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 에디터의 슬픔과 기쁨
❗ ‘브랜드의 비전, 가치, 전략에 부합하는 콘텐츠를 기획, 작성, 편집하고 회고해 개선하는 일’ 콘텐츠 에디터의 일을 한 문장으로 정의한다면 위와 같이 정리할 수 있겠습니다. 제가 말하고 싶은 ‘콘텐츠 에디터’란 텍스트가 주요 정보 전달 미디어인 디지털 콘텐츠를 특정 목적으로 활용하는 회사에서 ‘에디터’ 직군으로 일하는 사람인데요, 위 문장에서 ‘작성’을 포함한다면 ‘콘텐츠 에디터’, 작성을 제외하고 외부 협업이나 콘텐츠 구매 등을 주로 한다면 ‘콘텐츠 매니저’로 정의되는 것 같습니다. 이 글에서는 에디터와 매니저를 포함해 얘기해보겠습니다. 사실 콘텐츠 매니저도 기본적인 콘텐츠 기획과 작성 역량은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제가 함께 일해본 에디터 분들은 다음과 같이 구분해 볼 수 있습니다. - 언론사(일간지, 주간지, 월간지, 방송) 출신, 기자 지망생 - 출판사 출신 - 라이터 출신(출판 작가, 자유 기고가 등) - 프리랜서 에디터 - 스타트업 콘텐츠 에디터 제 짧은 경험에서 가장 재미있었던 포인트는 두 가지인데요, 1) 어떤 종류의 미디어에서 일했느냐에 따라 글 쓰고 편집하고 협업하는 습관이 다르다는 점입니다. 물론 지나친 일반화는 경계해야겠지만 정보 사이클에 따라 얼마만큼의 유통기한을 가진 글을 써왔는가가 기획의 스코프와 연관이 있는 것 같더군요. 2) 제 짧은 경험으로는 아직 대학원 출신 에디터는 만나지 못했습니다. 저도 스타트업에 입성하기 전까지는 위 다섯 종류의 회사/미디어에서 일해보지 못했기에, 함께 일하는 분들의 다름과 비슷함, 습관과 업계의 통설 같은 것들을 때론 매우 흥미롭게, 때론 매우 비판적으로 경험했죠. 콘텐츠 분량을 ‘000자’가 아닌 ‘원고지 00매’로 가늠한다든지, 특정 콘텐츠 양식(스트레이트, 역피라미드 등등)에 매우 익숙하신 분들이 있다던지, 특정 업계 사투리(’야마’)가 재미있었다던지 등이죠. 남은 이야기는 몇 개의 꼭지로 나눠서 풀어보겠습니다. 1️⃣ 스타트업 에디터의 비애 2️⃣ 좋은 콘텐츠 에디터란? 3️⃣ 콘텐츠의 또 다른 이름은, ‘구체적 사랑’ 1️⃣ 스타트업 에디터의 비애: ‘에디터 사실 그렇게 중요한 직군 아니에요’ 전에 일하던 곳에서 겪었던 일입니다. 워낙 작은 곳이고 초기 스타트업이니 대표님은 에디터 직군의 직원들과도 비즈니스와 연관된 이야기를 하고 싶어 했습니다. 다만 제가 본 일부 에디터분들은 사회생활 동안 ‘글밥’만 먹고 살아온 분들이었기 때문에 콘텐츠 기획, 작성, 편집 외에 다른 일에 별다른 관심이 없으셨어요. ‘나는 글을 쓰는 사람’이라고 정의해왔기 때문일 거예요. 대표님 입장도 이해가 갑니다. 아마 이렇게 생각하시지 않았을까요. ‘여긴 스타트업이고, 콘텐츠로 어떻게 가치를 창출해서 비즈니스와 연결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을 함께해야 하지 않겠나. 글 쓰고 편집하는 일만 할 거면 왜 미디어를 버리고 뉴미디어로 왔나.’ 문제적일수도 있는 발언이지만… 저는 사실 대표님 입장과 유사한 생각이었습니다. 계속 새로운 콘텐츠 기획해야 하고, 데이터도 보고 인터뷰도 하고 할 수 있는 걸 해서 어떻게 하면 사용자의 삶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 콘텐츠를 만들지 고민하는 게 우리 일 아니냐고요. 2️⃣ 좋은 콘텐츠 에디터란? 콘텐츠로 원하는 결과를 만드는 사람. 에디터와 매니저의 구분을 제외해버리면, 제가 생각하는 좋은 콘텐츠 에디터 상에 다다르는 것이 더 쉬워집니다. 