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을잘한다는 것, 야마구치 슈
1. 일을 못하는 사람은 항목별로 나열해 적기를 좋아한다는 겁니다. 해야 할 일을 줄줄이 적어 목록 만드는 것을 아주 좋아하죠. 이러한 병렬적인 사고의 문제점은 인과관계의 역학을 고려하지 않는다는 데 있습니다. 즉 시간적 깊이를 고려하지 않는 거죠. 병렬적 사고는 일의 감각을 말살합니다. '그래서 목적이 뭔데?'라는 고찰이 제외되는 거죠. 모든 일은 성과로 이어지지 않으면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그런데 병렬적인 사고에서는 성과로 이어지는 논리 전개가 사라지고 없습니다. 2. 시간적 깊이가 중요하다고 할 때의 시간이란 물리적인 시간이 아니라 논리적인 시간을 말합니다. 장기적으로 생각하라고 조언하면 '장기적이라면 얼마나요? 5년? 10년?'하고 되묻는 사람이 있습니다. 물리적 시간에 대한 이야기가 아닌데 말입니다. 물리적인 시간으로 단 한 달 동안 벌어질 일이라고 해도 '이렇게 진행하면 뒤이어 이런 일이 일어날 것이고, 그런 후에는 이런 일을 할 수 있게 되겠다'라거나 '이번에는 이런 길이 열릴 것이니 이렇게 될 것이다'라는 식의 논리적인 시간을 말하는 것입니다. 논리란 어떤 것과 다른 것 사이의 인과관계이므로 거기에는 반드시 시간이 존재합니다. 논리는 항상 시간을 짊어지고 있어요. 3. 일본 속담에 '바람이 불면 통나무 장수가 돈을 번다'는 말이 있어요. 바람이 불면 모래 먼지가 일어나 장님이 늘어나고, 장님이 늘어나면 장님이 쓰는 현악저기인 샤미센 수요가 늘어나고, 그러면 샤미센의 재료인 고양이 가죽이 많이 필요하니 고양이가 줄어든다. 고양이가 줄어들면 쥐가 늘어나 나무통을 갉아먹으니, 통이 잘팔려 통나무 장수가 돈을 번다. 이런 뜻을 담고 있죠. 이처럼 어떤 한 가지 일이 일어나면 돌고 돌아 뜻하지 않은 데에 영향이 미치게 마련이란 뜻인가요? 4. 그와 비슷한 맥락입니다. 예커대 현재 상황인 x에서 이상적인 상태인 y에 도달하기까지는 여러 층의 논리 단계를 거쳐야 합니다. 거기서 모두가 '그렇지, 좋았어. 우선 이것부터 해보고 최종적으로는 이걸 목표로 하자' 하고 공감할 수 있는 개연성 높은 논리로 이어진 스토리가 바로 뛰어난 전략의 조건이에요. 논리가 없으면 의미가 전달되지 않습니다. 간단히 말해서 순서의 문제입니다. 따귀를 때리고 나서 안아주는 것과 안아주고 나서 따귀를 때리는 것의 차이입니다. 경쟁전략은 타사와의 차이를 만드는 것인데 차이의 정체도 결국은 순서의 문제라는 게 오래전부터 제가 주장하는 내용입니다. 5. 심심한 제목과 달리 올해 읽은 책 중에 손에 꼽히는 책 중 하나입니다. 일본 사람들은 말로 콕 집어 표현하기는 어렵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미묘하고 오묘한 그 지점을 책으로 풀어쓰는 재주가 있다고 느낄 때가 많은데 이 책도 ‘일 잘하는 것’ 이라는 추상적이고 정성적인 지점을 글로 또박또박 설명하고 있습니다. 6. 결국 다시 감각(혹은 감도) 입니다. 기술적이고 방적식으로 똑 떨어지는 일은 글만 읽을 줄 알면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자기 자신의 분야에서 평균을 넘어서는 성과를 만들고 싶다면 남들이 쉽게 모방할 수 없는 애매하고 애매해서 뭐라 설명하기 어려운 그런 나만의 감각과 감도를 가져야 합니다. 7. 책에서는 다양한 내용이 나오지만 일의 순서와 시간의 깊이를 고려한다는 내용이 인상적입니다. 어떤 일을 함에 있어서 목적을 제대로 정의하고 일을 하는 것과 일을 다 마친뒤 목적을 찾는 것은 매우 다른 결과물을 가져옵니다. 또 내가 하는 업무가 어떤 맥락에 놓여있고 인과관계가 어떻게 되는 지, 이 일의 결과로 어떤 액션이 따라올 건지, 종국에는 어떤 결과를 낳게 될 건지. 맥락적 사고를 하는 사람은 매우 귀하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