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력은 배신하지 않는 게 맞을까? 노력한다고 모든 것을 다 잘할 수 있게 되는 것은 아니다. 시간은 배신하지 않는다는 말도 언제나 맞는 것은 아니다. 시간은 나를 배신하기도 한다. 마음을 담지 않고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 게 맞을까? 노력한다고 모든 것을 다 잘할 수 있게 되는 것은 아니다. 시간은 배신하지 않는다는 말도 언제나 맞는 것은 아니다. 시간은 나를 배신하기도 한다. 마음을 담지 않고 보낸 시간이라면 말이다. 겹겹의 시간 사이에 마음과 고민과 상처와 욕망이 그득그득 눌러 담겨야 비로소 시간과 노력의 대가를 받을 수 있다. 뉴스레터 크루 회의에서 이런 질문을 받았다. 레터 콘텐츠 글 한 편 쓰는 데 얼마나 시간이 걸리냐고. 간단한 질문인데도 쉽게 답할 수가 없었다. 이 글을 쓰기까지 걸린 시간을 어디서부터 세어야 할지 고민이 되었기 때문이다. 책상에 앉아 키보드를 두드리기 시작해서 글을 쓰는 데는 3시간이 걸린다. 그렇다면 나는 글 한 편 쓰는 데 3시간이 걸리는 걸까? 아니다. 미리 글의 소재, 구성과 타이틀 생각 정리가 끝난 경우에만 글쓰기를 시작할 수 있으니까 그 시간도 포함해야 한다. 글쓰는 3시간은 출퇴근 시간에 적는 메모, 책 읽으면서 만든 글 설계도를 정리하는 시간인 셈이다. 그래서 3개월이라고 대답했다. 보통 한 주제를 3개월 정도 골똘히 생각하면서 중간중간 메모한 기록을 모아서 하나의 글을 만든다. 한 번에 생각하는 주제들이 10개 정도 되니까 10개의 글을 3개월 동안 쓰는 셈이다. 90일 동안 10개의 글을 쓰는 것으로 계산하면 한 편의 글을 쓰는 데 걸리는 시간은 9일 이다. 다시 궁금해졌다. 정말 그럴까? 피카소는 몇 분만에 그린 초상화의 가격을 50만 프랑 (약 8,000만원)이라고 말했다. “고작 몇 분 밖에 안 걸렸는데 50만 프랑이라고?” 항의하는 사람에게 피카소는 “나는 당신을 그리는 데 40년이 걸렸습니다.” 라고 답했다. 피카소 스타일의 그림을 그리게 되기까지 40년 동안 훈련한 시간까지 한 장의 그림 안에 포함시켜야 한다는 그의 당당함을 떠올리자 대답을 수정하고 싶어졌다. 글 한 편 쓰는 데 25년이 걸렸다고 대답하고 싶어졌다. 10살때부터 취미로 글을 쓰면서 어린이 공모전에 출품하기도 하고, 논술 수업을 들으면서 매일 원고지 2,000자 쓰기를 연습하기도 했다. 꾸준히 책을 읽고 써왔던 그 모든 시간들을 다 더해야 맞는 것 아닐까. 팀에 주니어가 합류하면 빠르게 내가 하는 만큼 해주기 바라는 마음이 생긴다. 정확하고 빠르게 일을 해주기 바라고 동시에 넓은 관점으로 일을 대하기를 바란다. 내 이야기를 듣고 남편이 이렇게 말했다. “신입사원이 나만큼 일을 하길 바라는 거, 되게 부끄러운 거야. 내가 하는 일의 깊이가 얕다는 거잖아. 누구든 금방 배워서 따라할 수 있는 수준이라는 거잖아.” 글 한편 쓰는 데도 자그마치 25년이 걸렸고, 일을 꽤 능숙하게 해내는 데 5년, 회사라는 조직을 이해하는 데 7년, 내가 하는 일을 정의내리는데 10년이 걸렸다. 글 한 편을 쓰는 데 25년이 걸렸다고 인정하는 일은 잘난 척이 아니다. 시간과 노력이라는 단어로 납작해지지 않는 나만의 고민과 진심을 솔직하게 드러내는 것이다. 애써 낮출 필요가 없다. 앞으로 누군가 글 한 편 쓰는 데 시간이 얼마나 걸렸다고 물으면 당당하게 “25년이요.” 라고 말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