칭찬 받아야 하는 것은 복수의 완성이 아니라 용서입니다
일삶기록 (work & life) 520 넷플릭스 시리즈 콘텐츠 ‘더 글로리’라는 작품을 정주행했습니다. 소문대로 무척 재미있더군요. 원래 밤에 잠을 오후 10시 정도에 자려고 하는데 지난 한 주 동안 시리즈를 시청하느라 잠을 포기할 정도로 재미있게 보았습니다. 그 덕에 지금 피로 누적과 감기 기운까지 겹친 것 같아요. 시리즈는 육체 건강엔 해롭습니다. 오늘은 ‘더 글로리’ 시리즈 감상평은 아니고요. 정말 재미있게 봤지만, 두 가지 불편하게 느껴지는 내용이 있어서 방구석에 앉아 구시렁거려 봅니다. 픽션이라는 것을 알지만 이렇게 인기 있는 콘텐츠가 많은 사람으로부터 사랑받을 땐 사회적 영향력이 나타나기 때문에 꼭 한마디 하고 싶었습니다. 첫 번째, 복수의 결말이 죽음인 사람도 있다는 것입니다. 학교 폭력은 명백한 범죄입니다. 그리고 학교 폭력을 당한 사람에게 씻을 수 없는, 지우기 힘든 상처가 남는 것을 진심으로 가슴 아프게 생각합니다. 그렇다고 학교 폭력 가해자가 죽어도 된다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죽어 마땅한 범죄를 저지른 것은 사실입니다. 법의 판결을 받아서 사형이나 무기징역을 받는다면 합리적인 처벌이었다고 납득할 수 있었을 것 같아요. 물론 현실적으로 학교 폭력 가해자가 사형이나 무기징역을 받을 확률이 높지 않고, 사회적 영향력을 가진 인사를 백으로 가지고 있다면 영화나 드라마처럼 법의 심판을 빠져나갈 가능성도 충분히 존재합니다. 그렇다고 학교 폭력 가해자를 허구라는 테두리에선 죽여도 된다는 것은 너무 무서운 상상이라고 생각합니다. 차라리 박연진처럼 이혼하고 딸을 못 보고 감옥으로 보낸 것이 가장 합리적인 (?) 처벌로 보입니다. 물론 손명오를 폭행한 것을 살인으로 누명을 씌우고, 진짜 죽인 범임을 은닉하는 장면도 몹시 이상하지만 어쨌든 죄인을 죽이지 않았다는 것을 잘 했다고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범죄자는 나쁜 행동을 했으니 죽어도 된다는 것을 본 사람들이 앞으로 어떤 판단을 할 거라고 생각하는지 작가님께 묻고 싶습니다. 억울하게 피해를 본 모든 사람들이 복수를 할 것이라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그런데 가령 누군가 복수를 해서 사람을 죽였다면 그의 죄는 그럴 수도 있겠다고 공감을 얻지는 않을지 염려가 됩니다. 법의 판결을 받아서 충분한 벌을 받고, 이후에도 죄를 진심으로 회개하지 않는다면 죽어서도 지옥에 가서 더 심한 벌을 받을 텐데요. 굳이 이 세상에서 죽음으로 결말을 냈어야 했는지 의문이 들었습니다. 두 번째, 사람이 죽도록 배후에서 설계하고 조종한 사람이 행복하게 살았더라 해피엔딩으로 마무리한 것입니다. 어린 시절 당한 학교 폭력을 성인이 되어서 복수를 하는 것과 복수 방법이 간접 살인이어도 괜찮다는 메시지를 주는 내용이 몹시 불편했습니다. 과거 고통스러웠기 때문에 이후에는 어떻게든 행복하면 된다는 것인지 무섭게 느껴지고 궁금합니다. 아버지가 살인을 당한 아들이 지옥 같은 현재를 살고 있는데, 유일하게 사랑하는 여인만이 상처를 치유할 수 있으니 앞으로 서로 복수를 도와 상처를 보듬으며 사랑하고 살라는 해피엔딩이 소름 돕게 무섭고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한 번 죄인은 영원히 낙인찍혀 죽어야 마땅한 결론이 이 시대에 줄 수 있는 메시지로 적당한 내용이 맞을까요? 다시 이야기하지만 죄인은 벌을 받아야 마땅합니다. 그런데 죄인도 벌을 받았다면 스스로 죄를 돌이켜 정상적으로 살 수 있는 기회를 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아직 벌을 받은 적이 없는데 죄의 값이 바로 사망이라면 복수로 저지른 죄의 값도 죽음으로 받아야 하는 것 아닌가요? 영화나 드라마 결론으로 해피엔딩을 좋아합니다. 그런데 이런 비상식적인 해피엔딩은 싫습니다. 차라리 모두가 슬픈 마무리였다면 더럽게 어두운 픽션이었다고 넘길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픽션을 보고 현실에 적용할 수도 있는 분들이 계실까 봐 염려되어 방구석에서라도 구시렁거려 봅니다. 누구도 사람의 생명을 건들 수 없습니다. 죄는 벌로 다스릴 수 있지만 생명까지 위협할 수 없습니다. 허구라도 그래선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콘텐츠에서 복수로 친구와 남편을 죽도록 만든 사람 그 누구도 죄책감을 느끼지 못합니다. 심지어 복수가 너무 멋지고 심지어 아름답게 그려져서 안타까웠습니다. 복수보다 훨씬 더 아름다운 것은 용서입니다. 용서할 수 있는 용기야말로 이 시대를 사는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어야 하는 내용이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