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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의 힘을 아는 자가 창조성을 손에 쥘 것이다

한 학자가 말했다. 한국인이 그렇게 예쁘고 멋진 카페를 찾아다니는 이유는, 자신만의 멋진 공간을 갖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중산층 기준으로 많은 한국인에게 공간은 기능적인 장소이지, 문화예술적인 큐레이션을 통해 창조성을 발휘할 수 있는 여유공간은 아니다. 학자는 슈필라움, 즉 놀이공간이라고 하는 독일어를 인용해 공간과 삶의 질에 대한 논의를 펴나간다. 오랫동안 아파트에 살았는데, 최근에 참여한 티클래스의 대화 중에 느낀 것이 있다. 주로 고층에 살았는데, 아파트에 사는 기간의 삶은 뭔가 붕 떠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두 발을 땅에 디디고 흙과 닿아 어떤 삶터에 정주한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주거도 스트리밍처럼 느껴진다. 그냥 반쯤 졸면서 글쓰고 자고 출근하는 공간. 그래도 내 방에는 내가 모셔둔 읽은 책, 읽다 만 책, 안 읽은 책들이 어떤 문화공간을 만들어주고 있긴 하지만, 집 자체가 여유공간으로 창조성의 오라를 풍기고 있지는 않다. 몰입은 추상적인 경험이 아니다. 전에 요명차라는 몰입요법을 말한 적이 있는데, 요가, 명상, 차(보이차)가 몰입에 도달하는데 큰 도움을 준다고 하는 나의 이론이다. 사실 공부는 엉덩이가 하는 것이라는 말은 반도 안맞고, 공부는 공간이 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멋진 공간에선 학습에 대한 심리적 저항감이 사라지고 오히려 가슴뛰는 모험이 된다. 커뮤니티 경험을 하면서 느끼는 것이지만, 공간이 왕이고, 큐레이터가 대신이다. 공간이 멋지고 큐레이터가 뛰어나고 성적 텐션이 있다면, 사실 아무런 콘텐츠 없이 질문이나 음악만 있어도 파티가 되어 버린다. 왜일까? 공간도 자본이기 때문이다. 아비투스라는 용어를 빌려 인간은 지식, 경험, 돈, 문화, 건강 등을 몸에 저장하고 축적한다고 주장했다. 공간에도 가치가 저장될 수 있다. 가치가 저장되고 축적되면 공간에는 어떤 오로라가 뿜어져나온다. 창조성을 얘기할 때 르네상스 시대 이탈리아의 특정 도시를 얘기하거나, 유럽의 살롱 문화를 얘기하는 걸 봤는데, 이는 공간에 가치가 축적되어 몰입과 집단몰입을 촉발할 수 있다고 하는 실마리다. 그러니 창조성을 거머쥐고자 한다면, 공간자본을 획득해야 한다. 내가 공간을 가질 수 없다면, 공간을 가진 사람들에게 가치 제안을 해서 몰입과 집단몰입을 통해 가치를 만들어낼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야 한다. 내가 메시지이고 내가 콘텐츠고 내가 플랫폼이라면, 내 네트워크에 공간도 넣을 수 있다. 공간자본의 힘을 아는 자만이 창조성을 거머쥘 것이다. 이제 혁신은 멋진 공간에서 일어날 것이다. 혁신의 에너지가 솟아오르는 동네에 몸을 담궈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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