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부한 고객 데이터가 오히려 독이 된다? 하버드경영 대학원 클레이턴 M. 크리스텐슨 교수 외 3명의 필자가 기업에게 던지는 화두다. 고객 정보를 수집하고 데이터에 숨겨진 상관관계를 파악하는 것이 의
풍부한 고객 데이터가 오히려 독이 된다? 하버드경영 대학원 클레이턴 M. 크리스텐슨 교수 외 3명의 필자가 기업에게 던지는 화두다. 고객 정보를 수집하고 데이터에 숨겨진 상관관계를 파악하는 것이 의사결정을 엉뚱한 방향으로 이끈다는 것. 필자들에 따르면 데이터의 상관관계보단 고객들이 해결하길 원하는 문제에 집중해야 한다. 맥킨지가 전 세계 기업 임원들에게 실시한 조사에서 응답자 중 84%가 기업 성장 전략에서 혁신이 대단히 중요하다고 응답했지만, 무려 94%가 자사의 혁신 성과를 불만족스럽게 여겼다. 이론적으로는 납득이 가지 않는다. 기업들은 그 어느 때보다 고객을 잘 파악하고 있으니 말이다. 빅데이터 덕분에 다양한 고객 정보를 신속하게 수집하고 분석할 수 있는 시대다. 언뜻 보면 기업들이 정확하고 과학적인 프로세스를 구축하는 방법을 통달한 듯하다. 하지만 혁신활동의 결과는 여전히 운에 좌우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어째서 이런 엉뚱한 일이 벌어지는 걸까? 지난 수십 년 간 위대한 기업들이 무너지는 모습을 지켜본 뒤, 우리는 고객정보 수집에 집중하는 기업일수록 전략을 엉뚱한 방향으로 이끌어 나간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오히려 관심을 쏟아야 하는 부분은 특정 상황에서 고객이 개선하고 싶어하는 부분, 즉 고객이 완수하고 싶어하는 일이다. 우리는 이를 ‘해결과제’라고 부른다. 인생을 살면서 해결해야 할 과제가 누구에게나 많다. 줄을 서 기다리면서 시간을 보내는 일처럼 사소한 과제도 있고, 더 만족스런 커리어를 찾는 일처럼 큰 과제도 있다. 우리가 어떤 제품을 구매하는 행위의 본질은 과제를 수월하게 수행하기 위해 그 제품을 ‘고용’한다는 점에 있다. 제품이 과제를 제대로 수행했다면, 다음 번에 같은 과제를 위해 동일한 제품을 다시 ‘고용’할 가능성이 높다. 반대로 제품이 과제를 시원찮게 수행했다면, 그 제품을 ‘해고’하고 대용품을 찾아 나선다. 여기서 ‘제품’이란 기업이 판매할 수 있는 모든 종류의 솔루션을 편의상 지칭하는 단어이다. 혁신 컨설턴트 밥 모에스타는 10년 전 디트로이트 지역의 건설사로부터 신규 아파트 분양률을 높여 달라는 의뢰를 받았다. 이 회사는 은퇴나 이혼 등의 이유로 집을 줄이길 원하는 이들이 주 고객이었다. 타깃층의 구미를 당길 수 있게 12만~20만 달러 사이로 분양가를 책정하고, 고급 마감재를 적용했다. 삐걱거리지 않는 바닥재를 깔고, 3중 방수처리를 하고, 화강암 싱크대 상판을 설치하고, 스테인리스스틸 가전을 들여놓았다. 그리고 주요 신문의 부동산 색션에 대대적인 광고를 실었다. 내방객이 줄을 이었지만 실제 분양을 받는 사람은 극소수였다. 모에스타는 이미 분양받은 이들이 아파트를 무슨 용도로 ‘고용’했는지 보기로 했다. 수십 차례 진행된 면담에서 모에스타가 가장 먼저 깨달은 사실은 드러난 패턴으로는 누가 아파트를 살 가능성이 높은지 알 수 없었다는 점이다. 분양받은 사람들 모두 집 크기를 줄이려는 목적이 있긴 했지만, 인구통계학적 특징이나 심리분석적 특징 면에서 특별한 공통점은 찾을 수 없었다. 