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 것'을 만들어가는 게 큰 의미를 가지는 이유 ]
01. "아는 음악은 정말 많은데도 내 음악은 한마디 쓰는 것도 힘들다." 바이올리니스트 양인모 님이 지난 27일 기자 회견 중 한 말입니다. 세계적인 콩쿠르를 수차례 휩쓴 위대한 음악가도 자기 음악을 하기가 어렵다고 하는데 평범한 직장인인 제가 내 것을 생산해 내는데 어려움을 겪는 건 어찌 보면 어이없을 정도로 당연한 일이겠다 싶었습니다. 02.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내 것'을 만들어내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고 하고, 세상에 혼자의 힘으로 완성된 것도 없다고들 하지만 이건 또 엄연히 의미가 다른 이야기거든요. 연결하고 섞고, 힘을 합치는 것과는 달리 내 머릿속을 차지하고 있던 이상적인 모습을 실제의 무엇인가로 구현하는 것에도 큰 관심이 필요하니까요. 03. 기획자라는 직업에 과한 의미 부여를 하고 싶지는 않습니다만, 기획을 하는 사람들에겐 꼭 필요한 능력이자 마음가짐이 바로 '생산하고자 하는 욕심'이라고 생각합니다. 가능하면 네거티브한 입장은 잘 드러내지 않고자 하는 편인데, 만약 제게 가장 기피하는 기획자의 유형이 무엇인지 꼽으라고 한다면 저는 '평가만 할 줄 아는 기획자'라고 말할 것 같거든요. 04. 쉽게 설명하면 내 것을 생산하는 것보다 남들이 만들어오는 것을 잘 판단할 줄 아는 사람이라고 스스로를 포장하는 케이스죠. 물론 직급이 올라갈수록 이 역할이 더 중요해진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습니다. 한 조직이나 회사를 이끄는 분들이라면 이 일만 하기도 벅차고 심지어 잘 해내기 위해서는 어마어마한 노력이 드니까요. 05. 하지만 스스로 생산하는 일도 잘해야 타인을 평가하는 일도 잘할 수 있습니다. '저는 큰 그림을 잘 봐요', '저는 딱 보면 될지 안될지 좀 감이서는 편이에요'라고 말하는 사람 중에 실제 그 일을 잘 수행하는 사람을 본 기억이 거의 없거든요. 오히려 그런 장점을 가진 사람들 중에는 두 손 걷어붙이고 직접 뛰어들어 깨지고 다치며 익히는 사람들이 훨씬 많습니다. 나무보다 숲을 볼 줄 아는 사람들은 실제로 나무 하나하나를 잘 이해하고 있는 사람들이었거든요. 06. 그러니 혹시 '나는 생산하는 것보다 평가하는 것을 잘하니까'라는 생각을 하고 계신다면 본인의 생각과는 달리 꽤 빨리 경쟁력을 잃을 수도 있습니다. 어떠한 방향으로라도 내가 처음 머릿속에 떠올린 것을 빨리 풀어내보고, 다시 고치고 다듬고 고민하며 조금씩 형태를 갖춰가게끔 하는 노력이 정말 중요한 이유죠. 07. 최근 팀 동료와 함께 기존의 프로젝트를 리뉴얼하는 작업을 진행했습니다. 저와는 연차가 꽤 차이 나는 후배인데도 짧은 시간 동안 제게 큰 가르침을 줬죠. 그중 가장 임팩트 있었던 건 고민에만 멈추지 않고 계속 자기 것을 생산해 내는 애티튜드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특히 '제 고민은 ~이런이런 것으로부터 시작되었고, 중간에 ~이런이런 일을 하며 이런 걱정과 고민이 추가되었고, 그래서 지금은 ~이런이런 방향으로 가는 게 맞지 않을까 싶어서 이렇게 해봤습니다'라는 그 설명의 과정이 참 대단하면서도 고마웠습니다. 직접 나무 사이를 헤매고 다녀본 사람이어야 볼 수 있는 숲과 마주한 거죠. 08. 살다 보면 내 것을 생산해 내기 보다 남이 생산한 것을 평가하는 게 훨씬 쉬운 일이라는 걸 어렵지 않게 깨달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 섣불리 그 길로 들어서진 말자구요. 우리에겐 아직도 새롭게 무엇인가를 만들어낼 힘이 있고 그걸 계속 수정해나갈 근성이 있으니까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