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통령으로 당선된 조 바이든의 연설은 그의 당선이 갖는 의미에 비해서는 다소 평범했다. 사실 지루하기까지 했다. 부통령 당선자 카멀라 해리스의 연설이 워낙 강렬했던 탓도 있다. 최초의 여성 부
미국 대통령으로 당선된 조 바이든의 연설은 그의 당선이 갖는 의미에 비해서는 다소 평범했다. 사실 지루하기까지 했다. 부통령 당선자 카멀라 해리스의 연설이 워낙 강렬했던 탓도 있다. 최초의 여성 부통령이라는 의미를 부각하기 위해 여성의 참정권 투쟁을 상징하는 흰색 정장을 차려입은 해리스는 젊고 패기 있었으며,그의 문장들에는 영감이 가득했다. 그에 비해 바이든의 연설에는 군중을 흥분시킬만한 특별한 내용이 없었다. 선거 기간 내내 내세웠던 원칙들을 다시 반복하는 연설이었다. 하지만 바이든의 연설이 실망스럽지 않았던 이유는, 그의 주장이 지극히 상식적이고 예측 가능한 내용이었기 때문이다. 아니 그런 내용만을 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상식적이고 예측 가능한 것들이란 원래 진부한 법. 그러나 그동안 미국 사회에 난무했던 비상식과 예측 불가능성으로 인해, 사람들이 가장 듣고 싶었던 말은 지극히 상식적이고 예측 가능하며 원론적인 이야기들이었다. 지루해서 신선했고, 특별하지 않아서 안심이 되는 연설이었다. 바이든 연설의 핵심은 서로에 대한 ‘악마화(Demonization)’를 멈추자는 것이다. 악마화의 본질은 적(敵)을 인간 이하의 존재로 규정하는 것이다. 적을 인간보다 못한 금수의 존재, 혹은 생명체가 아닌 단순한 물적 대상으로 폄하시켜서, 적을 향한 공격에 도덕적 정당성을 부여하는 것이 악마화다. 그런 의미에서 악마화는 비인간화(Dehumanization)의 일종이다. 악마화는 그 끔찍한 이름 때문에 소수의 극단적인 사람들만의 전유물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 악마화와 비인간화는 우리 삶에 편재해 있다. 일상생활에서의 비인간화는 타인을 자신에 비해 정신적이고 심리적인 동기가 약한 존재로 보는 것으로 발현된다. 타인은 그저 동물적이고 신체적인 동기에 의해 움직일 뿐 심미적 욕구나 자존감 욕구, 그리고 자기실현 욕구 등과 같은 정신적 욕구는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한다면, 우리는 상대를 비인간화하고 있는 것이다. 자기가 고용한 사람에게 월급 주면 됐지, 그 이상 무엇을 더 해줘야 하냐며 갑질을 해대는 사람들은 그들을 비인간화하고 있는 것이다. 법대로 처리했을 뿐이라며 상대가 느낀 모욕감 따위에는 신경도 쓰지 않는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자신을 무시하는 발언에는 발끈하면서도 자기보다 약한 사람들에게 습관적으로 무시하는 발언을 하는 사람들은 또 어떤가? 심리학 연구에 따르면 사람들은 자기 자신은 내적 동기에 의해 행동하지만, 타인은 외적 동기에 의해 행동하는 경향이 강하다고 믿는다. 돈만 주면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는 생각이나, 직원의 동기를 끌어올리기 위해 월급이나 복지제도 같은 외적 보상에만 신경 쓰는 것도 이 때문이다. 자신에게 꿈과 인생의 의미가 중요한 것처럼 타인에게도 금전적 보상만이 아니라 성취동기, 삶의 의미, 자율성이 중요하다는 점을 우리는 까맣게 잊고 살아간다. 부모들이 게을러 보이는 자녀에게 “생각이란 걸 하고 사느냐?”며 핀잔을 주면 자녀들은 “나도 다 계획이 있다” “나도 앞날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고 항변한다. 그런 자녀에게 “퍽도 고민하겠다”며 무시한다면, 어쩌면 자녀를 비인간화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학생들의 자존감에 상처 주는 말을 쉽게 해놓고, 태연하게 “미안해”라고 말하는 교사도 학생을 비인간화하고 있는지 모른다. 노숙자에게 먹을 것과 잘 곳을 마련해주는 것만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하고 그들의 자존심에는 아무런 관심도 없다면, 그들을 그저 먹고 자는 생물학적 욕구에 의해서만 움직이는 존재로 보고 있다는 증거다. 타인의 정신세계도 우리의 정신세계만큼이나 깊다. 그들도 우리처럼 정교한 존재다. 그들의 행동도 우리의 행동만큼이나 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는, 복잡한 정신 작용의 산물이다. 그들도 우리처럼 먹는 것 외에도 삶의 의미에 대해 고민하는 존재이고, 누추한 곳에 눕더라도 최소한의 존엄을 지키고 싶어하는 존재인 것이다. 그 누가 되었든, 그들도 깊고 복잡한 정신세계를 가지고 있다. “우리가 돈이 없지 가오가 없나?”라는 말이 자신에게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는 이 단순하면서도 기본적인 사실을 우리는 왜 자주 잊고 사는 걸까?