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가 일하는 영역이 '스포츠 그라운드'가 되려면? ]
01. 건축가 유현준 교수님께서 학교라는 공간에 관한 질문에 답하시며 이런 철학을 풀어놓으신 걸 들었습니다. "저는 학교가 '스포츠 그라운드'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저 방만하게 놀게만 하는 플레이 그라운드여서도 안되고 피 튀기며 전쟁하는 배틀 그라운드여도 안된다고 보거든요. 공정한 룰로 좋은 경쟁을 유발하되 그 문화는 리스펙 받을 수 있는 스포츠 그라운드가 제일 이상적인 것 같아요." 02. 저 역시 120% 공감합니다. 그리고 저는 교육과 관련해서 큰 고민을 해보지 못한 사람이기 때문에 사실 그 워딩이 직장인의 관점에서 더 와닿더라고요. 어떤 측면에서 보자면 우리가 일하는 회사 역시 '스포츠 그라운드'의 문화를 가져야 한다는데 포커스가 맞춰진 셈이죠. 03. 직무 특성상 다른 회사의 문화나 제도를 들여다봐야 할 기회가 있는데 그럴 때마다 드는 생각은 밸런스가 잘 잡힌 회사 문화를 찾기가 참 힘들다는 사실입니다. 정말 유현준 교수님이 지적하신 대로 어떤 곳은 플레이 그라운드고 또 어떤 곳은 배틀 그라운드거든요. 외부에서 바라보는 시각과 직원 복지의 관점을 고려해 지나치게 자유로운 문화만을 내세우는 곳도 있고 반대로 오로지 'Result talks'를 맨 앞에 두고 매일매일 최전선에서 전투를 치르는 회사도 있으니까요. 꼭 무엇 하나를 선택하지 않고서는 쉽게 용납이 안되는 분위기가 기저에 깔려있단 생각도 들었습니다. 04. '그럼 어떻게 해야 스포츠 그라운드 같은 회사 문화를 만들 수 있느냐?'라고 하면 저도 사실 뾰족한 대답을 내놓을 수는 없습니다. 다만 감히 하나의 청사진을 제시해 보자면 개인적으로는 팀 종목과 개인 종목이 모두 리스펙 받을 수 있는 환경이 가장 이상적인 스포츠 그라운드라는 의견입니다. 05. '이건 또 무슨 소리냐?' 하시겠지만 우리나라의 회사 문화는 개인 문화와 팀 문화가 잘 조화된 케이스가 참 드물다고 생각합니다. 즉, 팀 문화 위에서 개인이 존재하되 그 개개인의 가치관이 살아 움직일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지 않은 거죠. 이를 위해서는 저는 두 가지 측면을 고민해 볼 수 있다고 보는데요, 하나는 '시작과 끝이 예측 가능한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게임에 방해되는 요소를 최대한 지워나가는 것'일 수 있겠다 싶습니다. 06. 회사원으로 살다 보면 이런 생각이 듭니다. 이건 언제 어떻게 시작된 거고 대체 누가 무슨 수로 마무리 지을 건가 하는 생각이요. 개별 프로젝트나 과업은 시작과 종료가 비교적 명료하지만 애매모호하고 추상적인 목표들은 늘 잊을만하면 다시 탑다운으로 내려오곤 하거든요. 그럼 어쩔 수 없이 현재 하고 있는 일들에까지 그 영향이 가기 마련입니다. 07. 때문에 스포츠 그라운드 문화를 만들려면 목표와 함께 기간을 공표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스포츠에 열광할 수 있는 것은 게임-라운드-리그-컵 이라는 기간별 그리고 목표별로 명확한 체계가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이 다양한 유형의 경기 시스템이 각 선수와 팀, 구단에 동기를 부여하고 목표와 과정을 설계하게 만드는 역할을 하죠. 그러니 회사라는 시스템도 구성원들로 하여금 현재 참여하고 있는 게임이 어떤 성격인지를 체감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게 중요한 것 같습니다. 그럼 언제 누구를 배치하고 어느 부분을 선택하고 포기해야 하는지도 명확해지겠죠. 08. 더불어 플레이어들이 일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는 것도 정말 핵심 중의 핵심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건 '각자 잘하는 일에 몰두하자'는 뉘앙스와는 좀 다른데요, 실제 스포츠에서처럼 그 게임 자체가 재미있고 유의미해질 수 있는 요소를 지속적으로 발굴해 내야 한다는 뜻에 더 가깝기 때문입니다. 세상에는 수많은 스포츠가 존재하지만 냉정하게 얘기하면 인기 종목이라고 불리는 스포츠는 손에 꼽힐 정도입니다. 물론 거기엔 다양한 이유가 엮여있지만 역시 제일 큰 차별점은 '재미'죠. 하는 사람도 재밌고 보는 사람도 재밌으니 여기서 파생되는 임팩트가 어마어마한 부가가치를 발생시키는 겁니다. 09. 그러니 회사라는 리그도 안팎에서 바라보는 관점이 모두 매력적인 공간이 되어야 하는 것 같습니다. 그 안에서 일하는 플레이어도 그 직종과 직군을 바라보는 관중들도 모두 흥미로워야 그 산업 자체가 긍정적으로 발전할 수 있으니까요. 어떻게 하면 각자의 필드가 유혈이 낭자하지 않으면서 동시에 소꿉놀이처럼 시시하게 보이지는 않을지를 고민하는 것도 굉장히 중요한 포인트라고 봅니다. 10. 물론 이 두 가지 관점이 지극히 제 개인적인 뇌피셜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포인트가 없으면 늘 목적지를 찾지 못하는 법이니까요. 거창하게 산업이나 직군을 화두에 올릴 수는 없더라도 적어도 우리 회사, 우리 조직, 나와 함께 일하는 사람들부터 이 느낌을 가질 수 있는 현실적인 장치들을 마련하려는 노력도 꽤나 의미 있을 것 같다고 생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