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브랜드가 되려는 계획 없이 브랜드가 된 프라이탁
1️⃣ 프라이탁은 1993년 스위스 취리히에서 시작됐다. 1970년과 71년생 연년생 형제인 마르쿠스 프라이탁과 다니엘 프라이탁 형제가 자신들의 성을 브랜드 명으로 활용했다. 2️⃣ 스위스는 재활용에 진심인 재활용을 굉장히 잘하는 나라다. 유리용기의 경우에는 94%, 페트병의 경우에는 81%를 재활용하는 나라. 1970년에는 국민투표로 연방헌법에 환경보호에 관한 조항을 개정 하기도 했다. 3️⃣ 스위스의 아름다운 자연환경을 보고 자란 사람들이라면 그 자연 환경을 보호 하고 싶은 마음이 들 수 밖에 없다. 그런 분위기에서 자란 프라이탁 형제는 학교에서 지구 온난화에 대한 수업을 듣고 난 후에 집으로 돌아와서 새차를 사지 말고 자전거를 타자고 설득하기도 했다고 한다. 4️⃣ 집에서는 부모님이 음식물 쓰레기로 직접 퇴비를 만들고, 장난감도 재활용품 모아서 만들어 주기도 했다. 프라이탁 형제 역시 어릴 때 부터 못쓰는 물건을 모아서 새로운 물건을 만드는 것을 좋아했다. 15살때는 여기저기 못쓰는 부품을 긁어 모아서 자전거를 만들기도 했을 정도. 5️⃣ 이 형제들은 프라이탁이 성공한 지금도 자전거를 타고 다닌다고 하는데, 그래픽 디자인 전공을 하던 학생시절에도 역시 자전거를 타고 다녔다. 그러다가 불편한 지점을 맞이 하게 되었다. 1) 스위스는 비가 자주오는 곳이라서 가방 속에 넣어둔 스케치한 종이들이 젖게 되었고 2) 자전거를 타고다니면서 백팩에서 뭔가를 꺼내는 것이 불편했다. 6️⃣ 가방이 필요하긴 한데, 새로 사기는 아깝기도 하고 원하는 것을 찾기는 어려웠어서 직접 만들어야 겠다 결심했다. 그 당시 살고 있던 집은 월세가 낮은 도로 주변에 있던 곳이었는데, 우연히 도로를 지나가는 트럭에 덮힌 방수포를 발견했다. 방수도 되고, 튼튼한 방수포를 발견하고는 자전거 타고 근처에 공장에서 방수포를 얻어왔다. 집 욕조에서 방수포를 빨고, 폐차에 있던 안전 벨트랑 자전거 튜브 등을 구해서 어머니가 쓰시던 낡은 재봉틀을 활용해서 가방을 만들었다! 그렇게 만들어진게 프라이탁의 첫번째 메신저 백이었다. 7️⃣ 가방에 대한 반응이 좋아지게 되자 그들은 디자인 일을 멈추고 가방을 만들기에 전념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따로 투자를 받지는 않고 가방 하나 팔아서 그 돈으로 다시 두 개 만들고 그 돈으로 다시 네 개 만들기를 반복하면서 천천히 꾸준히 키워가고 있다. 8️⃣ 추후에 프라이탁 브랜드의 성공비결을 묻는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아마도 프라이탁 브랜드를 만드는데 필요한 최고의 계획이란, 브랜드가 되려는 계획 자체를 세우지 않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자연스럽게 성장했고, 또 그게 힘을 발휘했습니다. 투자자의 요구나 필요에 의해서가 아니라 우리 스스로 좋은 것이라고 생각하는 일을 하고 중심을 잃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 프라이탁 형제 이야기는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인 것'이라는 이야기를 다시 한번 떠올리게 했다. 브랜드를 만들고 싶은 많은 분들이 실수 하는 것 중에 하나는 자신의 히스토리, 자신이 살아온 과정,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등 자신에 대해 깊이 고민하지 않고, 외부에 영향을 받아 창업을 한다는 것이다. 요즘에 이게 돈이 된다더라. 요즘에 이게 잘나간다더라. 사실 그렇게 시작한다고 해서 돈을 벌 수 없는 것은 아니겠지만, 정말 오래가는 브랜드를 만들려면 자신이 살아온 과정을 돌아보고 거기서 힌트를 얻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프라이탁 형제는 본인들이 브랜드가 되려는 계획이 없었다고 이야기 한다. 그들은 그냥 살던대로 살다보니 브랜드가 되었다 라고 이야기할 수 있을 듯 하다. 하지만, 아마도 그런 자신들의 스타일이나 철학을 지켜가는 일을 쉽지 않았을 것이다. 빠르게 성장하려 하기 보다는 느리더라도 꾸준하고 일관되게 자신의 이야기를 고수하는 노력을 했을 것이고, 사실 어찌 보면 그게 가장 큰 계획이 아니었을까 싶다. 분명히 투자를 받으면 더 빨리 성장하고 더 많이 퍼질 수 있었겠지만, 그렇게 하는 것이 자신들의 철학과 맞지 않기에 느리더라도 투자 없이 천천히 성장하고 있다고 보인다. '자연스러운 성장'이라는 말이 머릿 속에 맴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