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걱정은 유용하다’라는 생각에 대한 노트
얼마 전의 일입니다. 동료들과 대화하던 중에 ‘걱정’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걱정은 [적당한 긴장을 만들어주기 때문에] 유용하다’라는 얘기였죠. 순간 어떤 벽이 느껴졌습니다. ‘응? 걱정이 건강이나 성과에 좋다는 증거가 있나? ‘긴장’을 ‘집중’과 혼동하기 때문이 아닌가? 걱정이 도대체 어디에 쓸모가 있지?’ 저는 ‘성장러에게 걱정 따위는 필요없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데요, 다소 불편한 글이 될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걱정은 기본적으로 ‘두려움’과 매우 유사합니다. 즉 걱정을 생각으로 착각할 수 있지만 절대다수의 경우 감정에 더 가깝다고 보고 있습니다. ‘이런 글을 써도 될까?’ ‘이런 말을 하면 욕먹지 않을까?’ ‘이런걸 발행해도 될까?’ 전에 저는 유사한 맥락에서 사실 대다수의 경우 사람들은 ‘고민’을 하는 것이 아니라 걱정을 하고 있다고 쓴 적이 있습니다. 어떤 액션을 취하기 전에 리스크를 검토하고 디테일을 더블체크하는 일은 당연히 중요합니다. 사이즈가 큰 액션, 개인이 아니라 회사의 이름을 걸고 행하는 일이라면 더욱 더 그렇겠죠. 그렇지만 막연한 두려움의 감정을 마음에 품고 걱정에 시간을 내어주는 일이 왜 생산적인지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망설이느라 시간을 낭비하게 됩니다. 리스크가 높고 하지 않기로 결정할 것이라면, 걱정하는 대신 그냥 안하거나 다른 방식으로 하기로 결정하면 됩니다. 이번에 리스크테이킹을 해야 할 충분한 이유가 없다면, 일단 이번에는 안전한 방식으로 실행해보고 결과를 보고 다시 생각해보기로 하는 것이죠. 다른 맥락에서, 뭘 해도 될지 망설이는 과정 자체에서 배우는 것이 있으며, 지나치게 앞서나가거나 평균을 벗어나지 않으니 안전하다는 관점이 있을 수 있습니다. 작게라도 실행하거나 차라리 안하기로 결정하는 것이 더 배우는 것이 많을 것 같습니다. 후자의 경우, 두려움에 망설이고 있는 겁니다. 한국 사회를 ‘소용돌이 사회’로 만들고, 질문하지 못하게 만들고, 평균을 벗어나 뭔가 새로운 것에 도전할 수 없도록 만드는 바로 그 메커니즘이죠. 두려움을 슬기롭게 대하는 방법은, 객관화하고 쪼개서 실제로 대응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막연하게 두려운 상황에서, 리스크나 발생할 수 있는 상황, 발견하지 못한 문제 등을 정의해보는 것이죠.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의 피드백을 받거나, 몇번 더 더블체크하거나, 준비 작업이 빠진 것이 있다면 몇번 더 돌려보는 방법을 사용할 수 있을 겁니다. 객관화하고, 쪼개서, 대응하고 미뤄두면, 사실 걱정했던 것이 실제로 대응이 필요한 어떤 문제였거나, 단순한 저항이나 두려움이었다는 사실이 드러나겠죠. 두려움을 느끼는 인간은 투쟁도피상태(Fight or Flight)에 빠진다고 하는데요, 객관적인 사고가 멈추고 감정적으로 대응하기 쉬워지는 것이죠. 그러니 걱정이나 두려움 비슷한 감정이 올라온다면, 마음을 내어주지 말고 빠르게 대응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혹시 걱정이 정말 유용하다고 생각하시는 분이 계신가요? ‘걱정은 자연스러운 것이다’ ‘다들 비슷한 걱정을 하면서 산다’는 얘기와는 또 결이 매우 다른 얘기인데요, ‘걱정의 효용’이 정말 있는지 궁금하기도 합니다. 성장러라면 걱정에 시간을 낭비할 필요는 없다고, 강하게 얘기하고 싶은데요, 다들 공감하실지 모르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