태우고 있는지. 불태운다는 것이 반드시 갈아 넣는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을 겁니다. 단지 내가 하는 일이 누군가의 삶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진리를 살로 경험하며 나아가는 것이죠. 퍼블리에서 두번의 아티클을 낸 경험이 있습니다. 다행히도 두번째 발행한 콘텐츠도 10위권에 올라 안도하고 있는데요, 가끔 우울할때면 댓글창을 봅니다. '내가 또 한건 했군'이라고 안도할 수 있거든요. 내가 한 일로 누군가는 가치를 느낀거죠. 이 콘텐츠를 발행하며 함께 일했던 매니저님께서는 항상 ‘고객들이 어떤 반응을 보여줄지 기대되고 떨린다’고 말씀하셨어요. 설렘과 떨림은, ‘불’을 경험한 사람만이 쓸 수 있는 언어죠. 누군가의 삶에 변화를 만들어본 적이 있는 사람은, 태도가 달라질 수밖에 없으니까요. ‘아, 콘텐츠를 만들고 편집한다는 일이, 그냥 컴퓨터 앞에서 키보드 두드리는 사이즈의 일이 아니구나. 이건 세상을 바꾸는 일이구나.’라는 느낌이 온몸을 흔들어요. 목표에 공명하는 팀에서 완전연소하는 삶을 살고 싶습니다. 내가 하는 모든 일이 결국 누군가의 삶의 변화에 일말이라도 기여한다는 확신을 가지고 싶어요. 제가 계속 스타트업에서만 일하려고 하는 것은 이 때문인지도 몰라요. 떨림이 없는 일상은 너무 지루하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