직접 기획해서 쓰건, 외부 필자와 협업해서 글을 뽑아내건, 이미 작성된 글을 밖에서 사 오건, 스타트업은 콘텐츠를 특정한 목적으로 활용합니다. 정리하면 다음 정도가 되겠죠. - 브랜드 경험(마케팅, 브랜드 커뮤니케이션, 채용 브랜딩, 블로그 등) - 프로덕트 경험 개선(무료 콘텐츠 피드, 커뮤니티와 연결, UX Writing 등) - 메인 비즈니스 모델(콘텐츠 개별 판매, 콘텐츠 플랫폼 유료 구독 등) 비영리가 아닌 영리기업에서 일하는 사람이라면, 자신이 왜 그 일을 하는지 이해해야 합니다. 개인 기고가가 아닌 이상, ‘멋들어진 글을 써서 사람들이 읽을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은 비즈니스 목표가 아니죠. 브랜딩, 프로덕트, 비즈니스 중 콘텐츠의 역할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이해하고, 사용자(독자)에게 최대 가치를 제공하는 콘텐츠를 기획하고 만드는 일이 에디터의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콘텐츠는 마감 노동이고, 디테일이 매우 중요합니다. 글은 볼수록 고칠 데가 많으니까요. ‘텍스트’라는 매체가 커뮤니케이션에 기여할 수 있는 무한한 가능성에 설레고 이 일은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만, 동시에 ‘마감’이라는 끝단의 일까지 완성도 있게 해내야 한다고 생각해요. 3️⃣ 콘텐츠의 또 다른 이름은, ‘구체적 사랑’ 콘텐츠와 커뮤니티에 관심이 많습니다. 제품 기능의 시대, 정보 가치의 시대가 저물고 이제는 감각, 가치, 감정의 시대가 왔다고 생각하거든요. 모두가 OEM을 쓸 수 있고, 모두가 글로벌 1위 미디어에서 양질의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시대에 브랜드는 브랜딩, 디자인, 콘텐츠, 그리고 비즈니스로 ‘비기능적 가치’를 증명해야 하죠. 콘텐츠는 인간의 삶을 바꿔놓을 수 있는 강력한 힘이 있다고 생각해요. 짧거나, 전문적이지 않더라도 내가 필요한 내용을 디지털에 적당한 문법으로, 내 페르소나에 적합한 톤앤매너로, 아름다운 디자인과 함께 전달하는 콘텐츠는 숭고하고 아름답습니다. 전에 만들었던 뉴스레터에 한 독자가 타입폼으로 보내온 메시지가 있었어요. 정말 특별하고 대단할 것 없는, 제가 ‘그분이 오셔서’ 마음 담아 썼을 뿐인 짧은 뉴스레터였습니다. 고등학생 독자는, 시사 정보를 이렇게 쉽고 세심하게 정리해주는 데가 없다며, 레터를 구독하고 자신의 삶이 변화했다고 썼어요. 저는 그때 깨달았어요. 디지털은 ‘그냥 글 몇 개 써서 편집 좀 하는’ 사람이었던 에디터를, 누군가의 삶을 바꿔놓을 수 있는 강력한 주체로 바꾸어 놓았다고요. 대량 생산의 시대에 공장 노동자의 몸값은 낮을 수 있어요. 하지만 초개인화 시대에는요? 오마카세, 큐레이션, 소믈리에, 가이드, 도슨트의 시대가 왔잖아요. 사용자의 취향을 이해하고, 그가 무엇을 궁금해하는지 알고, 어떤 정보를 어떤 방식으로 전달해야 ‘숭고하고 아름답게’ 느껴질지 알고 있는 에디터는 그가 브랜더고 디자이너고 변화의 주체라고 생각해요. 취향을 알고 있는 사람이 섬세하게 준비한 도시락처럼, 좋은 콘텐츠는 구체적 누군가에게 배움의 기쁨, 공감의 확장, 성장의 습관을 전달하는 ‘구체적 사랑’이라고 생각합니다. 더 좋은 콘텐츠가 많아졌으면 좋겠어요. 에디터가 디지털 시대에 촉망받는 직업군이 되기는 어려울지 몰라도, 비즈니스에 기여하고 인간의 삶을 바꾸는 자부심을 느끼는 사람이었으면 좋겠어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