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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은 당연한 것이 되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행복하게 살아야 한다’는 말이 의심할 수 없는 명제가 되었다. 하지만 행복은 인간의 궁극적인 목적이 아니다. 실은 사람들은 행복하기 위해 사는 게 아니

행복은 당연한 것이 되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행복하게 살아야 한다’는 말이 의심할 수 없는 명제가 되었다. 하지만 행복은 인간의 궁극적인 목적이 아니다. 실은 사람들은 행복하기 위해 사는 게 아니라 ‘생존하기 위해’ 행복을 필요로 한다. 악어와 개미는 생각 자체가 없다. 생각을 하지 않는다. 철새도 생각하고 이동하지 않는다. 본능적으로 움직일 뿐이다. 우리는 본능의 보이지 않는 힘을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사실은 우리 인간 역시 본능에 따라서 행동하는데도 말이다. 지구상에서 생존력이 가장 강한 동물을 꼽자면 인간과 개미다. 두 생물의 공통점은 사회성이다. 바로 이 사회성 덕분에 놀라운 생존력을 가질 수 있었다. 약한 인간이 지구를 정복한 것도 사회성 때문이다. 사실 우리는 하루종일 ’사람‘을 생각한다. 희로애락의 대부분도 사람에서 나온다. 회사에서 열받는 이유도 자꾸 잔소리하는 김팀장때문이고, 그럼에도 회사를 때려치지 않는 이유는 집에서 웃고 있는 네살배기 딸이다. 일상 대화도 모두 사람 얘기다. 아는 사람 얘기, 연예인이나 정치인 얘기, 심지어 바다 건너 나라의 사람들 얘기까지. 우리는 모두 ‘인간중독’이었던 거다. 그래서 유전적으로 봤을 때는 사회성과 외향성이 발달될수록 행복할 가능성이 커진다. 사람은 사회적인 동물이기에 동족인(?) 인간을 좋아해야 행복해지기 쉽다. 다른 부차적인 행복도 사람들의 축하, 인정, 평가 때문인 경우도 많다. 어쩌면 승진 역시 승진 자체보다 승진이 가져다주는 사람들의 축하와 인정 때문에 기뻐하는 게 아닐까? 거칠게 말하면 인간은 생존을 위해 만들어진 동물이다. 행복도 마찬가지다. 행복은 삶의 최종 이유도 목적도 아니다. 생존을 위해 절대적으로 필요한 정신적 도구일 뿐이다. 우리가 생존하는데 필요한 건 실로 본능적인 것들이다. 호흡하겠다고 생각하고 호흡하는가? 오늘은 혈액 좀 돌려야지 하면서 혈액을 돌리는가? 나도 모르는 사이에 그냥 저절로 움직이는 것이다. 행복하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생존하기 위해 필요한 상황에서 행복을 느껴야만 했던 것이다. 행복은 의식적으로 하는 ‘생각’이 아니라 자연스레 따라오는 쾌감, 생존 본능에 가깝다. 그럼 행복이 생존을 위한 본능이고 인간이 생존해올 수 있었던 이유가 사회성이라면, 일명 ‘인싸’일수록 행복을 느낄까? 실제로 ‘타고난 기질’이 행복에 유의미한 영향을 미친다는 주장이 있다. 특히 타인과 같이 있는 시간을 좋아하고 그들이 자신을 좋아하도록 만드는 재주가 있는 사람일수록 행복할 가능성이 크다. 행복을 보장하는데 충분조건은 없지만 없어서는 안 될 필요조건이 바로 사회적 관계이기 때문이다. ‘사람이 없다면 천국조차 갈 곳이 못 된다’는 레바논 속담도 있다. 그렇다면 개인주의 문화가 있는 국가는 행복도가 낮고, 집단주의 문화가 있는 국가의 행복도는 높지 않을까? 아이러니는 여기서 발생한다. 