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무슨 목적으로 만나느냐에 따라 물리적, 화학적 관계가 형성된다. 그렇게 형성된 관계는 그야말로 역동적이다. 내가 어찌할 수 있는 것보다 그렇지 않은 것이 더 많다. 다른 사람들은 내 맘 같지
사람은 무슨 목적으로 만나느냐에 따라 물리적, 화학적 관계가 형성된다. 그렇게 형성된 관계는 그야말로 역동적이다. 내가 어찌할 수 있는 것보다 그렇지 않은 것이 더 많다. 다른 사람들은 내 맘 같지 않고, 내 맘은 다른 사람에게 아무것도 아닐 때가 많다. 게다가 내 목적이 누군가의 목적과 상충할 때 삶은 철저히 고단해진다. 그 고단함의 괴로움은 이루 말할 수 없어서, 이것은 사람에 대한 실망으로 번지기도 한다. 한 가지 유념해야 할 것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언제나 갈등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목적이 같아도, 목적이 달라도 사람과 사람은 갈등한다. 사람이란 원래 그런 존재다. 혼자 있을 때도 ‘나’와 갈등하는게 사람이란 존재 아닌가. 오히려, 목적이 같으면 더 갈등하기 십상이다. 직장이 그렇다. 다양한 인생의 군상이 모인곳. 먹고 살아야 한다는 공동의 목적은 서로의 갈등을 오히려 증폭한다. 오히려, 직장은 갈등으로 굴러가는 곳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의도적인 갈등 조성이 아이러니하게 회사를 굴리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일로 만난 사이는 일반적인 만남과 다르다. 때로는 이 사람을 직장이 아닌 곳에서 만났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이유다. 직장에서 사사건건 부딪치는 사람도 밖에서 만났다면 맞장구치며 크게 웃는 사이가 될 수 있고, 직장에서 잘 지내는 사람도 개인적으로 만났다면 그만큼의 케미가 나오지 않을 수도 있다. 어찌 되었건, 직장에서 일로 만난 사이엔 뭔가 ‘벽’이 라는게 느껴진다. 때로는 일부러 그 벽을 유지해야만 하는 경우도 있다는 것이 일로 만난 사이의 특징이다. 벽을 두고 지내는 사이는 서로를 불편하게 하고 고단하게 하기 일쑤지만, 한 가지 좋은 점도 있다. 그것은 바로 나 자신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시야가 생긴다는것이다. 직장에는 3가지 ‘나’가 있다. ‘되고 싶은 나’와 ‘되어야 하는 나’ 그리고 ‘되어진 나’. • 되고 싶은 나: 내가 추구하는 나의 모습 • 되어야 하는 나: 맡은 바 업무나 직책을 개인적인 성향, 바람과 다르더라도 해내야 하는 나 • 되어진 나: 누군가에게 각인된 나. 수군거리는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나. 제3자의 눈에 보여지는 나 이 3가지의 괴리가 크면 직장생활이 힘들다. 반대로 이 괴리를 줄이면 조금 더 나은 직장생활을 할 수 있다. 바꿔 말하면, 그 괴리를 인지하고 인정하고 받아들인다면 이전보다 나은 나를 만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지난 날을 돌아보면 이 3박자가 어우러지지 않을 때 직장생활이 힘겨웠다. 나는 ‘되고 싶은 나’를 주장하지만,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되어야 하는 나’로 바라보기 일쑤고, ‘되어진 나’를 생각 없이 떠벌리고 다닌다. 그것들은 나에게 때론 상처가 되고, 또 가끔씩은 칭찬이 되어 나를 들뜨게 한다. 증요한 건, 이런 내 모습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기회를 포착하는 것이다. 제3자의 눈으로 바라본 나를 인정하지 않으면 고달파진다. 슬럼프와 번아웃이 찾아 왔을 때마다, 나는 ‘되고 싶은 나’에 집착하고 있었음을 고백한다. 슬럼프와 번아웃은 직장인을 초라하게 만든다. 바닥을 친 느낌이다. 바닥을 치고 지하를 뚫고 내려가 어디까지 내려갈지 모르는 그 암담함은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내가 어찌할 수 없다는 무기력함이 엄습한다. 이럴 때마다, 나에게 좋은 말을 들려준 선배들이 있다. 나는 그 말들을 가슴에 담으면서 아마도 그 하루를 기어이 보내곤 했다. 주옥과도 같은 그 말들을 정리하여, 다시금 힘을 내보고자 한다. 1️⃣“흔들려봐. 그거, 불필요한 게 떨어져 나가는 과정이야.“ 큰 위로였다. 그렇다고 덜 흔들린 건 아니었다. 그러나, 적어도 내가 왜 흔들리고 있는지를 깨달았다. 흔들림에 의미를 부여하니 나는 과연 무엇을 떨쳐내고 있는지 살펴보게 되었다. 적잖은 욕심, 욕망 그리고 잘못된 열정이 후드득 털려 나가고 있음을 느꼈다. 2️⃣“모든 사람은 장점 3가지와 단점 3가지가 있어. 그중에서 난 장점 3가지를 봐.” 다른 사람의 장점을 본다는 것은 곧, 나의 장점도 상기할 수 있다는 뜻이 된다. 잘못되고 틀린 모습에 집착해 흠을 찾아내던 내 모습에 흠칫 놀라기도 했다. 세상을 바라보는 것은 ‘나’고,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도 ‘나’다. 오늘 나는 좋은 것과 나쁜 것 중, 어느 것을 더 많이 봤을까? 3️⃣“야! 원래 직장은 되는 일도 없고, 안 되는 일도 없어.” 이 말을 듣고 무언가를 포기하고 체념할 수 있는 용기가 생겼다. 그리고 이는 직장생활뿐 아니라 우리 삶에도 적용되는 말이다. 정말이다. 세상은 되는 일도 없고 안 되는 일도 없다. 그러자 ‘되는 일’과 ‘안 되는 일’에 대한 이분법적 생각을 놓게 되었다. 직장생활이란, 그리고 삶이란…쉬우면서도 쉽지 않고, 어려우면서도 어렵지 않다. 일로 만난 사이. 벽을 두고 지내는 사이. 결국은 먹고 사는 그 목적이 같아 아웅다웅하는 사이. 직장을 벗어나면 그때 왜 그랬을까 후회하는 사이. 그렇다고 해서 굳이 다시 만나 친목을 도모하고 싶지는 않은 사이. 그럼에도 갈등만 있는 사이로 지내기보단 내가 선배들로부터 얻었던 그 통찰과 위로의 말을 나도 누군가에게 전해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힘들 때 나를 다시 일어나게 해주었던 주옥 같은 말들은, 아마 그 선배들의 넘어짐에서 오지 않았을까? 그렇기에, 심하게 넘어져 본 나도 역시 언젠가 누군가를 일으키게 하는 말을 해줄 수 있을거란 희망을 가져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