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비즈니스 영화'가 한 편 추가되었습니다. (Feat '에어')
01. 어젯밤 최근 개봉한 영화 ⟪에어 - AIR⟫를 보고 왔습니다. 개봉을 기다렸던 분들은 이미 잘 아시겠지만 이 영화는 NBA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인물로 손꼽히는 '마이클 조던'과 전 세계 스포츠 시장의 왕좌 '나이키'간의 첫 만남을 다루고 있는 작품입니다. 198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아디다스와 컨버스에 밀려 만년 3위를 기록하고 있던 풋내기 기업 나이키에게 절대 반지를 끼게 해준 사건이자 오픈런, 리셀 등의 단어를 탄생시킨 '조던' 시리즈의 역사가 쓰여진 순간에 대한 이야기인 것이죠. 02. 보는 내내 가슴이 두근거리는 장면이 연이어 터져 나왔습니다. 특히 1980년대와 90년대에 어린 시절을 보낸 분들이라면 배경, 스토리, 음악, 인물, 에피소드들까지 어느 것 하나 아쉬울 것 없이 모든 것에 공감하기 충분합니다. 물론 일부 스토리는 나이키라는 승자의 역사로 기록되었고 또 논란이 될 수 있을만한 포인트는 애써 언급하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꽤 멋진 상업 영화로 추천드릴 수 있겠다 싶습니다. (아, 세월 앞에 장사 없는 맷 데이먼과 벤 애플렉에게는 조금의 짠함이 느껴지지만 말이죠...) 03. 하지만 제가 정말 좋았던 포인트는 이 영화가 철저히 '비즈니스 영화'라는 점입니다. 맥도날드가 프랜차이즈화 되는 과정을 다룬 ⟪파운더⟫나, 애플의 태동을 조명한 ⟪잡스⟫, 페이스북과 마크 저커버그의 이야기를 풀어낸 ⟪소셜 네트워크⟫처럼 또 하나의 멋진 '기업 이야기'가 탄생한 것이죠. 무엇보다 창업 시기나 특정 인물의 성공담에만 초점을 맞추기 보다 기업이 모멘텀을 맞이한 시점, 브랜드 역사에 새로운 관점을 던져준 사건을 전달한다는 점에서 다른 작품들과는 또 다른 흥미를 느낄 수 있습니다. 비현실에 가까운 실화들이지만 그게 또 새로운 도전을 준비하는 사람들에게는 좋은 자극이 되니 말이죠. 04. 특히 이 영화가 개봉을 앞둔 시점에 나이키의 창업자인 필 나이트가 쓴 ⟪슈독⟫이 자주 언급되었는데요, 정확히 말하자면 이 작품은 슈독에서 소개된 내용들 이후를 다루고 있다고 봐야 합니다. 슈독이 1962년부터 1980년까지의 나이키 역사를 다루고 있는 반면, ⟪에어⟫의 첫 도입부는 1984년부터 시작하기 때문이죠. 자의든 타의든 진정한 나이키의 모멘텀이 '조던'이라는데 이견은 없어 보이므로 이 작품은 '비즈니스 승부수'라는 관점에 주목하며 따라가다 보면 꽤 얻을 것들이 많습니다. 05. 그중에서도 저는 영화 중간중간 소개되는 나이키의 기업 철학 시퀀스가 인상 깊었습니다. 사실 나이키는 1980년 기업 공개 이후 필 나이트가 설정한 초창기 기업 철학이 거세게 흔들리는 경험을 하게 되거든요. 호기로운 해적단처럼 출발한 자신의 기업이 이사회의 입김과 엄청난 경쟁자들에 의해 점차 도전자 정신을 잃어갔기 때문이죠. 그러니 '마이클 조던'이라는 승부수와 '에어 조던'이라는 희대의 걸작을 조합하는 과정은 단순한 브랜딩, 마케팅의 성공이라기 보다 한 기업을 다시 바로 세우는 작업이었다고 평가하는 게 옳을 것 같습니다. 06. 하나 덧붙이자면 'debate' 형식의 대사가 적절히 잘 녹아있다는 것도 주목할 만합니다. 지나치게 지루하지도, 또 너무 판타지스럽지도 않게 뽑아낸 토론 형태의 각본이 영화 전반의 밸런스를 잘 잡아주고 있는 느낌입니다. 특히 영화 클라이맥스에 나이키 담당자인 소니 바카로와 조던의 어머니가 나누는 대사는 대화만으로 이끌어낼 수 있는 긴장감을 최대로 뽑아내고 있죠. (물론 실제 이 부분에 대한 기억은 바카로, 마이클 조던, 조던의 어머니, 조던의 에이전시, 나이키의 계약 담당자의 기억이 모두 다르지만 큰 틀에서 조던의 어머니가 계약을 주도했다는 것은 명백한 팩트입니다.) 07. 저도 개인적으로 조던이라는 브랜드를 너무 좋아해서 ⟪브랜드로부터 배웁니다⟫ 책의 한 챕터를 조던으로 다뤘었습니다. 그리고 그 챕터의 제목은 '기대를 설계한다는 것'이었죠. 어떻게 조던이 한 시대를 거쳐 다음 세대, 그다음 세대로도 그 페르소나를 유지하고 발전시켜갈 수 있는지에 대한 나름의 관점과 해석을 풀어본 내용이었습니다. 저 역시도 자료 조사에 꽤 많은 공을 들였지만 이번 ⟪에어⟫라는 영화를 통해서 새로 알게 된 흥미로운 내용들이 있어서 더 반가웠습니다. 무엇보다 영화 전반의 과정이 조던과 나이키 각자에게 자신들의 미래를 어떤 기대로 쌓아나가느냐를 보여주고 있어 나름 제가 예측한 결과 잘 맞닿았다 싶어 뿌듯하기까지 했습니다. 08. 그동안 비즈니스 영화에 꽤 목말라있던 분들이 계시다면 저는 이 작품은 볼 가치가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농구 영화 붐의 시기라고는 하지만 그 각각이 전하는 메시지들은 다 다른 것 같거든요. ⟪슬램덩크⟫가 그 시절 우리의 향수를 자극했고, ⟪리바운드⟫가 잊혀져있던 감동 실화를 다시금 끄집어 냈다면, ⟪에어⟫는 비즈니스와 브랜딩의 역사가 전환된 엄청나게 중요한 사건으로 한 번 접근해 보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