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그만둔다'는 것의 의미를 찾아서 (Feat. '큇 - Quit)
01. 컬럼비아대 심리학과 교수인 애니 듀크의 '큇(Quit)'을 읽은 건 작년 연말쯤이었습니다. 버티기가 아닌 '현명하게 그만두기'를 종용하는(?) 이 책을 한 해의 끝이자 또 다른 한 해의 시작을 앞둔 시점에서 만난 건 꽤 기분 좋은 충격이기도 했죠. 세상에는 우리가 알고 있는 사실이 틀렸다고 이야기하며, 자신의 주장을 강하게 어필하는 책들이 참 많지만 '큇'은 그중에서도 충분히 설득력 있는 근거들로 또 하나의 관점을 제시합니다. 02. 저자인 애니 듀크 교수가 '큇'을 통해 전달하는 메시지는 분명합니다. "'큇'은 말 그대로 어떤 일을 멈추는 것이며, 동시에 경로를 바꾸는 것이기도 하다"가 그의 주장이거든요. 이건 충동적인 포기나 게으른 기질, 무엇 하나 진득하게 하지 못하는 변덕스러움과는 정확히 구분되는 개념입니다. '잘 그만둔다'는 것은 최적의 의사결정 스킬에 해당하기 때문이죠. 03. IT 업계에 몸담고 일해온 시간 동안 정말 많이 들었던 말 중 하나가 '버티는 놈이 살아남고, 살아남은 놈 중에서 승리하는 놈이 나온다'라는 얘기였습니다. 그런데 이 말에도 허점은 존재합니다. 제 경험상 버티는 사람들 중 살아남은 자들은 그 바닥에서 도태되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궤도를 수정하고 새로운 것들에 도전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살아남은 사람들 사이에서 의미 있는 성공을 거둔 케이스는 무엇을 버리고 어디에 집중해야 할지를 정확히 파악한 사람들이었죠. 04. 때문에 진짜 어떤 일을 제대로 잘 하고 싶다면, 혹은 내가 목표한 바를 내가 추구하는 목적 안에서 이루고자 한다면 '현명하게 포기하는 방법'이 정말 중요할지 모릅니다. 그러니 애니 듀크 교수가 설명하는 '포기의 본질은 탐색과 확장'이라는 그 말에 좀 더 공감이 가는 걸 수도 있겠죠. 빠르게 포기하고 자주 그만둬도 괜찮지만 이런 결정을 할 때는 늘 어느 정도 정량화할 수 있는 '중단기준'이 필요하며, 그 과정에서 가치 있는 일을 발견하게 되었다면 거기에 역량을 집중하고 가장 풀기 어려운 문제에 집중하라고 조언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05. 올해 2월에 조선일보 김지수 기자와 애니 듀크 교수가 나눈 인터뷰는 '큇'을 읽은 다음 정독하면 훨씬 더 매력적으로 다가옵니다. 책을 읽으며 조금씩 고개를 들기 시작하던 반론들을 김지수 기자님이 직접 묻고 파헤치며 그 주장들을 잘게 쪼개 소화시키도록 해주거든요. 덕분에 저는 시간이 날 때 이 책을 다시 한번 읽어보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저자의 생각을 더 자세히 알고 나니 새로운 마음으로 다시 보고 싶더라고요. 06. 저는 관점도 없고, 근거도 없이 '괜찮다'라고 말하는 스피커들을 딱히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자기가 해보지도 않은 분야의 일을 하는 사람들에게 '그만둬도 괜찮다', '포기하는 게 부끄러운 건 아니다'라는 식의 위로도 아니고 응원도 아닌 이상한 메시지를 던지는 행태를 꽤 비판적으로 바라봐 왔습니다. 하지만 같은 말을 하더라도 '왜 그래야 하는지', '그게 어떤 포인트에서 중요한지', '그렇게 한 사람과 하지 않은 사람이 통계와 사례에서 어떤 차이를 보여주는지'를 설명해 주면 말의 감도는 확연히 달라지죠. 그래서 저는 위로와 응원이 아닌 의사결정의 한 방법으로 '큇'이 참 좋았습니다. 07. 기회가 되신다면 아래 링크 걸어드린 인터뷰 기사를 한 번 읽어보시길 권합니다. 그리고 이 주장에 흥미가 생기거나 일부분 동의하실 수 있다면 직접 책을 읽어보는 것도 추천합니다. 세상에 '포기하지 마라', '끝까지 버텨라'라고 이야기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그 반대의 주장을 하는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보는 것도 충분히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일이니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