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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의 중심은 어디일까?” 이 질문을 받으면,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즉각 ‘허리‘라고 답할것이다.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그 중요성을 알기 때문이다. 허리 한 번 삐끗하면 정말 힘들다. 그리 무겁지

“몸의 중심은 어디일까?” 이 질문을 받으면,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즉각 ‘허리‘라고 답할것이다.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그 중요성을 알기 때문이다. 허리 한 번 삐끗하면 정말 힘들다. 그리 무겁지 않은 것조차 들지 못한다. 그렇다고 가만 앉아있거나 누워있기도 힘들어서 정말 고역이 아닐 수 없다. 그렇다면 ’마음의 중심’은 어디일까? 허리처럼 마음의 중심이 어디냐고 물을 때, 선뜻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대답하기가 참 애매하다. 답이 명확히 떠오르지 않을 땐, 질문을 바꿔보면 좋다. “마음의 중심이란 뭘까?”로 말이다. 다행히 심리학에는 마음의 중심을 나타내는 용어가 있다. ‘호메오스타시스’다. •호메오스타시스(Homeostasis) Homeo(same)와 stasis(to stay)의 합성어로, 외부 환경과 생물체 내의 변화에 대응하여 순간순간 생물체 내의 환경을 일정하게 유지하려는 현상. 쉽게 말해 최적의 상태를 유지하려는 ‘항상성’을 의미한다. 생리학에서 시작된 개념이다. 사람 몸속 세포들은 신비스럽게도 환경의 변화를 감지해서 스스로를 조절한다. 외부 기온이 떨어지면 몸을 떨게 하고, 기온이 높아지면 땀으로 열을 조절한다. 너무 배불러도 기분 나쁘고, 너무 배고파도 그렇다. 너무 바빠도 힘들고, 너무 지루해도 견디지 못하며, 덥거나 추운 건 참지 못한다. 기분이 너무 ‘업‘된 것도 좋지 않고, 너무 ‘다운‘된 것도 문제가 된다. ‘호메오스타시스’를 쉽게 표현할 수 있는 말로 ‘평정심‘이 있다. 감정의 기복 없이 평안하고 고요한 마음을 일컫는 이 단어는, 한자로는 ‘평평한‘이란 뜻을 내포하며, 영어사전을 봐도 ’Balance‘란 풀이를 쉽게 찾을 수 있다. 하지만 직장은 호락호락한 곳이 아니다. 평정심을 갖기가 쉽지 않다. 순간순간 마음의 중심을 휘젓는 일들이 도처에 널려 있다. 직장은 개인의 행복보다는 조직의 목표가 더 우선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함께 일하는 사람들의 성격이나 일처리 방식이 제각각이기 때문에 갈등이 생길 수 밖에 없다. 개개인의 ‘호메오스타시스’가 달라, 누군가에게 편안한 상태가 누군가에겐 불편한 변수도 있다. 허리를 삐끗하면 온 몸이 힘들듯이, 마음의 ‘중심‘을 유지하지 못하면 우리는 마음의 힘듦, 즉 ‘불행’을 느끼게 된다. 그래서 우리는 어서 빨리 그 ‘중심‘을 다시 잡고 행복을 찾으려 노력한다. 이처럼 ’평정심‘은 사람의 감정과 연관되어 있다. 상사로부터 질책을 받았다고 생각해보자. 아마 하루 종일 기분이 좋지 않을 것이다. 억울함과 슬픔, 분노 그리고 울컥하는 마음이 교차된다. 어쩌면 직장에서 ‘마음의 중심‘을 잃게 되는 가장 비일비재한 순간일 것이다. 유관부서나 업무 파트너와 의견 대립이 있을 때도 마찬가지다. 특히, 나와 상반되는 KPI를 가진 상대와 얘기하는 상황은 매우 소모적이다. 