사실 실제로는 집단주의 문화가 강한 한국, 일본 등에서는 사람들의 행복도가 떨어진다. 2019년 유엔 산하 자문기구인 지속가능발전해법네트워크(SDSN)가 공개한 ‘2019 세계 행복 보고서’에 따르면 가장 행복한 나라는 ‘핀란드’였다. 뒤이어 순위권을 차지한 나라들도 노르웨이, 스웨덴 등의 북유럽 국가들이었다. 한국은 54위에 머물렀다. 사회성이 행복의 조건이라면서 어떻게 개인주의적 문화의 나라들이 행복지수 상위권을 차지한걸까? 북유럽 국가가 행복지수 상위권을 차지한 이유 중 하나는 ‘일상의 가치’를 소중하게 여겨서다. 스칸디나비아는 다양한 재능과 관심에 대해 존중하는 사회 분위기가 형성되어 있다. 그들은 돈이나 지위 같은 삶의 외형보다 일상의 즐거움과 의미에 더 관심을 둔다. 2019년 기준 행복지수 1위 국가인 핀란드는 건축가이자 디자이너인 알바 알토의 얼굴을 화폐에 새겼다. 화려한 건축물 뿐만 아니라 일상과 맞닿아 있는 가구, 조명 기기 등도 디자인한 그의 얼굴을 새긴 것을 통해 일상 속 소소함을 소중히 여기는 것을 알 수 있다. 집단주의 문화의 행복지수가 낮은 요인 중 하나는 과도하게 남을 의식하는 거다. 행복은 지극히 사적인 영역이다. 내가 커피를 싫어 하는 이유를 남에게 장황하게 설명할 필요가 없다. 그들의 허락이나 인정을 받을 필요도 없다. 행복의 중요 요건 중 하나는 내 삶의 주인이 타인이 아닌 자신이 돼야 한다는 것이다.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은 어쩌면 “어떻게 하면 행복해지는지”에 대해 가장 근접한 답을 내놓고 있다. 행복은 강도가 아니라 빈도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오래 행복하기 위해선 단박에 큰 기쁨을 느끼기 보다는 자주 작은 기쁨을 느껴야 한다. 모든 쾌락은 곧 소멸되기 때문에 한 번의 커다란 기쁨보다 작은 기쁨을 여러 번 느끼는 것이 훨씬 낫다. 쾌락은 생존을 위해 설계된 경험이고, 이것이 제 기능을 하기 위해서는 쾌락 이전의 상태로 되돌아가는 초기화가 반드시 필요하다. 적응은 감정의 대표적인 특성이다. 우리는 감정에 적응하기 때문에 아무리 감격스러운 사건도 시간이 지나면 일상이 되어 버린다. 보통 이런 기간은 3개월 정도다. 행복은 생각이 아니라 감정인 것이다. 행복이 적응력이 높은 까닭은 생존을 위해서다. 사냥과 짝짓기 등 생존에 필수적인 행동일지라도 어떤 보상이 있어야 한다. 쾌감은 우리 뇌가 고안한 보상이다. 그런데 이런 행위는 반복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쾌감의 초기화 과정이 있어야 쾌감을 유발시킨 그 무엇을 또 찾아 나서게 되는 것이다. 상대성 또한 감정의 특성이다. 사람은 극단적인 경험을 겪고 나면 감정이 반응하는 기준선이 변한다. 이후에는 어지간한 일에는 별다른 감흥을 느끼지 못하게 된다. 특히 이는 돈과 관련됐을 때 더 크게 작용한다. 돈은 마음만 먹으면 무엇이든 얻을 수 있다는 착각을 하게 한다. 결국, 소소한 즐거움을 마비시키는 것이다. 하지만 행복한 사람은 ‘시시해’보이는 즐거움을 여러 형태로 자주 느끼는 사람이다. 행복은 아이스크림과 비슷하다. 아이스크림은 입을 잠시 즐겁게 하지만 반드시 녹는다. 행복공화국에는 냉장고가 없다. 모든 것은 녹는다는 사실을 받아 들이고 자주 여러 번 아이스크림을 맛보는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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