그런데 인터뷰 과정에서 특이한 단서가 드러났다. ‘식탁’이었다. 잠재고객들은 큰 거실, 넓은 손님용 침실, 편안하게 먹고 쉴 수 있는 바 테이블이 있었으면 한다고 말했지만, 정찬용 식탁을 원한다는 사람은 없었다. 그런데 실제 구매자들과 한 면담에서는 정찬용 식탁 얘기가 반복적으로 나왔다. 모에스타는 식탁이 도대체 왜 그렇게 중요한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런데 성탄 연휴에 가족과 함께 식탁에 둘러앉아 있다가 모에스타는 문득 깨달았다. 누군가가 생일을 맞거나 휴일이 되면 모든 가족 활동이 이 식탁을 중심으로 이뤄졌다. 평소에는 여기에 아이들 숙제가 널브러져 있곤 했다. 식탁은 가족의 상징인 셈이 었다. 모에스타는 자신에게 큰 의미가 있는 물건을 포기해야 하는 데서 생기는 걱정 때문에 새 아파트 입주를 망설였다는 가설을 세웠다. 알고 보니 수십만 달러짜리 아파트를 구매한다는 결정은 가족 구성원들 가운데 크고 거추장스러운 가구를 기꺼이 책임지겠다는 사람이 있는지 없는지에 좌우되는 경우가 많았다. 모에스타와 그의 팀은 새로 알게 된 사실을 토대로 잠재고객들에게 어떤 고민이 있는지 파악하기 시작했다. “이제까지 우리가 주택건설업을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실은 삶을 옮겨주는 사업을 하고 있었다는 걸 뒤늦게 깨달았습니다.” 고객의 ‘해결과제’를 비로소 이해하고 난 뒤 회사는 작지만 의미있는 여러 변화를 도입했다. 건축팀은 정찬용 식탁을 둘 자리를 마련하기 위해 손님용 침실의 크기를 줄였다. 입주자들이 이사라는 거사를 치르는 데 따르는 불안을 줄이는 데도 신경을 썼다. 이사업체 서비스를 제공하고, 2년간 창고를 사용할 수 있게 해주고, 아파트 부지에 물품 분류실을 따로 마련해 입주자들이 버릴 물건을 시간을 두고 천천히 골라내도록 배려했다. 고객의 ‘해결과제’에 대한 이런 통찰 덕분에 이 회사는 경쟁사들이 모방하기는 커녕 이해하기조차 어려운 방법으로 차별화를 이뤄낼 수 있었다. 새로운 관점이 모든 걸 바꿨다. 2007년 업계 매출이 49% 급감하고 시장이 곤두박질치는 와중에 이 회사는 오히려 25% 성장했다. ‘해결과제’를 파악하고 이해하는 작업은 고객이 원하는 제품, 특히 돈을 더 내고서라도 사고 싶어 하는 제품을 만들기 위한 첫 단추에 지나지 않는다. 그 제품을 구매하고 사용하는 경험을 제대로 구축하고, 그런 소비자 경험을 기업 프로세스에 통합하는 일 역시 중요하다. 그러면 경쟁사가 쉽게 따라 올 수 없다. 그동안 많은 조직이 의도치 않게 일관성 없고 기대에 못 미치는 결과를 가져오는 혁신 프로세스를 설계해 왔다. 풍부한 데이터를 수집하는 데 돈과 시간을 쏟아 부은 것이 패착 요인. 이런 모델은 현상을 기술하는 것에는 유용할지 몰라도 앞날을 내다보는 일에는 도움이 못 된다. 다행히도 대안이 존재한다. 고객이 좀처럼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 과제를 파악한 다음 혁신을 추진하면 훨씬 훌륭한 예측을 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더 높은 수익을 얻을 수 있다. 고객의 ‘해결과제’에 초점을 맞춘 혁신전략을 도입한다면 경쟁자들처럼 운에 기댈 필요가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