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이 지나도 기억나는 맥북 흰둥이와 '150원의 친절'
1. 처음 썼던 맥북은 2006년형 맥북입니다. 맥북 흰둥이라는 애칭으로 보통 불렸지요. 둥글둥글 하얗고 매끄러운 생김 때문이었습니다. 이미 너무 오래된 구형이지만 외관 디자인은 지금 봐도 근사합니다. 요즘 맥북의 알루미늄의 차가움과는 다른 느낌입니다. 이렇게 너무 매력적인 외형과 맥 OS의 심플함 때문에 맥북을 처음 쓰게 되었습니다. 당시 학생의 신분으로 마련하기에는 조금 부담이 되는 가격이었습니다. 맥북은 윈도우 노트북보다 훨씬 비쌌어요. 가격 때문만은 아니겠지만 수업 시간에는 저 이외의 맥북은 찾아보지 못했습니다. 컴퓨터 공학을 전공했음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2. 맥북 흰둥이는 저의 모든 하루를 함께 했습니다. 과제를 하고 공부를 하고, 음악도 듣고, 미드도 봤고요. 학교든 집이든 카페든 다양한 장소에서 함께 했습니다. 무게는 2kg 정도였어요. 요즘으로는 꽤 무거운 축에 속합니다. 휴대가 어려울 수준입니다. 그때는 크게 부담이 되지는 않았습니다. 다양한 용도로 맥북을 쓰며 처음에는 불편함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점점 많은 시간을 사용하다 보니 스펙에 대한 욕심이 생겼습니다. 램을 추가하기로 결정했습니다. 비교적 쉬운 작업이라 램을 구매하고 직접 해보기로 했습니다. 용산에서 램을 구매했습니다. 이제 흰둥이에 장착할 일만 남았습니다. 3.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램을 추가하려면 맥북을 분리해야 합니다. 분리를 위해서는 맥북 뒷면에 있는 작은 나사를 열어야 했습니다. 작은 사이즈의 십자 드라이버가 필요했습니다. 당시에 저는 아무 도구도 가지고 있지 않았습니다. 램을 추가하겠다던 신나는 생각에 브레이크가 걸렸습니다. 작은 사이즈의 십자 드라이버를 구해야 했습니다. 저는 보통 쓰이는 크기의 십자 드라이버 조차 없었습니다. 하물며 더 잘 쓰이지 않는 작은 사이즈는 어디서 구해야 할까요. 막막했습니다. 어렵게 수소문해 보니 안경다리를 조이는 작은 드라이버가 있었습니다. 상대적으로 더 구하기도 쉽다고 했습니다. 4. 집 근처의 안경점들을 돌아다녔습니다. 하지만 안경 드라이버를 판매하는 곳은 없었습니다. 안경점이라는 사업의 특성상 새로 안경을 맞추지 않는 고객은 환영받기 어렵습니다. 다른 문의나 부탁은 거절당하기 쉽지요. 지금 낯선 손님의 낯선 부탁을 들어준다고, 훗날의 사업적 이익이 생길 거라 생각하기 어렵기 때문이겠지요. 그리고 아마 안경 드라이버를 사려는 손님은 처음이었을 겁니다. 많은 곳을 돌았지만 실패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집 앞에 있던 안경점을 찾았습니다. 큰 기대는 하지 않았습니다. 그곳에서도 역시 판매하는 안경 드라이버는 없었습니다. 실망하던 차에 사장님께서 매장에서 쓰던 드라이버를 건네주셨습니다. 판매하는 것은 없지만 이것이라도 필요하면 가져다 쓰라고. 너무나도 감사하다는 인사에 한마디를 덧붙이셨습니다. 잘 사용하시고 나중에 안경 맞출 때 우리 집에 들러주면 된다고요. 그렇게 저는 안경 드라이버를 구했습니다. 맥북 흰둥이는 훨씬 큰 용량의 램을 갖게 되었습니다. 더욱더 쾌적한 맥북 라이프를 갖게 되었습니다. 5. 저는 그 안경점을 이후에 다시 방문하지는 못했습니다. 감사한 마음은 늘 갖고 있었지만 안경을 바꿀 일이 생기지는 않았습니다. 네이버에서 안경 드라이버를 검색해 봤습니다. 그때 제가 받은 드라이버가 아직 보입니다. 가장 저렴한 가격을 찾아보니 150원입니다.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싼 가격입니다. 배송비를 제외하고요. 단순히 생각하면 저는 150원의 도구를 무상으로 받은 것입니다. 가격으로만 보면 아주 저가의 물건입니다. 저는 10여 년이 지난 지금에도 그 안경점 사장님을 기억합니다. 그분께서 베풀어주신 작은 친절을 말입니다. 재화의 가격은 150원이지만, 그 친절은 시간과 가격을 메길 수 없습니다. 어떤 생각으로 그분께서 드라이버를 제게 주셨는지는 모릅니다. 제가 너무 간절한 표정 혹은 실망스러운 얼굴을 하고 있었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아니면 정말 큰 고민 없는 가벼운 결정이었을 수도 있습니다. 이제 맥북 흰둥이는 제게 없지만 문득 작은 드라이버의 기억은 소중하고 따뜻하게 아직도 남아있습니다. 우리가 누군가에게 베푸는 작은 친절 역시 그렇습니다. 대가를 바라지 않은 작은 친절들이 더 많은 이들에게 따뜻한 경험을 만들어 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