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K] ‘1인분’에 대한 생각
최근에 ‘1인분'이라는 키워드가 뜬다고 한다. 팀플 온라인 게임에서 주로 사용되는 용어인데 개인 플레이어에게 1인분의 몫을 해낸 것으로 점수가 매겨지기도 하고, 1인분을 못하는 플레이어들은 조 편성에서 소외되기도 한다는 것이다. 그러던 것이 조직 생활에서 1인분을 못하는데 월급을 받아 가는 사람에 대한 불만, 1인분보다 더 많은 인분을 해내는데 1인분 정해진 월급만 받는 것에 대한 불만, 1인분을 해내야 한다는 부담과 같은 대화로 나온다고 한다. 요즘 뜬다는 ‘조용한 사직(Quiet quitting, 주어진 일 이상을 해야 한다는 생각을 그만두는 것, 직장을 그만두지는 않지만 정해진 시간과 업무 범위 안에서만 일하고 초과근무를 거부하는 노동 방식)과도 맥이 닿아있는 사회 흐름이 아닐까 싶다. 미국에서 대학원을 다닐 때 ‘디자인 플래닝'이라는 수업을 들었었다. 4명씩 그룹을 지어 과제를 진행했는데 과제가 끝나자 교수는 팀원들을 평가하라며 평가서를 주었다. 그 평가서엔 2가지 질문이 있었다. “1) 해당 과제로 100만 불의 투자금을 받았다. 어떻게 나눌 것인가?” “2) 을 당신 회사에 채용할 의사가 있는가?” 평가서를 받고 적잖은 문화 충격과 멘붕이 왔다. 그룹 과제를 하다 보면 충돌도 있게 마련이고, 누군가는 무임승차를 하기도 하고, 누군가 희생을 하기도 한다. 그래도 결과가 나오면 모두가 함께 이룬 일로 같이 나누는 것에 익숙하던 나에게는, 가히 충격적인 평가서였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질문이 날카롭자 나의 생각도 분명해졌다. 100만 불을 나눠야 한다고 생각하니 4명의 기여도가 모두 1/n 등분 하지 않았다는 게 선명했다. 각 팀원을 내 회사에 채용을 할 것이냐는 질문은 더욱 날카로웠다. 4명 모두를 채용하지 않아도 되니 꼭 채용하고 싶은 사람, 그리고 여기엔 실력뿐 아니라 인성적인 부분까지 고려가 되었다. 기여도와 별개로 같이 프로젝트하면서 일하기 어려웠던 친구들은 채용하겠다는 답변이 나오지 않았다. 그리고 나에 대해 다른 그룹원들이 어떻게 평가할지가 떠오르자 등골이 오싹해졌다. 1인분에 대한 생각들 1) 본인은 1인분을 한다고 생각하는데 1인분을 못하는 사람, 정말 열심히 노력하는데 1인분을 못 채우는 사람, 어떻게 해도 정해진 월급이 나온다는 관성에 익숙해서 1인분을 하지 않는 사람. 이런 사람을 보며 억울해 할 필요 없다. 시간이 흐르면 자연스럽게 도태된다. 2) 1인분을 해내는 건 사실 대단한 일이다. 주변에 월급루팡이 많다면 분위기에 휩쓸려 본인의 1인분의 본분을 잊는 실수를 범하면 안 된다. 내가 해야 하는 1인분의 몫이 조금 버겁게 느껴지는 게 성장 가능성이 있는 좋은 기회임을 명심하자. 3) 각자가 해야 하는 1인분이 다르다. 사장은 사장이 해야 하는 1인분이 있고, 신입사원은 신입으로 해야 하는 1인분이 있다. 과장이 과장의 월급을 받고 대리 2인분의 일을 하면 그건 2인분을 하고 있는 게 아니라 본인의 1인분을 못하고 있는 것이다. 본인이 해야 하는 1인분의 일을 분명하게 이해해야 한다. 4) 다른 사람들을 도와주느라 나의 1인분을 못해내는 실수를 하지 말자. 거절을 잘 못하는 사람일수록 하는 일은 엄청 많은데 정작 본인의 1인분을 제대로 못해내는 경우가 있다. 자신의 몫을 제대로 해내는 게 가장 중요하다. 5) 딱 1인분까지만 하겠다고 선을 긋는 사람이 있다. 이런 사람 중 성공하는 사람은 그의 넘치는 실력을 모두 익히 알고 있는 경우이다. 이런 사람은 위급 상황에 기꺼이 도움이 되기도 하고, 그의 스웩 넘치는 선언이 좋은 롤 모델이 되기도 한다. 겨우 1인분을 하는 것과 넘치지 않게 1인분만 하는 건 매우 다른 성장 포텐셜이다. 6) 1인분에 대한 평가. 기업은 1인분을 해내는 걸 meet expectation이라고 평가한다. 맞는 말인데 그렇게 해서는 승진이 어렵다. 1인분을 더 해내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기업 입장에서는 당연 보상을 해줘야 하는 부분이지만, 1인분을 더 해내는 게 당연하다는 분위기가 만들어지는 건 결코 달갑지 않은 부분이기도 하다. 7) 1인분을 다하지 않는 동료 혹은 상사를 보며 화가 나거나 억울하거나 무력해져서 나를 포기해버리는 실수를 하지 말자. 그건 그들의 인생이고 나는 나의 인생에 집중해야 한다. 나에게 주어진 1인분을 늘 달성하는데도 버거움이 없거나 더 많은 일을 해내고 있다면, 다른 사람을 보며 억울할 게 아니라 나의 성장을 위해 새로운 도전을 해야 하는 신호이다. 나는 늘 넘치는 1인분의 몫을 한다. 맡겨진 일이 많아서 그렇기도 하지만, 내가 자처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일을 너무 좋아해서 불만은 없으나, 잘못된 기대치를 만들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고민이 들 때도 있다. 아시아인은 원래 일을 많이 한다는 선입견을 만들거나, 저렇게 일을 해야 승진을 한다는 선입견을 만들거나, 저런 사람과 같이 일을 하려면 나도 1인분이 넘치게 일을 해야 한다는 생각을 만들고 있지는 않는지 조심스럽다. 특히 리더가 된 후론 넘치게 일하는 리더가 꼭 좋은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 때가 종종 있다. 좋은 롤 모델이 되는 건 참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