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전이란 미래를 그리워하는 능력이다
비전이란 것은 하늘에서 뚝하고 떨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럼 비전은 어디서 올까? 비전을 가진 인간은 무엇이 다를까?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비전이란 미래를 그리워하는 능력이다.” 무슨 뜻일까. 오늘의 이야기는, 과거의 경험에서 미래를 찾고, 미래를 그리워하는(long for) 눈에 대한 이야기다. 플래시백이랄까. ‘난 이걸 하려고 태어났구나!’ 가끔씩 하게되는 생각이다. 대학원을 졸업하고 늦게 시작한 커리어 과정에서 나는 길을 찾는데 도움이 되는 가이드를 간절히 원했다. 문제의식을 정의하고 언어화해야 한다고 느꼈고, 그러면서 뽑아냈던 커리어의 키워드는 ‘지속가능한 학습’, ‘일하는 사람의 성장’, 그리고 ‘성장 파트너’였다. 지금도 내 맥북의 배경화면에는 “성장 경험의 설계자”라고 크게 써있다. 다른 무엇이 적혀있는지는 공개적으로 글로 밝히기에는 좀 민망하지만 말이다. 배우는 일과 성장에 대한 페인포인트라면, 나도 평생동안 겪어왔던 것이다. 나름 교육기관에서 20대와 30대 초반을 보냈고 학생들과 함께 하는 시간이 있었으니, 다양한 경험 자산들을 쌓아왔던 것이다. 번역을 해본 적도 있고, 교육 스타트업에 관심이 있어서 알아보던 시기도 있었고, 프로젝트 매니저로 일해보기도 했다. 점은 단순히 연결하는 것이 아니다. 점을 연결해 작품을 그려갈 수 있다. 그런데 모든 점이 같은 것은 아니고, ‘핵심원점’ 같은 것이 있다. 내 삶에 가장 행복했던 1년을 꼽는다면 무조건 버클리 교환학생 시절이다. 지금도 너무나 아름답고 행복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날씨 좋은 캘리포니아에서 정말 새로운 세상을 만났고, 국제기숙사에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관점을 넓힐 수 있었다. 지금 용어로는 콘텐츠나 커뮤니티 같은, 비즈니스 관점의 언어를 쓰고 있지만, 사실 다양한 인간이 콘텐츠고, 문화가 콘텐츠이며, 대화가 커뮤니티다. 위워크 창업자 아담 뉴먼은 어릴 때 이스라엘의 키부츠에서 시간을 보낸 적이 있다고 들었다. 위워크의 커뮤니티 비전은 그 경험에서 나온 것이라고 한다. 물론 위워크의 비즈니스에 대한 다양한 의견을 가질 수 있지만, 막대한 임팩트를 가진 비즈니스는 분명 정말 매력적인 비전을 그려 다양한 이해관계자를 설득하고 매료하지 못한다면 애초부터 만들 수 없다. 비전만 놓고 보자면, 일하는 사람들의 커뮤니티라는 것은 시대를 앞서간 것이고 가지고 있는 어떤 근원적인 매혹이 있다. 비전이 미래를 그리워하는 능력이라는, 말도 안되는 것 같은 문장은 그런 의미다. 비전을 연성하는 자는 경험자산 중 ‘핵심원점’에서 느꼈던 근원적인 감정을 몸에 저장하고 있다. 단순히 이런 문제가 있고 이건 해결해야 한다는 기능적인 접근법이 아니다. 지금 세상은 이런적이 있는데, 내 경험으로는, 내 몸과 살과 피의 지혜로는, ‘죄송하지만 꼭 그렇지 않아도 되는데? 인간은 더 나은 존재이고, 더 나은 경험을 할 수 있는데?’라고 물을 수 있는 것이다. 고민, 실행, 피드백, 정제를 통해 원석이 다듬어지면, 공개적으로 제출할 수 있는 비전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비전은 그리움이고, 그림이다. 그리움과 그림은 끌어당기고 저장하고 현실화하는 힘이 있다. 이 힘은 단순히 어떤 물체나 대상을 욕망하는 것과는 다르다. 욕망은 대상 인간/비인간과의 거리를 좁히고자 한다면, 비전은 그리움과 그림의 미래를 연성하는 일이다. 연성(transmutation)을 다른 말로 하면 재배열(realignment)인데, 즉 기존의 자원과 에너지를 재배열해서 그럴듯한 어떤 네트워크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다양한 인간들, 특히 청년들이 함께 뜨겁게 성장하는 미래가 그립다. 언젠가 만나고 싶은 미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