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가 오래 알고 지낸 대기업 직장인이 있다. 그는 입사 3년 차 무렵에 일에 대한 흥미를 완전히 잃었다고 했다. 상사가 뭘 시켜도 하기 싫어졌다고 했다. 짜증만 났다고 했다. 몇 차례 이직 시도를
필자가 오래 알고 지낸 대기업 직장인이 있다. 그는 입사 3년 차 무렵에 일에 대한 흥미를 완전히 잃었다고 했다. 상사가 뭘 시켜도 하기 싫어졌다고 했다. 짜증만 났다고 했다. 몇 차례 이직 시도를 했지만 실패했다. 그래서 빈둥빈둥 시간만 때운다고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서점에서 집어 든 피터 드러커의 책을 읽고는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직장에서 일을 하지 않으면 인간관계가 파괴된다는 내용이었다. 동료들로부터 미움을 받게 된다는 내용이였다. 그 순간, 지인은 망치로 머리를 맞은 기분이었다. 이미 그런 상황으로 빠져들었기 때문이다. 부장과 차장은 이미 자신을 미워하고 있고, 후배들로부터는 무시의 눈초리를 받고 있었다. 그 순간, 그는 일해야 하는 이유를 찾았다고 했다. 남들보다 특별히 더 열심히 일할 필요는 없지만, 한 사람으로서 도리는 하고 살아야 할 거 같았다. 그때부터 ‘사람 사이의 관계 지키기’ ‘동료로서 도리를 다하기’는 그가 일을 해야 하는 이유가 됐다. 그리고 그때부터 업무 스트레스에 대한 반응이 달라졌다고 했다. 과거에는 일이 조금만 어려워도 ‘내가 왜 이 일을 해야 하나’하며 짜증을 내고 한숨을 쉬며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았다. 그 일로부터 달아나고 싶었다. 그래서 상사가 어떤 일을 주려고 하면 일단 거부했다. 상사와 싸우더라도 그 일을 피하려고 했다. 자기가 그 일을 하지 않아도 될 합리적인 이유를 찾느라 에너지를 낭비했다. 그러다 보니 정신적으로 지치고 피곤해졌다. 업무 스트레스가 자신의 건강을 갉아먹는 듯했다. 그러나 그가 일에서 의미를 발견하는 순간부터 그의 삶이 달라졌다. 예전이라면 스트레스를 받았을 상황에서도 평정심을 유지하게 됐다. 상사가 일을 시키면 ‘내가 할 일’로 받아들였다. ‘동료로서의 도리’를 다하려면 당연히 자신이 해야 할 일이었다. 그러다 보니 스트레스를 포용하게 됐다. 때때로 그는 동료를 돕기까지 했다. 그러자 예전 같으면 그에게 아무런 부탁도 하지 않던 동료들이 도움을 청하기 시작했다. 과거 같으면 ‘내 일도 아닌데 내가 왜’라며 거부하고 그 거부를 합리화하느라 스트레스 받았겠지만, 이젠 동료들이 고마워하는 모습을 보면서 자신이 주변과 건강한 관계를 맺고 있다는 기쁨을 느꼈다. 그는 어느덧 과거보다 훨씬 강력한 스트레스마저 포용하게 됐다. 그가 달라진 모습을 보이자 그의 상사는 그에게 보다 중요하고 어려운 프로젝트를 맡기기 시작했다. 물론 때때로 실패와 좌절도 찾아왔지만 때때로 성공의 짜릿함을 맛보기도 했다. 사내에서 인정을 받으며 몇 차례 승진도 했다. 다만 그는 회사가 추구하는 가치나 행태 등에서는 ‘열정을 바쳐 일할 이유’를 아직도 찾지 못했다고 했다. 그래서 더 높은 자리에 오르고 싶은 욕심도 없다고 했다. 다만 여전히 한 사람의 좋은 동료, 선배로서는 남고 싶다고 했다. 그것만으로도 지금만큼 일할 이유는 충분하다고 했다. 지금 그는 주변에서 책임감있고 믿을 만한 동료로 통한다. 