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성장해야 할까요?” 나는 성장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해왔고, 하고 있고, 앞으로도 할 것이다. 그래서 강연을 할 때면 사람들에게 묻는다. “왜 성장해야 할까요?”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대답을
“왜 성장해야 할까요?” 나는 성장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해왔고, 하고 있고, 앞으로도 할 것이다. 그래서 강연을 할 때면 사람들에게 묻는다. “왜 성장해야 할까요?”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대답을 잘 하지 못한다. 마음 속에는 성장에 대한 목마름이 있으면서, 성장이란 단어가 그리 어려운 것이 아닌데도. 아마도 각자의 마음에 새겨진 ‘성장’이라는 의미가 제각각 이어서일 것이다. 누군가에게 그것은 아이가 자라나는 과정일 것이고, 또 누군가에게는 기업의 성장과 같은 현실적인 개념일 수도 있다. 마음 속에 떠오르는 많은 생각과 관념, 개념을 마주하면서도 우리는 왜 성장해야 하는지 쉬이 대답하지 못하는데, 이는 마치 방향을 잃은 열심과 같다. 열심히 성장하려고 발버둥은 치는데, 당최 무엇을 위해 그러고 있는지를 모르는 것이다. 이제는 그 이유를 알고 나아가야 한다. 위에서 말한 것처럼 ‘아이가 자라고, 회사가 성장하는 것’ 둘의 주어는 다르지만, 그것의 이유는 정확하게 일치한다. 바로 ‘생존’하기 위함이다. 사람은 태어나면 육체적 성장을 거듭한다. 그러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다. 생후 12개월의 몸으로는 운전을 할 수 없으며, 직장에 출근해서 보고서를 작성할 수도 없다. 그래서 영양분을 섭취하고, 운동을 하고, 몸을 만들어 나간다. 회사도 마찬가지다. 설립 이후에 세가 불어나는 과정은, 아이가 태어나 걷고 뛰는 과정과 다르지 않다. 특히, 회사는 계속해서 돈을 버는 성장을 하지 못하면 존재 가치가 없다. 월급을 주지 못하는 회사는 도태된다. 그것은 더 이상 회사가 아니다. 사람들이 모여있어야 할 그곳에, 월급 없이 남아 있는 사람들은 없을 테니까. 하지만 아쉽게도 언젠가 성장은 멈춘다. 아이는 자라서 스무살 즈음에 이르면 더 이상 키가 크지 않는다. 회사는 성장을 거듭하고 거듭하다 최고점을 맞이한다. 그렇다면 이제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답은 정해져 있다. 여러 번 말하지 않았는가? ’생존‘하려면 ‘성장‘해야 한다. 그것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 그래서 사람은 육체적 성장이 멈추면 자기 계발을 통해 마음과 정신의 성장을 추구한다. 이 무시무시하고도 강력한 열망은, 결국 생존을 위한 본능이다. 주말 일요일에 달콤한 낮잠을 자고 일어난 기억이 있을 것이다. 개운함과 동시에 밀려오는 허탈감. 주말을 그렇게 보냈다는 죄책감. 영어 단어 하나라도 더 외울 걸…책 조금이라도 읽을 걸 …나가서 운동이라도 할 걸… 이러한 생각과 미래에 대한 불안감은 어제보다 오늘 성장하지 못했다는 자괴감에 기인한다. 즉, 도태되지 말아야 한다는 무의식과 성장에 대한 열망이 본능적으로 발동하는 것이다. 회사도 더 이상 성장하지 못할 땐 다음 성장을 준비한다. 허리띠를 조르고, 구조조정을 하고, 미래 먹거리를 발굴하는 노력을 한다. 그러면 다운턴되었던 경영 곡선은 다시금 성장의 상승 곡선을 만들어 낸다. 그것을 만들지 못하면 사라질 운명이니, 그 얼마나 처절하고 간절한가. 아인슈타인은 말했다. “정신 이상에 대한 정의는, 같은 행동을 꾸준히 하면서 다른 결과를 기대하는 것과 같다.“ 항상 같은 돌에 걸려 넘어지는 삶은 애처롭고 안타깝다. 하지만 우리 대부분은 그렇게 살고 있다. ‘성장’하지 않으면 우리는 우리의 행동을 바꿀 수 없고, 항상 같은 돌에 걸려 넘어질 것이다. 성장은 결국 그렇게 우리를 살려낼 것이다. 우리는 잘 살아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성장해야 한다. 어떻게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