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어떤 포럼에서 필자에게 질문이 하나 던져졌다. 질문의 당사자는 큰 기업을 일군 창업주로 잘 알려진 분이라, 순간 청중의 이목이 집중됐다. 질문은 다소 의외였다. ‘왜 같은 부모 밑에서 태어
얼마 전 어떤 포럼에서 필자에게 질문이 하나 던져졌다. 질문의 당사자는 큰 기업을 일군 창업주로 잘 알려진 분이라, 순간 청중의 이목이 집중됐다. 질문은 다소 의외였다. ‘왜 같은 부모 밑에서 태어난 자식들의 성격이 이리도 다른 건지요?’ 이 엉뚱한 질문에 청중은 폭소를 터뜨렸다. 그런데 포럼의 주제가 다양성과 포용성이었기에 그 질문은 결코 우습게 넘길만한 것이 아니었다. 뜬금없는 그 질문은 포럼 전체를 아우르는 핵심이었던 것이다. 일단 질문에 대한 대답부터 해보자. 실제로 같은 부모로부터 태어난 형제자매의 성격은 매우 상이하다. 그리고 이는 인간의 독특한 특징 중 하나로 연구자들 사이에서 자주 언급된다. 왜일까? 사실 아직까지 과학적으로 정확한 대답을 하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진화•인류•심리 분야 연구자들의 의견을 아우르면 다음 결론이 설득력을 지닌다고 봐야 한다. 그 핵심은 ‘인간은 다산(多産)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다산하지 않으면 가정이든 마을이든 일가를 이루는 구성원 수가 적다. 그런데 적은 수로 이뤄진 집단에서 구성원의 성향이 동질적이면 어떤 문제가 생기겠는가? 급변하는 환경 속에서 집단 전체가 한 번에 멸절되는 위험이 증가한다. 그러니 적은 수로 이뤄진 집단일수록 한 개체 한 개체가 더욱 더 상이해야만 한다. 그렇게 다양해야만 그 집단의 생존성이 더 강해진다는 역설이 가능해진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법칙이 가장 정확하면서도 분명하게 적용된 생명체가 바로 인간이다. 이 논리는 현대사회, 특히 대한민국의 조직에 매우 큰 의미를 가진다. 인공지능과 4차 산업혁명은 사무실에서든 공장에서든 인적 구성의 형태를 점차 소규모로 축소시키고 있다. 게다가 우리나라는 인구 자체가 전대미문의 속도로 감소하고 있어서 예전보다 더 적은 수의 사람으로 사회를 지탱해야 하는 미래가 다가오고 있다. 그렇다면 어떤 대비를 해야 할까? 이제 답은 분명하다. 다양성이다. 다양성을 이해하고 포용할 수 있는 사회와 조직의 분위기가 조성돼야 한다는 뜻이다. 이러한 양상은 미래 사회의 다양한 조직에서 중요하게 고려돼야 한다. 집단의 수가 줄고 있거나 조직이 작아질수록, 일치단결하자는 구호로 사회와 집단을 아우르려는 것은 환상이자 착각이다. 집단이 더 작아질수록 더 다양해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