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의 시간은 다르게 흐른다
‘매일을 사는 사람이 있고, 300년을 사는 사람이 있다. 생각의 시간-사이즈는 인간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것이다.’ 국제정치학을 전공했지만 관심사는 이론, 사상, 철학이었다. 말하자면 ‘에버그린 콘텐츠 비즈니스’에 상당히 오랫동안 관심을 가져왔던 셈이다. 미디어 쪽에서 일을 시작하면서 흥미롭게 생각했던 점이 한가지 있는데, 바로 동료가 일했던 매체의 성격에 따라 시간과 관계하는 방식이 달라진다는 것이었다. 시간단위(방송), 일단위(일간지), 주단위(주간지), 월단위(잡지), 에버그린(대학원, 철학)으로 사고하는 방식은 습관화되고 인간의 정체성과도 깊게 결부되어서, ‘습관이 ‘옳은 것’으로 변해버린다.’ 말하자면 이런 거다. 좋은 시사, 지식 콘텐츠는 무엇인가? 복잡하고 혼란하고 뭐가 너무 많은 오늘날 사용자의 지식 성장을 위해 큐레이션해야하는 콘텐츠는 무엇인가? 방송, 일간지, 주간지, 잡지, 대학원 출신을 모아놓고 같은 질문을 한다면, 완전히 다른 대답을 내놓을 것이다. 누군가는 오늘의 뉴스를, 누군가는 요즘 핫한 토론거리나 정책 사안을, 누군가는 키워드 사이즈의 트렌드를, 누군가는 철학이나 이론, 패러다임을 말할 것이다. 나는 시간과의 관계는 일종의 포지셔닝과 정체성에 가까워서, 쉽게 바꿀수 없다는 이야기를 하려고 하는 것이다. 매 시간, 매일을 사는 사람은, 광고모델 미디어 비즈니스가 쏟아내는 노이즈의 함정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 뉴스거리, 화제거리는 세상에 정말 많다. 매일 사람이 죽고, 매일 어딘가에서 불이 나며, 매일 부정적인 뉴스가 쏟아진다. 그걸 다 알아야 하는가? 하루 종일 부정적인 노이즈에 노출되어 ‘세상은 망했군’하며 비관주의자가 되어야 하는가? 정답은 없다. 다만 ‘습관이 정체성이 되어버리기’ 전에 자신이 원하는 것을 원하고 있는지 짚어볼 필요가 있다. 나 개인적인 관심사에 대해 말한다면, 나는 ‘불멸의 텍스트’와 ‘패러다임 쉬프트’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수천년의 뉴스와 노이즈를 뚫고 살아남아 아직도 읽히는 텍스트만이 정독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불경, 루미시집, 도덕경, 논어, 니체의 책과 같은 것들이다. ‘패러다임 쉬프트’는 중요하다. 각 분야에서 새로운 물결들이 파도처럼 밀려들고 있기 때문이다. 스타트업, 로컬, 콘텐츠, 크리에이터 경제, 인공지능, 미디어, 라이프스타일 등 내가 조금씩 관심을 가지고 있는 분야에서도 괄목할만한 변화들이 있는 것 같다. 패러다임이 변화할 때 이를 미리 예측하고 포지셔닝을 잡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데일리 노이즈에 마음을 내어주지 말아야 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변화가 더욱더 빨라졌고 변동성이 매우 높은 이 시기에, 다양한 분야의 패러다임 쉬프트 수준의 지식에만 주의를 기울여도 너무 많고 너무 빠르다. 정리하면, 개인적으로는 ‘계절이 바뀌어도 변화하지 않는, 인간에 대한 근본적인 지혜, 진리, 지식’과 ‘각 분야에서 밀려오고 있는 거대한 흐름의 변화’들에만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산불을 보며 기후변화를 보아야 한다. 성수동을 보며 로컬, 라이프스타일, 스타트업이라는 흐름의 구조를 보아야 한다. 다른 글로 정리할 생각이지만, 인공지능의 발전을 보면서 오히려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은 인간지성(human intelligence)이다. ‘디지털 미디어 / 콘텐츠 비즈니스를 하고자 하는 사람은 어떤 시간 단위를 잡아야 하는가?’ 이런 질문을 던져볼 수 있다. 내 생각에 정답은 ‘사용자’다. 페르소나에 따라서 사실 다른 시간성, 다른 장소성의 삶을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업계 일잘러들은 매일매일 트렌드를 빠르게 업데이트하면서 일에 적용해 자신의 가치를 높이고 싶어한다. 멀리서 트렌드를 지켜보는 사람들은 약간 더 늦어도 더 쉽고 더 말랑하게 전달해도 괜찮을 것이다. 세대나 나이, 로컬에 따라서도 ‘변화’와 관계하는 방식은 매우 다르다. 만약 암묵적으로 미디어나 콘텐츠가 가져야 하는 시간과의 관계에 대한 가정을 시간, 일, 주, 월으로 잡고 있다면, 지나치게 ‘이기적’인 것은 아닌지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 매일 출근하며 전투적으로 트렌드를 파악하는 일잘러와, 지하철에서 졸거나 유튜브 영상을 보며 변화에는 크게 관심 없는 사람들은 너무나 다르기 때문이다. 누구에게 어떤 가치를 제공할지를 생각하는 것은, 사실 비즈니스뿐만 아니라 그냥 삶의 진리라고 생각하고 있다. 어떤 가치를 제공할지 고민하지 않는자는 그 누구의 시간, 돈, 응원도 받을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있다. 줄 생각이 없는데 왜 다른사람들이 먼저 뭘 주겠는가. 아주 간단한 원리. 그러니 자신이 시간과 어떻게 관계하고 있는지 한번 깊게 고민해볼 일이다. 다들 전투적으로 콘텐츠를 읽는 것도 아니고, ‘변화’에 크게 관심이 없는 사람도 많기 때문이다. ‘변화’에 대해 어떤 태도와 온도를 가진 사람들과 함께할 것인지를 정해야 할 것이다. ‘누구(어떤 고객)와 비즈니스를 함께할 것인가’야말로 정말 중요한 질문이기 때문이다. 정말 솔직히 말해서, 말도 섞기 싫은 고객을 대상으로 좋은 비즈니스를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 고생을 도대체 왜 해야되는지, 자신과 팀을 설득할수 없을 테니까. [어제 쓴 ‘뉴스레터는 왜 ‘꾸미기 올림픽’이 되었는가’라는 글은 한 IT매체에 기고하게 되었네요. 혹시 콘텐츠 협업 제안을 고민하고 계신 분이 있다면 편하게 연락주세요. 제가 쓰는 모든 글은 추가적인 리서치와 기획을 통해 칼럼, 기고 형태의 글로 업그레이드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