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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획하기’와 사랑에 빠져 이걸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닌가요

‘나는 J야! 계획과 정리를 참 좋아하지!’ 첫인사로 많이 쓰이는 말이 아닌가 싶습니다. 저는 P인데요, 함께 일하는 분들에게서 ‘J인줄 알았다’는 얘기를 자주 듣습니다. 바로 이 지점에 오늘 이야기의 핵심이 있습니다. 계획부터, 정리부터 한다면 한가지 가장 중요한 것을 놓치게 됩니다. 바로 계획을 왜 세우는 것이며, 정리를 어떤 목적으로 하느냐는 문제죠. 정리해두면, 그거 어디다 쓸 건가요? 경로의존성(path dependency)이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지금 우리가 왜 QWERTY 키보드를 쓰고 있는지 아시나요? 인체공학적이거나 효율적인 키보드 구조라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가장 먼저 대중화된 키보드 디자인이었기 때문입니다. 습관이 되어버린 후에 바꾸기는 정말로 너무 힘든 것들이 있습니다. 이전 글에서는 특정 세대, 특정 젠더 운전자의 운전 습관을 바꾸는 것이 너무나 힘들어서, 차라리 자율주행이 먼저 와버릴 것이고 왔으면 좋겠다고 이야기한 적이 있죠. 정리나 계획도 경로의존성을 가지게 됩니다. 모든 템플릿은, 템플릿을 세팅하고 그 이후에 다시 변경할 가능성이 낮기 때문이죠. Order(질서)라는 단어는 재밌습니다. 질서, 차례, 순서라는 의미가 모두 들어있죠. 책을 질서정연하게 정리한다고 해볼까요. 저자순으로 정리하는 방법, 출간년도순으로 꽃는 방법이 있다고 하죠. 한번 정리해두면, 다시 큰 마음 먹기 전까지는 책을 다시 정리하는 비용이 높아집니다. 질서는 중립적이지 않아서, 누군가에게 이득이 되고, 누군가에게 해가 됩니다. 저자순으로 정리한 책장은, 예를 들어 가장 앞에 놓일 수 있는 성씨를 가진 저자에게 유리할 수도 있겠죠. 인간은 처음 접한 정보와 마지막으로 접한 정보를 기억할 가능성이 높으니까요. 계획과 정리 자체를 좋아하고 즐기며 시간을 많이 쓰는 경우, 그걸 어떤 목적으로 하는지, 혹시나 템플릿의 경로의존성에 갇혀 오랜 시간동안 상상력이 제한되지는 않을지 한번쯤 생각해볼 일입니다. 사실 저는 평생 INTJ인줄 알고 살아왔습니다. 몇년 전에야 사실은 주관이 매우 강하고, 자기의 기준이 있고, 솔직하게 말하지만, 개인적으로는 계획과 기획을 별로 좋아하지 않고, 내 판단을 먼저 강요하지 않으며, 함께 일할때는 템플릿이나 프레임워크, 문서화를 매우 중요시하는 편이라는, 조금 더 다채로운 자기 인식을 가지게 되었죠. 함께 일할 때는 J를 선호하고, 개인의 삶에는 P형이라고 요약해도 좋겠네요. 계획하는 일에 지나치게 매몰되어 시간을 너무 쓰고, 마치 미래를 통제하는 것 같은 착각에 빠져, 실행을 미루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볼 일입니다. 오랫동안 계획, 전략, 논리에 시간을 쓰다가 ‘실행우선주의’를 마음 속 깊게 받아들이게 된 사람으로서 하는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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