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게 '마지막 퍼즐'일 거라는 환상 ]
01. 혹시 일을 하다 보면 그런 적 없으신가요? 그동안 내가 생각해왔던 것들이 편견이나 고정관념을 넘어 그저 판타지에 불과했다고 깨닫게 되는 순간 말이에요. 그 판타지 중에는 사회생활을 시작하자마자 얼마 안 돼 와장창하고 깨지는 환상이 있나 하면 꽤 오랜 시간이 지나야 비로소 인정하게 되는 환상도 있습니다. 그동안 내가 신기루를 쫓으려 쏟아부은 시간과 정성을 생각하면 사실 꽤나 속 쓰린 상황과 마주해야 함이 분명하죠. 02. 저에게도 그런 환상이 하나 있었습니다. 저는 이걸 '마지막 퍼즐'에 대한 환상이라고 부르는데요, 오랜 기간을 씨름해도 쉽사리 풀릴 기미가 보이지 않는 문제를 눈앞에 두고, 이 모든 걸 한방에 해결해 줄 너무도 정확히 딱 들어맞는 한 조각 퍼즐이 있을 거라고 믿고 또 찾게 되는 현상을 이렇게 표현하곤 합니다. 03. 그런데 사실 이 '마지막 퍼즐'에는 두 가지 함정이 있습니다. 하나는 문제를 단 한 가지로 정의하게 되는 오류에 빠진다는 점입니다. 보통 이 '마지막 퍼즐'이란 단어를 입에 올리기 시작할 즘이면 웬만한 옵션은 모두 검토해 보고 어지간한 문제는 대부분 해결한 상태일 확률이 큽니다. 그러다 보니 현실을 타개하게 할 지점을 오직 한군데에서 찾으려는 심리가 발동하게 되죠. 그리고 자연스럽게 이 문제만 해결하면 마치 고장 났던 자동차가 시원하게 시동이 걸리고 금방이라도 질주할 수 있는 상태가 될 거라는 착각을 하게 됩니다. 시야가 한없이 좁아지는 순간이죠. 04. 다른 하나는 '찾는다'의 오류라고 할 수 있겠네요. 우리는 흔히 퍼즐이란 말을 들으면 직소 퍼즐(Jigsaw Puzzle)을 가장 먼저 떠올립니다. 사실 이 '직소'란 단어는 건축 현장에서 자재를 자를 때 쓰는 톱의 한 종류인데요, 즉 누군가가 직소 톱으로 큰 판을 조각 내면 그 조각들을 다시 이어 붙여 원래의 모양으로 되돌리는 방식이라는 의미에서 사용되기 시작한 겁니다. 하지만 잘 아시다시피 이건 물리적인 쪼개기와 이어 붙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그러니 남은 퍼즐 한 조각을 얻기 위해 집중하다 보면 '만든다'에 대한 옵션 없이 '찾는다'에만 매달리게 되는 거죠. 애초에 존재하지 않을 수 있는 것을 찾느라 끊임없이 에너지를 낭비할 수도 있는 문제가 발생하는 겁니다. 05. 그리고 앞서 언급한 이 두 가지 오류가 결합되어 더 큰 착오를 만들어내는 순간이 있는데요. 바로 존재하지 않는 이 마지막 퍼즐이 그 무엇도 아닌 '사람'일 거라는 환상입니다. 다시 말해 어디에서, 어떤 경로로, 무엇과 충돌하여 문제가 생겼는지를 짚어보기 전에 '이 마지막 퍼즐을 풀어줄 사람을 모셔와야겠다'는 해답을 내리고 마는 거죠. 저는 이게 가장 최악의 선택이라고 생각합니다. 06. 흔히 '우린 이제 마케팅만 잘하면 되니 마케터를 데려오자', '우리는 인사와 조직 관리 경험이 없으니 HR 권위자를 데려오자'는 식의 답을 내리는 의사결정자들을 참 많이 보게 됩니다. 물론 그게 해답일 경우도 있겠지만 제 경험 상은 열에 아홉의 확률로 문제와 해결법이 모두 틀린 사례가 많았습니다. 개개인이 모여 조직을 일구고, 그 조직들이 모여 다시 공동의 목표를 위해 달려가는 구조 안에서는 문제가 하나일 수 없고 그 해답 역시 개인 한 명일 수 없기 때문입니다. 07. 그래서 어느 시점부터는 남은 문제가 하나라고 생각이 들면 이 직소 퍼즐 같은 사고방식을 버리려고 애쓰는 편입니다. 원 포인트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면 모든 지점을 다시 한번 확인하고 그 연결고리들을 파악하는 게 우선일 테니 말이죠. 그리고 그 과정에서 튀어나오는 문제들은 시스템이 해결해 줄 때도 있고 자본이 해결해 줄 때도 있으며, 때로는 시간이나 타이밍이 해결해 줄 때도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현실이라고 생각했던 부분은 환상이었고 환상이라고 생각했던 부분은 지극히 현실이었던 셈이죠. 08. 글을 정리해야 할 때쯤이 되니 문득 이 말이 떠오르네요. 영국의 철학자이자 수학자인 버트런드 러셀(Bertrand Russell) 백작이 이런 말을 남긴 적이 있거든요. "수학은 내게 '문제 하나에 답 하나'라는 것을 알게 해주었고 철학은 내게 '문제 여러 개에 답도 여러 개'라는 사실을 알려주었다. 흥미로운 지점은 우리가 사는 인생이 수학과 철학이 뒤섞여 그 형태를 파악할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한 세계라는 점이다." 그러게요. 어쩌면 우리가 하는 '일'이란 존재 역시 수학과 철학이 제멋대로 얽히고설킨 그런 모습의 존재는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