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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더의 말’은 어렵다. 특히나 요즘은 더 그렇다. 한마디 하면 꼰대의 잔소리라고 하고, 가만히 있으면 리더의 직무유기라고 한다. 끈끈한 관심을 표하면 ‘공과 사를 구분해달라’는 깐깐한 응답이 돌아

‘리더의 말’은 어렵다. 특히나 요즘은 더 그렇다. 한마디 하면 꼰대의 잔소리라고 하고, 가만히 있으면 리더의 직무유기라고 한다. 끈끈한 관심을 표하면 ‘공과 사를 구분해달라’는 깐깐한 응답이 돌아온다. 현재의 리더들은 위로는 산업화 역군으로 칭송받았던 ‘잘된 세대’를 상사로 모시면서, 아래로는 단군 이래 최고 스펙의 ‘잘난 세대’ 부하들, 아니 동료들에게 쪼이고, 찡기고, 치인다. 현재의 리더들이 직원일 때 모셨던 상사 세대는 ‘하면 된다’를 외치며 경제 기적을 일궜다. 반면 오늘날의 리더들은 ‘되면 한다’는 직원들과 함께 일해야 한다. 조직 패러다임이 바뀐 오늘날, 관리자들은 어떻게 리더십을 발휘할 것인가. 예나 지금이나 리더십의 핵심은 소통이다. 리더의 화력(話力)은 리더십 화력(火力)이다. 인플루언서(influencer)가 되려면 언(言)플루언서가 돼야 한다. 다만 언어가 달라졌다. 삭히지도 삼키지도 않고 잘 섞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1️⃣성찰의 언어로 말하라 먼저 소통의 달인, 글로벌 CEO들의 현란하거나 과장된 소통 성공담에 주눅 들지 마라. 리더의 언어 하면 흔히 국내외 최고 리더들의 성공적 소통 방식을 벤치마킹하려는 경우가 많다. 참고하는 정도면 괜찮지만 모방할 필요는 없다. 일론 머스크와 마크 저커버그를 보자. 각종 일화를 통해 외부에 알려진 그들의 소통담은 ‘신화적’이었다. 머스크는 일체의 전문 용어 사용을 금지하고 쉬운 언어 사용을 통한 목표의식 공유로, 저커버그는 공개석상에서 자신의 의견에 문제 제기를 하는 인턴을 칭찬하는 개방성으로 찬사를 받았다. 하지만 요즘 논란이 된 그들의 소통 행태를 보라. 포장이 벗겨진 그들의 소통 민낯은 그리 존경할 만하지 않다. 리더의 말이라 하면 청산유수 같은 달변, 외향적인 성격부터 떠올리는데 이와는 상관없다. 핵심은 진정성이다. 진정성은 얼마나 지속적으로 오래 실행하느냐, 말이 행동과 일치하느냐로 가늠된다. 좋은 말과 격언은 넘친다. 문제는 좋은 말대로 하는 리더가 드물다는 점이다. 소통을 잘하는 리더는 전지적 참견 시점이 아니라, 1인칭 자기성찰 시점을 바탕으로 이야기한다. 리더의 말은 꾸미는 기술이 아니라 마음을 닦는 성찰이 먼저다. 제3자의 그럴듯한 이야기나 내로남불 식의 비현실적인 원칙보다는, 내 이야기를 1인칭 시점으로 전달하거나 요청하라. 그래야 직원들의 귀에 착착 붙는다. 불완전한 것은 흉이 아니다. 하지만 그것을 감추는 것, 또는 그것을 인지하지 못하는 것은 리더의 결정적 흠이다. “나도 힘들지만, 나도 노력하고 있지만, 나도 잘 모르지만…여러분의 도움이 필요하고 나도 노력하겠다. 함께 잘해보자”고 요청 형식으로 말해보라. 2️⃣책임의 언어로 말하라 기업체 강의를 가면 리더들이 한결같이 던지는 질문이 있다. 요즘 세대와 소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는 것이다. 필자의 대답도 한결같다. 남북 갈등보다 더 심각한 것이 세대 차이라고 하지만 리더십의 핵심은 항상 같다. 