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 가공 5단계 이론, 그리고 히든카드]
시사 콘텐츠를 만드는 사람이라면, 콘텐츠의 유통기한에 대해 한번쯤 고민해보셨을 거에요. 예를 들어 데일리 시사 콘텐츠를 악시오스 식으로 정리해서 뉴스레터로 보내고 있다고 한다면, 하루가 지나면 해당 콘텐츠는 가치가 없어집니다. 하루가 지나면 제품이 쓰레기가 되는거죠. 비즈니스 관점에서는 엄청난 비효율이 아닐 수 없습니다. 콘텐츠 에디터가 하루에 데일리 콘텐츠를 2개 만든다고 하면, 그가 만든 콘텐츠는 매일 가치가 날아갑니다. 쌓이는 게 없죠. 에디터의 역량이 쌓일수는 있지만 그건 바로 수익화가 가능하지 않죠. 역량의 관점에서 조금 다르게 생각해볼 수도 있습니다. 데일리 콘텐츠를 1개 만들고, 나머지 역량으로 위클리 콘텐츠, 먼슬리 콘텐츠를 만드는겁니다. 유통기한을 늘릴수록 콘텐츠 대비 투입되는 지식과 경험량이 늘어납니다. 유통기한이 거의 무한대인 불경이나 성경을 쓴 붓다와 지저스는 그 경험과 지식으로 비교가 되지 않죠. 이렇게 흐름을 설계할 수 있다면 콘텐츠 디렉터로 조금씩 콘텐츠의 선순환을 만들어가는 경험이 쌓이는 거죠. 나름대로 좀 고민해봤습니다. 모든 콘텐츠가 유통기한이 같지 않다면, 이걸 구분할 수 있는 유용한 방법을 개발하면 콘텐츠 전략을 짜고, 기획을 하고, 실제로 만들고, 광고나 구독모델에 적용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한 것이죠. 나름의 스윗스폿이 있을 거에요. 데일리 30%, 위클리 30%, 먼슬리 40%의 포트폴리오라던지. 물론 프로덕트와 사용자경험에 어떻게 탑재되고, 개별 콘텐츠 상세에서 콘텐츠 경험이 어떻게 물처럼 이어지도록 설계하는지와 동시에 생각해야되겟죠. ‘콘텐츠 씽킹’과 ‘프로덕트 씽킹’을 동시에 돌릴 수 있어야 좋은 콘텐츠 매니저라고 생각해요. 데이터나 디자인도 볼줄은 알아야겠죠. 제가 지금까지 생각해온 ‘정보 가공의 5단계 이론’을 공유해보고자 합니다. 왜 데일리, 위클리, 먼슬리 구분이 의미가 없을까요? 첫째, 이 기준은 발행의 준거로 삼습니다. 즉 공급자 마인드에서 벗어나지 못한 구분이죠. 사용자 입장에서는 매주 한번씩 나오든, 매달 한번씩 나오든, 그 자체로는 큰 의미가 없습니다. 페인 포인트나 궁금증이 그 주기로 발생하는 것은 아닐테니까요. 더 고민이 필요한 것이죠. 둘째, 따라서 각 콘텐츠가 학습과 기억에 어떤 역할을 하는지 명확하지 않습니다. 만약 이 콘텐츠들을 엮어 수업계획서나 전자책같이 ‘경험 단위’를 짠다면, 먼슬리를 먼저 읽어야 하나요 아니면 데일리를 먼저 읽어야 하나요? 아리송하면 이 구분은 의미가 없는 겁니다. 공급 마인드, 버려야 합니다. 정보 → 용어 → 해설 → 분석 → 비평 10월 27일 목요일에는 국문으로 9132개의 기사가 나왔습니다. 빅카인즈의 데이터 기준입니다. 대다수의 기사가 단순 정보 전달 역할을 하리라고 생각하고, 아마 따라서 24시간 내로 유통기한도 끝나버릴 뿐만 아니라, 피드에서 저 아래로 내려가서 찾을 수 없게 되겠죠. 정보만 홍수처럼 떠다니는 인터넷, 조각만 넘쳐나는 미디어는 중산층의 인식 수준을 높이고 공동체의 문화를 개선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이 5단계는 정보의 가공 순서이기도 하지만, 인간의 학습 순서이기도 합니다. 정보를 얻다보면 단순 정보를 넘어 핵심 개념이나 용어를 학습하게 됩니다. 용어를 학습하면 이를 연결해서 현상을 설명해주는 해설이 궁금해지고, 단순 설명하는 것보다는 실제로 세세하게 보여주는 분석이 궁금해지죠. 마지막으로 디테일한 분석만 보다보면 어떤 관점을 가지고 입장을 취하는 논설이나 비평을 원하게 됩니다. ‘그래서 도대체 무슨 주장을 하겠다는 거죠(So what is the argument)?’ 대학원생의 간담을 서늘하게 하는, 비수처럼 꽃히는 선생님의 질문입니다. 인간이 생산한 텍스트 지식의 가장 상위 단계는 아마 이론일 겁니다. 그러나 일반인은 이론을 배우기도 어렵고 적용하기도 어렵기 때문에 현실과 연결된 어떤 구체적인 비평, 논설, 입장, 주장을 접할 때 지적으로 가장 고양됩니다. 뉴욕타임스의 기사는 상당히 깁니다. 단순 정보를 [단독]이나 [속보]를 달고 내보내는 식의 업데이트 피드는 따로 있고, 앱 푸시알람도 있지만 기본 포맷을 따르는 기사는 거의 공식처럼 정보 용어 해설을 분석이나 비평의 맥락에서 엮어서 하나의 스토리로 구성합니다. 