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아무리 달리는 스피드가 떨어졌다 해도 걸을 수는 없다. 그것이 규칙이다 만약 자신이 정한 규칙을 한 번이라도 깨트린다면 앞으로도 다시 규칙을 깨게 될 것이고, 그렇게 되면 이 레이스를 완주하는 것은 아마도 어렵게 될 것이다. 이렇게 인내에 인내를 거듭하면서 어떻게든 계속 달리는 사이에, 75킬로 근처에서 뭔가가 슥 하고 빠져나왔다. 그런 감각이 있었다. '빠져나갔다'라는 말 이외에 그럴듯한 표현이 떠오르지 않는다. 마치 돌벽을 빠져나가는 것처럼 저쪽으로 몸이 통과해 버렸던 것이다. 언제 빠져나갔는지 정확한 시점은 생각나지 않는다. 그렇지만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저편으로 나는 옮겨져 있었다. 그래서 '아, 이렇게 해서 빠져나가는구나'하고 그대로 잘 납득했다. 그럴듯한 논리나 처음부터 끝까지의 경과나 사물의 이치에 대해서는 잘 알 수 없었지만 아무튼 '빠져나갔다'라고 하는 사실만은 납득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뒤로부터는 아무것도 특별히 생각할 필요가 없었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아무것도 생각하지 말도록 하자'라고 의식적으로 노력할 필요가 없어졌다, 라는 말이다. 나타난 흐름을 자동적으로 어렵사리 계속 따라가는 것만으로도 족하다. 거기에 몸을 맡겨놓고 있으면 어떤 힘이 나를 자연스럽게 앞으로 이끌어주었다. 이렇게 오랜 시간을 계속 달리고 있기 때문에 육체적으로 고통스럽지 않을 리가 없다. 그렇지만 그 무렵에는 피로하다고 하는 것은 내게 그다지 중대한 문제는 아닌 상태가 되어버렸다. 피로에 지쳐 있다는 것이 '늘 그런 상태'라고 하는, 이른바 상태로서 내 안에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졌다고 하는 의미일지도 모른다. 한때는 들끓고 있던 근육의 혁명의회도, 지금의 상태에 대해서 일일이 시비를 거는 것을 포기한 듯했다. 더 이상 누구도 테이블을 두드리지 않고, 아무도 컵을 던지지 않았다. 그들은 피로에 지친 모습을 역사적으로 필연으로 받아들이고, 혁명적 성과르 그저 묵묵히 수용하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규칙적으로 팔을 앞뒤로 흔들며, 다리를 한 발짝씩 앞으로 내딛기만 하는 자동적인 존재로 변해 있었다.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는다. 정신을 차리자 육체적 고통마저 거의 모습을 갑추어버렸다. 사정이 있어서 처분할 수 없는 보기 싫은 가구처럼, 어딘가 눈에 띄지 않는 곳으로 치워버린 것이다. 그런 식으로 '빠져나가 버린' 뒤, 많은 주자를 추월했다. 75킬로의 관문을 지난 지점부터는 나와는 반대로 많은 주자가 스피드를 떨어트리고, 혹은 달리는 것을 단념하고 걷기 시작하고 있었다. 거기서부터 결승점에 들어가기까지 아마도 이백 명 정도는 추월했을 것이다. 적어도 이백 명까지는 헤아렸다. 내 뒤에서 달려온 주자에게 추월을 당한 것은 한 번인가 두 번뿐이었다. 추월한 주자의 수를 일일이 계산하고 있었던 것은 달리 특별하게 할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내가 이처럼 피로에 지쳐버린 상태에 빠져 있고, 그 극도의 피로를 한 몸에 전면적으로 받아들인 채, 더욱이 이렇게 착실하게 계속 달릴 수 있다는 사실을 생각할 때, 나로서는 그 이상 세상에 바랄 만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자동조종 같은 상태로 몰입해버렸기 때문에 그대로 더 달리고 있으라는 말을 듣는다면, 100킬로 이상이라도 아마 달릴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이상한 이야기이긴 하지만, 마지막 단계에서는 육체적인 고통뿐 아니라, 내가 누구인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 그런 것조차 머리속에서 대부분 사라져버렸다. 그것은 참으로 이상한 기분이었지만, 나는 그 이상함을 이상함으로 느낄 수 조차 없는 상태였다. 그 상태에서는 달린다는 행위가 거의 형이상학적인 영역에까지 이르고 있었다. 행위가 먼저 거기에 있고, 그 행위에 딸린 것 같은 존재로서 내가 있다. 나는 달린다, 고로 존재한다. 마라톤 풀코스를 달리고 있으면 마지막 단계쯤에 일분일초라도 빨리 골인해서, 아무튼 이 레이스를 완주하고 말겠다는 생각으로 머릿속이 가득 찬다. 다른 일은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그렇지만 그때에는 그런 건 추호도 생각나지 않았다. 끝이라고 하는 것은, 그저 우선 한 단락을 짓는다는 것 뿐으로, 실제로는 대단한 의미가 없다는 기분이 들었다. 사는 것과 마찬가지다. 끝이 있기에 존재의 이미가 있는 것은 아니다. 존재라는 사물의 의미를 편의적으로 두드러지게 보이기 위해서, 혹은 또 그 유한성의 에두른 비유로서, 어딘가의 지점에 다른 일은 젖혀놓고 우선 종착점이 설정되어 있을 뿐이 아닌가, 하는 그런 느낌이 들었다. 꽤 철학적이다. 그렇지만 그때는 그것이 철학적이라는 따위의 생각은 조금도 들지 않았따. 말이 아닌 오직 신체를 통한 실감으로서, 말하자면 포괄적으로 그렇게 느꼈을 뿐이다. 그런저런 생각을 하면서도 조로 정의 결승점을 통과할 때는 마음으로부터 기쁨이 솟구쳤다. 장거리 레이스의 결승점에 들어선다는 것은 언제나 기쁜 일이지만, 이번엔 뭐니 뭐니 해도 역시 가슴이 조금 뜨거워졌다. 오른손 주먹을 허공에서 꼭 쥐어본다. 시각은 오후 4시 42분. 출발하고 나서부터 11시간 42분이 지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