바로 책임이다. “요즘은 리더가 관심 표하는 것을 꼰대라며 싫어한다고 해서 직원이 도움을 요청하며 다가올 때까지 기다렸는데, 나중에 대화를 나눠보니 자신에게 무관심한 것 같아서 섭섭했다고 하길래 깜짝 놀랐다” 또는 “요즘은 지시 내리는 걸 싫어하고 코칭이 대세라고 해서 코칭으로 직원 의견을 일일이 물었는데, 오히려 시간 낭비고 에너지가 소진됐다고 해서 당황스러웠다”고 말하는 리더가 많다. 요즘 세대의 특성에 맞춰줬는 데도 불만이 나오더란 고백이다. 리더는 리더다. 꼰대도 문제지만 무조건 직원 비위를 맞추며 아양을 떠는 광대어른도 문제다. 요즘 세대는 ‘어른의 조언’을 싫어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자기 앞가림도 못하는 주제에 도움은 커녕 ‘밤 놔라, 대추 놔라’ 방해를 놓기 때문에 꺼리는 것이다. 리더의 역할은 최대한 의견수렴은 하되, 최종 결정을 하는 것이다. 의사결정과 책임지는 역할을 포기하거나 방기하면 더 이상 리더가 아니다. 리더의 말발은 전적으로 책임발과 비례한다. 길게, 복잡하게, 화려하게 말할 필요가 없다. 성과를 내는 리더의 언어는 간결하다. 리더에게 필요한 것은 두꺼운 방패다. “마음대로 저질러 봐. 내가 뒤처리는 할테니”라는 말은 그 어떤 말보다 힘을 발휘한다. 무조건 십자가를 지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넘지 말아야 할 경계와 한계를 분명히 해주는 것만으로도 직원들은 한결 숨통이 트이고 어깨가 가벼워진다. 3️⃣질문의 언어로 말하라 직원들로부터 불통이란 평을 듣는 리더들을 보면 개인적으론 능력자인 경우가 많다. 개인 능력은 출중하나 리더십이 딸리는 것이다. 이들은 ‘이 정도는 알겠지!’ 직원들을 과대평가해서 소통을 건너뛴다. 또는 ‘이 정도도 몰라?’ 과소평가하거나 무시하며 직원들을 질리게 한다. 지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는 소통(疏通)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제대로 소통하는 리더의 언어는 질문이다. 단, 질문과 심문(審問), 신문(訊問)을 구별하라. 겉으론 비슷해 보이지만, 그 기저와 결과는 천양지차다. 질문은 상대의 의견을 구하는 것이지만, 심문이나 신문은 답을 맞추려는 것이다. ‘내 마음을 읽어봐’ 식의 물음은 질문이 아니라 고문이다. 질문은 정답이 없는 물음이어야 한다. 답정너는 질문이 아니다. 또 ‘왜 그런 행동을 했는가’의 과거 추적형 질문은 독 안의 쥐를 포위하듯 숨 막히게 만들 뿐이다. 개방형, 존중형의 질문이 얼른 생각나지 않는다고? 그럴 때 리더를 질문 천재로 만들어주는 단어가 있다. ‘그 밖에’다. 보고가 끝나면 이렇게 말해보라. “잘 알겠네. 그 밖에 내가 알아야 할 것은 무엇인가? 그 밖에 내가 지원해줄 것은 무엇인가?” 이 말이 리더의 언어에서 알파력을 만든다. 지시를 지원으로 바꿔준다. 직원의 기를 올려준다. 질문을 하는 리더가 질문을 하는 직원을 만드는 법이다. 영화감독 아시가르 파르하디는 이런 말을 했다. “관객에게 답을 주는 영화는 극장에서 끝날 것이다. 하지만 관객에게 질문을 던지는 영화는 상영이 끝났을 때 비로소 시작한다.” 리더 역시 마찬가지다. 리더가 답을 주면 직원은 그 수준에서 정체될 것이다. 하지만 질문을 던지는 리더는 구성원을 성장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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