이런 형식의 기사는 높은 독해력을 요구합니다. 단순 정보를 맥락없이 전달하거나, 깔끔하게 정리/요약하는 방식의 콘텐츠와는 대조적이죠. 영어권의 사용자가 얼마나 높은 독해력과 지적 능력을 가졌는지 가늠해볼 수 있는 지점이겠습니다. 물론, 하루 8시간 일하는 사람들은 이런 길고 깊이 있는 기사를 읽기 힘들고, 전문 분야가 아닌 영역의 글은 단순 정보나 요약 정도로도 충분할 겁니다. 특히 디지털로 콘텐츠를 소비하는 밀레니얼과 Z세대는 뉴스를 소비하는 방식이 다르죠. 그래서 악시오스, 쿼츠, 복스가 나온 것이 아닌가 합니다. 나름의 성공과 명성을 누렸던 것 같아요. 역피라미드식 기사는 과거 미디어가 낳은 양식이라고 합니다. 다른 커뮤니케이션 없이 짧은 텍스트로만 핵심을 전달해야 합니다. 따라서 확실하고 디테일한 정보를 먼저 전달해서 해당 정보가 거짓 없는 사실임을 보여주어야 하죠. 맥락 정보는 뒤에 넣고, 개인의 해석이나 관점이 들어가면 안되죠. 오해의 여지가 매우 크니까요. 미디어가 희소할 때, 미디어가 넘어야 할 물리적, 사회적 거리가 멀 때, 다시 커뮤니케이션 할 수 있는 기회가 사실상 없을 때, 미디어는 잉크의 물성을 강력하게 지니는 것 같습니다. 단순 정보만 확실하게 전달해도 가치를 만들어낼 수 있죠. 디지털 시대의 텍스트 콘텐츠는 글보다 말처럼, 말보다 물처럼 흐릅니다. 특히 시사성 콘텐츠는 비와 같아요. 어디에나 있고, 항상 쏟아지고 있고, 너무 젖으면 정보의 무게가 내리 누릅니다. 작업기억 영역을 압도하는 정보는 사용자를 피로하게 만듭니다. 이전까지의 실험들이 개별 콘텐츠의 양식에만 집중했다면, 저는 이제 ‘통합적인 경험으로서의 미디어, 커뮤니티로서의 미디어’를 고민할 때가 왔다고 생각합니다. 악시오스 기사 하나를 보고 ‘와 이거 정리 너무 잘됐다’하는 시대는 이미 갔다는 거죠. 뉴스레터도 정리를 잘해줘서 좋은데, 다시 과잉의 문제에 빠져버렸습니다. 뉴스레터를 골라 정리해주는 뉴스레터, 아그리게이터로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요? 저는 없다고 생각해요. 정보 과잉의 문제를 해결하는 첫 단초는, 바로 5단계 구분에서 시작합니다. 용어, 해설, 분석, 비평의 각 단계로 넘어가며 사용자도 학습하고 인식한다면, 나름대로의 관점과 시각을 갖출 수 있다는 것이죠. 레거시에서는 보도기사와 오피니언을 구분하는 방식으로, 2단계로 이 구분을 활용하고 있다고 볼 수 있겠죠. 경험이 뚝뚝 끊어진다는 문제는 여전히 남습니다. 좋은 콘텐츠는 어디에나 널려있고, 페이월이 너무 많아 돈이 계속 흘러 나가고, 좋은 콘텐츠 습관을 가지기 위해 직접 방문해야 하는 사이트도 많고, 그런데 댓글창의 질은 별로라서 이슈에 대한 의견을 나눌 수 있는 커뮤니티가 사실상 없고, 모바일에 적합한 문법으로 단계별 경험을 설계한 미디어는 없죠. 아직 정리하지 못했지만 저는 6단계 이상에 속하는, 지식보다 상위 영역에 위치한 요소들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인간의 지식이 가장 보편적이고, 가장 간결하며, 가장 경제적인 수준에 오른 것이 이론이라면, 이론을 씹어먹는 것들이 있다는 것이죠. 공감, 감각, 직관, 그리고 경험입니다. 모두 디지털 텍스트 미디어로만 훈련하기에는 매우 어려운 인간 능력입니다. 다른 미디어의 도움을 받아도 좋겠죠. 다만 경험이 뚝뚝 끊기지 않게, ‘경험 단위’를 기획하는 것이 중요해질 겁니다. 책을 좋아하는 분들 많으신데 책이란 게 별게 아니죠. 하나의 ‘경험 단위’일 뿐입니다. 크로스미디어 ‘경험 단위’도 만들 수 있을 것이고, 이걸 심리스하게 만들어 중독성 있는 온-오프라인, 텍스트-비텍스트 심리스 미디어 경험을 구현하는 기획자가 지식 콘텐츠 킹이 될 것이라고 저는 생각하고 있어요. 짧은 글에서 많은 주장을 했습니다. 첫째, 미디어 콘텐츠 기획자는 공급자 중심의 구분을 버리고, ‘정보 가공’과 ‘학습 단계’의 관점에서 콘텐츠를 구분해야 한다. 둘째, 텍스트 콘텐츠를 씹어먹는 인간 능력 공감, 감각, 직관, 그리고 경험을 고민해야 한다. 셋째, 경계를 넘나들지만 심리스한 ‘경험 단위’를 기획하는 자가 이길 것이다.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생각을 공유해주세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