당장 설득되지 않는 상대를 마주하다 보면, 이내 감정이 개입되고 마음의 중심이 흔들리며 결국 평정심을 잃는다. 마음의 중심을 잡지 못하는 경우는 나 자신으로부터 오기도 하는데, 그것은 ‘불안’에서 야기된다. 아직 닥치지 않은 일에 대한 걱정, 순간순간 해야 하는 선택에 대한 두려움, 어떻게 될지 모를 나의 운명에 대한 것이 대부분이다. ‘하고 싶은 일’보단 ‘해내야 하는 일‘이 더 많다는 것도 직장인으로서 평정심을 지키기 힘든 요인 중 하나다. ‘중심‘을 잡는 것은 ‘기술’이다. 평형대 위에 있다고 생각해보자. 처음엔 새로 오픈한 어느 상가 앞 춤추는 풍선처럼 허우적댈 것이다. 하지만 이내 중심을 잡고 나면 손쉽게 그 평형대를 건널 수 있다. 우리는 그 허우적댐이 쓸모없는 몸짓이 아니라, ‘중심’을 잡기 위한 ‘기술’이란 걸 알아 차려야 한다. 마음의 중심을 잡는 것도 마찬가지다. 오만가지 감정을 겪고 허우적거려 봐야 ‘중심‘을 찾을 수 있는 것이다. ’연습‘이 필요하고, ‘기술’로 익혀야 한다. 그렇다면 평정심을 갖기 위한 좋은 방법은 무엇일까? 1️⃣내 마음의 ‘감정’을 알아차린다. 자기 객관화를 하면 ‘감정’을 바라보고 ‘불안‘을 줄일 수 있다. 사람들은 보통 자신이 느끼는 ‘좋지 않은 감정'이나 ‘불안'을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피하려는 경향이 짙다. 마주할 용기가 없고 불쾌하기 때문이다. 이것을 객관화하면 자신을 좀 더 들여다볼 수 있고, 그 감정과 불안에 대처할 수 있다. 제3자의 입장에서 스스로를 보면 닥치지 않은 것에 대한 걱정이나, 중요한 선택 앞에서 우유부단한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다. 그것을 받아들이고 인정할 줄 아는 것이 내 ‘감정’을 알아차리고 문제를 해결하는 첫걸음이다. 2️⃣메시지와 감정을 분리하는 연습을 한다. 일은 결국 사람과 한다. 그리고 대부분의 스트레스나 감정 기복은 그 사람들로부터 온다. 오늘 혹시 기분 나쁜 일이 있었는가? 평정심을 잃었던 근래의 어떤 상황을 생각해보면 분명 그것은 ‘사람’과 연관되어 있을 것이다. 사람은 커뮤니케이션을 할 때 감정을 섞는다. 최대한 객관적으로 말하려 노력해도, 비언어적 요소가 가미되기 때문에 듣는 사람은 무언가를 느낀다. 표정, 말투, 억양과 당시의 상황 등이 모두 어우러지며 나타나는 현상이다. 이때, 그 말에 담긴 ‘메시지‘와 ‘감정’을 분리해서 받아들이는 것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상사에게 “일 좀 제대로 하라”는 말을 들었다고 생각해보자. 감정이 상하게 되고, 감정이 상하면 자기 방어를 한다. 자기 방어는 상황을 객관적으로 보지 못하게 하고, 결국 ‘오늘 왜 저래? 점심 메뉴가 마음에 안 들었나? 말을 좀 곱게 하면 안 되나?‘로 귀결된다. ’메시지'와 ‘감정’을 분리해서 보면 상황이 달라질 수 있다. 우선 감정은 잠시 배제하고 메시지를 파악해본다. 알고 보면 상사도 “앞으론 좀 더 세심하게 봐줄래?”란 말을 하고 싶었을지 모른다. ‘감정’은 그 메시지가 파악되었을 때 느껴도 늦지 않다. 쉽지 않은 일이지만 평정심을 위해선 분명 필요한 ‘기술’이다. 별거 아닌 거 같지만, 원래 고도의 기술은 탄탄한 ‘기초‘에서 나오기 마련이다. 그러면 우리는 어느새, 우리 ‘마음의 중심‘에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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