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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은 수없이 반복했던 익숙한 내용이기 때문에 해당 지식을 처음 접한 사람이 겪게 되는 당황스러움과 어려움, 궁금증 등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상황은 의외로 흔한 모양이다. 일례로 어떤 분야에서 경

자신은 수없이 반복했던 익숙한 내용이기 때문에 해당 지식을 처음 접한 사람이 겪게 되는 당황스러움과 어려움, 궁금증 등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상황은 의외로 흔한 모양이다. 일례로 어떤 분야에서 경력과 지식이 많은 이가 사람들을 잘 가르칠 것 같지만, 의외로 그렇지 않다는 연구 결과가 있었다. 처음 접하는 내용에 대해 “이렇게 쉬운 걸 몰라?”라는 무책임한 말을 하는 선생님이나 상사를 본 적 있었다면 공감할 수 있는 결과다. 개구리 올챙이 적 모른다는 말이 어느 정도 근거가 있다는 얘기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나의 경우 올챙이적이 그렇게 떠올리기 힘들 정도로 머나먼 옛날이었던 것은 아니다. 필자 또한 연구 방법론이나 통계, 통계 프로그래밍 등을 처음 배웠을 때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모르겠다는 아득한 기분을 느꼈었다. 지금은 좋아하지만 처음에는 낯설고 복잡한 내용들 때문에 거부감만 가득했던 것 같다. 이후 많은 시간을 들여 조금씩 친해졌지만, 그 과정들이 항상 쉬웠던 것도 아니다. 사실 조금만 떠올리면 어떤 개념을 처음 배웠을 때 어떤 점들이 어렵게 느껴졌는지 기억해낼 수 있다. 그러니까 처음 접하는 사람들 입장에서 조금 더 생각하고 나의 기억을 조금 더 끄집어 내면 분명 친절한 수업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너무 먼 옛날 일이라서 기억하지 못한다기보다 ’귀찮아서‘ 혹은 ’이 사람들을 이해하는 데 그렇게까지 공을 들이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해서‘와 같은 다소 이기적인 이유들이 수업 또는 의사소통(수업도 결국 의사소통이니까) 방식을 불친절하게 만들었던 것 같다. 실제로 타인의 입장과 시선에서 생각하는 능력인 ‘조망수용(perspective taking)’ 능력은 개개인들이 느끼는 눈 앞의 타인을 이해해야 할 필요나 동기 수준에 따라 달라진다. 예컨대 남성들도 여성들만큼 (금전 같은 보상을 걸면) 조망수용을 잘 해내지만, 사회적으로 친절, 따스함 등의 미덕은 여성에게 훨씬 더 강조되기 때문에 굳이 “그럴 필요가 없어서” 타인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훈련을 덜 하는 편이라는 연구 결과들이 있다. 또한 사람들에게 상사-직원 역할 놀이를 하게 했을 때, 상사 역할을 맡은 사람들은 직원 역할을 맡은 사람들보다 상대방 마음을 잘 읽지 못했다는 연구도 있다. 나보다 높은 권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의 마음은 열심히 이해하려 들지만, 약한 사람의 생각은 별로 중요하게 고려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조금만 그럴 필요가 없으면 금방 불친절해지고 사람을 이해하기도 이해하지 못하기도 하는 것이 우리들이다. 물론 누군가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개구리 올챙이적 기억을 끄집어 내는 데에는 은근히 많은 노력이 들어간다. 그렇게 노력하지 않고 편하게 지내면 좋은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다른 일은 대충 하고 살더라도 사람을 대하는 일에 있어서만큼은 노력하기를 멈추지 않았으면 좋겠다. 얼마 전 “사람은 사랑하기 위해서 만들어졌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모든 생명체는 자신이 가장 잘 하도록 특화된 것을 하기 위해서 존재한다는 사실을 생각해보면, 타인의 관심과 사랑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인간이라는 동물은 분명 사랑하기 위해서 존재한다는 이야기였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이해하기 위한 노력을 멈추는 것은 사랑하기를 멈추는 것과 같을지도 모르겠다. 사랑하기를 멈춘다면 내 존재 이유 또한 멈추는 것이 아닐까. 고로 이해하기를 멈추지 말아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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