내가 지인의 이야기를 떠올린 건 이라는 책을 읽을 때였다. 무엇이 지인의 변화를 이끌어냈으며, 스트레스 반응을 정반대로 바꾸었는지 답을 찾을 수 있었다. 책에서는 미국 스탠퍼드대 학생들을 대상으로 진행된 실험을 소개했다. 실험에 참가한 스탠퍼드대 학생들 다수는 겨울방학 동안 일기를 쓰기로 동의했다. 그중 일부는 자신의 가장 중요한 가치관이 무엇인지, 하루의 활동이 그 가치관들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에 대해 작성하기로 했다. 3주간의 방학이 끝난 뒤 연구원들은 학생들의 일기를 수집하고 방학을 어떻게 보냈는지 물었다. 결과는 놀라웠다. 가치관에 대한 글을 쓴 학생들은 몸이 더 건강하고 원기가 왕성했다. 방학 동안 질병이나 건강상의 문제도 비교적 적었다. 그리고 학교에 복귀한 뒤로는 스트레스를 다룰 줄 아는 능력이 있다고 더욱 더 확신하게 됐다. 연구원들은 글쓰기가 왜 그 같은 효과를 냈는지 알기 위해 학생들이 쓴 일기를 2000 쪽 이상 읽고 분석했다. 그리고는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였다. “가치관에 대한 글쓰기는 학생들이 인생의 의미를 발견하는 데 도움이 된다.” “스트레스 경험은 더 이상 그저 억지로 견뎌야 하는 순간이 아니라, 학생들이 가진 가치관의 표현이 됐다. 가령 동생을 차로 태워주는 일은 가족에게 얼마나 마음을 쓰는지를 나타낸다. 인턴 지원서를 준비하는 것은 미래의 목표를 향해 한 걸음 내딛는 방법이었다. 이렇듯 일상 활동에서 심오한 가치관을 찾아보라고 요청받은 학생들은, 예전 같으면 짜증나게 느꼈을 순간들을 이제 의미있는 시간으로 느꼈다." 필자의 지인이 일에서 아무런 의미를 찾지 못할 때에는 사소한 일에도 짜증을 내고 스트레스에 힘들어했다. 그러나 그가 새로운 가치관, ‘사람 사이의 관계 지키기’를 소중하게 받아들이는 순간부터 모든 게 달라졌다. 비록 그가 일기를 쓰지는 않았으나, 그 가치관이 그의 머릿속에 각인됐다는 건 분명했다. 지인은 일을 하며 여전히 스트레스를 받기도 했지만, 그 스트레스는 자신이 소중히 여기는 가치를 실현해 의미 있는 삶을 만들기 위한 ‘과정’이 됐다. 맥고니걸에 따르면, 우리는 스트레스에 대해 ‘투쟁-도피 반응’이 아니라 ‘도전 반응‘을 보일 수 있다고 한다. 스트레스와 주먹다짐을 벌이느라 고통받고 스트레스로부터 달아나느라 지치는 게 아니라, 스트레스로부터 에너지를 얻어 삶의 가치를 실현하는 동력으로 삼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일에 몰입하는 사람들이 바로 그런 예라고 한다. 몰입의 상태, 즉 자신이 하는 일에 완전히 빠져들어 무척 즐거워하는 상태에 들어섰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도전 반응의 징후를 분명히 보여준다. 대다수 사람들의 예상과는 반대로, 정상급 인사들은 중압감을 느낄 때 생리적으로 평온하지 않다. 오히려 강력한 도전 반응이 일어난다. 스트레스 상황을 자신의 기술이나 지식 또는 장점을 개선할 기회로 생각하면, 투쟁-도피 반응이 아니라 도전 반응을 보일 가능성이 높아진다. 예전에 스트레스를 받으며 짜증 냈던 순간이 오히려 이제 삶의 의미있는 순간순간이 된다. 우리 삶이 더 건강해지고 풍성하게 될 것이다. 완벽하진 않다고 해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